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③] 도로 위 불볕 작업, 아스팔트에 익어가는 몸
[커버스토리③] 도로 위 불볕 작업, 아스팔트에 익어가는 몸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8.16 17:05
  • 수정 2022.08.18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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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일하지만 쉴 곳도 씻을 곳도 없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사측...“현장에 맞는 폭염 작업 지침 필요”

쉴 곳 없어 견디는 사람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8월 18일부터 일터에선 휴게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 노동 현장은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한여름 쉴 곳 없어 견디는 노동자들을 만나봤다. 매해 온열질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현장의 건설노동자, 쉬려면 공정을 멈춰야 하는 제조노동자, 아스팔트 열기와 매연을 견디는 도로 위 노동자, 밖보다 더운 급식실에서 땀 흘리는 급식노동자들에게 쉼과 쉴 곳에 대해 들어봤다.

커버스토리③ 몸이 익어가는 아스팔트 노동

한여름의 거리는 따갑다. 높은 온도만큼 고통스러운 뙤약볕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행인들은 건물과 차양 근처에 드리운 그늘을 찾아다닌다. 양산이나 우산으로 여름 햇빛을 막아내기도 한다.

무더운 도심의 온도를 높이는 주범 중 하나가 아스팔트 도로다. 검은색의 아스팔트는 빛 반사율이 낮아 상당량의 열을 흡수한다. 달리는 자동차 바퀴와 도로 사이 마찰열도 높은 아스팔트 온도에 한몫한다. 여름철 한낮의 아스팔트 온도는 60℃를 넘어서기도 한다.

이 뜨거운 여름 아스팔트 위엔 노동자들이 있다. 땡볕을 가리거나 피하기 위한 조치들은 이들에게 여의찮다. 원활한 차량 통행이 우선인 도로 위엔 그늘이 생길만한 설치물은 없다. 일을 하려면 도구를 들거나 양손을 비워야 하니 양산을 들고 설 수도 없다. 아스팔트의 노동자들은 내리쬐는 땡볕과 올라오는 열기를 온몸으로 받을 뿐이다.

프라이팬 아스팔트, 사우나 맨홀...
고온다습한 일터에 쉴 곳도 씻을 곳도 없다

삼복더위의 두 번째인 중복에 든 7월 26일. 기온·습도 등을 종합해 산출한 일 최고 체감온도는 33.2℃를 기록했다. 그냥 걷기도 힘든 낮, 기상청은 11시를 기점으로 서울 전역에 폭염주의보를 발령했다. 열사병·화상 등 온열질환을 주의해야 하는 날씨였다.

이날도 지역난방안전㈜ 노동자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열 수송 시설 점검·관리에 나섰다. 노동자들은 업무를 위해 도로·녹지 등에 있는 맨홀 뚜껑을 열고 3~5m 깊이 지하로 내려간다. 열수송관, 밸브, 에어벤트(air vent, 공기배출구) 등 냉·난방열을 전달하는 각종 시설이 설치된 곳이다. 노동자들은 열화상카메라 등 점검 장비로 열 수송 시설을 점검·진단한다. 사고를 예방하고, 결함의 원인을 조사·평가하기 위해서다. 열병합발전소에서 생산된 뜨거운 물은 열수송관을 거쳐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나 상업시설로 전달된다.

열 수송 시설에 장애가 발생하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난방과 온수 사용에 차질을 겪는다.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백석역 온수관 파열 사고’가 대표적이다. 2018년 12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인근에 매장된 온수관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10℃에 달하는 뜨거운 물과 수증기가 맨홀 뚜껑과 도로를 뚫고 거리로 분출했다. 온수관 파열로 시민 1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화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인근 2,800여 세대 주민들은 난방과 온수가 끊겨 밤새 불편을 겪기도 했다. 27년 된 녹슨 배관이 사고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백석역 사고’로 열 수송 시설 안전 전문 업체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국지역난방공사에서 100% 출자한 자회사인 지역난방안전㈜가 설립됐고, 2019년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그간 용역으로 일하던 열 수송 시설 점검 노동자들은 지역난방안전㈜에 고용됐다. 같은 해 공공운수노조 지역난방안전지부(지부장 방두봉)가 출범했다. 놀랍게도, 노동조합은 3년간 휴게실과 샤워실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열 수송 시설 점검을 위해 맨홀로 들어가는 지역난방안전 노동자 ⓒ 지역난방안전지부

전국 19개 지사의 노동자들은 매일 아스팔트 도로로 나선다. 작업은 3인 1조로 이뤄진다. 2명은 맨홀 뚜껑을 열어 지하로 향한다. 1명은 도로 위에 남아서 차량 통행을 관리하는 신호수를 한다. 대체로 9시 출근 6시 퇴근이며, 20년 이상 노후배관이 설치된 지역의 5개 지사에선 4조3교대 24시 근무를 시행한다. 동절기엔 7개 지사에서 24시 근무를 한다.

