국민제안 톱10? “인기투표 방식 이벤트에 불과”
국민제안 톱10? “인기투표 방식 이벤트에 불과”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7.28 20:06
  • 수정 2022.07.28 20: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시민·소상공인단체 “최저임금 구분 적용,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반대”
“정책의 취지·효과·개선점 놓고 숙고하는 게 정치의 역할”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국민제안 TOP10 투표 중단 촉구’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온라인 국민투표로 정책을 결정하는 ‘국민제안 TOP 10’을 즉각 중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구분(차등) 적용’,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외국인 가사도우미 허용’ 등 사회적으로 논쟁이 첨예한 사안들을 단순 투표로 결정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국민제안 TOP 10은 10개 안건 중 온라인 국민투표로 뽑힌 상위 3개 안건을 국정에 반영하는 제도다. 10개 안건은 윤석열 정부가 지난 6월 개설한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접수된 약 1만 2,000개의 민원·제안·청원 중 국민제안 심사위원들이 자체적으로 선정했다. 정부가 밝힌 선정 기준은 생활밀착도·국민공감도·시급성 등 세 가지다.

그러나 일각에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발상은 좋지만, 제도의 허술함과 도입 의도에 문제를 제기한다. ▲현재 투표에 부친 10개 안건의 선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경영계 등이 지속 요구해온 제안을 편향적으로 반영했으며 ▲인증 절차 없이 무차별적으로 ‘좋아요’만 눌러서 순위를 정하기 때문에 올바른 대국민 의견수렴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투표 마감일(31일)을 앞둔 28일, 노동·시민단체와 소상공인단체 등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제안 TOP 10 중단”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는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 등이 참석했다. 기자회견에선 최저임금 구분(차등) 적용,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등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최저임금 차등 적용, 대형마트 의무휴업제 폐지, 외국인 가사도우미 허용 등은 모두가 대기업, 재벌, 자본들이 청탁하는 요구사항들”이라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소통·공정·정의는 오직 자본의 이윤을 위해 존재할 뿐, 노동자 서민들은 하루하루가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인 이영주 공공연대노조 고용노동부본부 문화국장은 “1988년 단 한 번 적용되었던 차등 적용은 이미 불필요하고 차별적인 사안으로 결정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국민제안이라는 이름으로 끌어오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 차별, 지역 불균형 조성, 성별·나이별·인종별 차별의 시각을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국민제안 TOP10 투표 중단 촉구’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소상공인단체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로 발생할 어려움을 걱정했다. 이성원 한상총련 사무총장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이미 의무휴업의 정당성을 인정했다”면서 “코로나19로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있는데, 대기업과 정부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다며 의무휴업을 폐지하려고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심지어 대형마트들은 온라인 플랫폼 때문에 위기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들 역시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며 “그들이 지금 의무휴업을 없애려는 이유는 온오프라인을 통폐합해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탐욕과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자신들의 손실을 골목시장 침탈로 만회하겠다는 그릇된 판단에 있다”고 말했다.

마트노동자들은 휴일 축소로 인한 휴식권·건강권 침해를 우려했다. 김성익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사무처장은 “그나마 월 2회 보장되는 의무휴업 제도를 통해서 마트노동자가 자기 삶을 영위하고 있다. 마트노동자에게는 빼앗길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김성익 사무처장은 “보통 서비스, 유통·판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주말 휴일이 없다. 365일 일하다 보면, 강제로 사회적 격리를 당한다. 가족 행사, 친구들 모임에 나갈 수조차 없다. 평일이나 일요일 저녁에 진행되는 행사, 전혀 참여할 수 없는 구조”라고 호소했다. 의무휴업일 제도는 대형마트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소상공인·전통시장 등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2012년 도입됐다. 현재 대형마트들은 통상 둘째, 넷째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정하고 있다.

해당 정책의 효과·부작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국민제안 TOP 10 사이트를 보면, ‘최저임금 구분 적용’과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에 대한 설명은 30자에 그친다.

국민제안 TOP 10 사이트 갈무리
국민제안 TOP 10 사이트 갈무리

이미현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 팀장은 “정책의 취지와 효과, 개선점을 놓고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필요한 방향은 무엇인지 숙고하고 논의해야지, 인기투표만으로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면 왜 집권하고 왜 정치를 하느냐”며 “그렇게 해서는 우리 사회의 소수를 보호하고, 단기간에 효과가 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은 시작도 못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현재 투표가 진행 중인 10건의 제안에 대해 이유와 내용의 설명도 없이 인기투표 방식을 동원해 진행하는 이벤트에 불과하다”며 “재계와 사용자 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사항으로 윤석열 정부가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기 위한 정당성 획득의 과정으로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