하루에 작업을 수행하는 곳은 6~8 군데. 작업 시간은 평균 40분으로, 짧게는 15분에서 길면 1시간을 넘긴다. 일반적으로 작업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는 물을 빼내는 양수 작업 때문이다. 양수 작업은 열수송관, 밸브, 에어벤트 등을 점검·관리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맨홀에 물이 고여 있으면 배관이 부식되고 해충이 번식한다. 물을 수시로 빼내지 않으면 긴급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인원을 맨홀에 즉시 투입할 수 없기 때문에 사고를 키울 수 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엔 양수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도로 위에서 차량을 통제하거나 양수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아스팔트의 뜨거움을 견뎌야 한다. 지역난방안전지부 조사에 따르면, 조합원 10명 중 2.5명은 작업 중 어지러움·두통·메스꺼움 등 온열증상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경력 12년의 열 수송 시설 점검 노동자이자, 지부 조직안전국장인 김성수 씨의 말이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현기증이 나죠. 현장의 작업자들은 여름을 가장 힘들어해요. 땀을 하도 많이 흘리다 보니 몸이 쳐지거든요. 양수가 끝날 때까지 한 시간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하는데 그늘 하나 없고··· 그렇다고 왕복 4차선, 8차선 도로에서 파라솔을 치고 작업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햇빛을 가리기 위한 챙을 안전모에 두르기는 하지만, 그리 도움이 되진 않아요. 얼굴이 타는 것만 막을 뿐이지 온몸은 뜨거우니까요. 매연과 열기를 내뿜는 자동차들이 곁을 지나거나 정차할 때 특히 힘들어요.”

아스팔트가 타는 듯 건조하다면, 맨홀 아래는 사우나 같다. 열수송관 공기배출구에선 뜨거운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작업을 하려고 뚜껑을 열면 맨홀에선 수증기가 밀려 나온다. 열기가 가득 찬 내부 온도는 60℃를 넘는다. 공기배출구에서 분출되는 수증기에 화상을 입는 노동자도 있다. 습도가 높고 공기가 잘 순환하지 않는 곳이니 산소 체크를 하고 진입해야 한다. 작업에 돌입한 지 몇 분에 숨이 차는 곳이다. 위험에 대비해 노동자들은 안전화, 안전모, 형광조끼, 방진복 등을 입고 작업한다. 그러나 업무 장소가 워낙 고온다습해 여름에는 방진복을 입고 일하기 어렵다. “회사에서 얼음 조끼를 제공하는데, 잘 입지 않는다. 냉기는 길어야 한 시간이면 사라지고, 일하다 보면 얼음을 넣은 조끼가 무겁게만 느껴진다.” 김성수 씨의 말이다.

뚜껑을 열자 수증기가 밀려 나오는 맨홀. 온도계에 찍힌 내부 온도는 62.4℃다. ⓒ 지역난방안전지부

고온다습하고, 맨홀 속 오물을 뒤집어쓰는 육체노동이지만, 현장 노동자들의 휴식은 부실하다. 마땅히 쉴 공간이 없다. 다음 작업 장소로 이동할 때, 혹은 틈새 시간에 한가한 곳에 잠시 차를 세워 에어컨을 켜두는 식이다. 이동 차량은 11인승 승합차지만, 기자재로 공간이 좁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차 안이 답답한 사람은 차라리 바깥 그늘을 찾아 담배를 한 대 태우기도 한다.

김경민 지역난방안전지부 사무국장은 “잠깐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라도 편히 쉴 수 있는 휴게실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민 사무국장은 “뜨거운 아스팔트나 좁은 승합차가 아닌, 편하게 앉아서 쉴만한 곳이 필요하다. 모든 조합원, 특히 교대근무자들은 휴게실이 생기길 바란다”고 했다.

샤워실이 갖춰지지 않은 지사도 상당수다. 일과를 마무리할 무렵인 오후 5시면 노동자들의 작업복엔 하얀 소금기가 번져있다. 속옷까지 땀에 젖고 오물을 뒤집어썼지만, 간단히 세수만 하고 퇴근해야 한다. “회사에서 집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오늘처럼 땀을 많이 흘린 날에 대중교통을 타고 퇴근하려면 땀 냄새가 많이 나서 눈치 보인다.” 12년간 샤워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김성수 씨가 퇴근길에 전한 말이다.

승합차에 9명이 무릎 굽히고 다닥다닥
“현장을 모르는 폭염 지침 개선 필요”

고속도로 주변 환경을 관리하는 노동자들도 아스팔트의 뜨거움을 겪고 있다. “지금 같은 한낮에 차에서 내리면 숨넘어가요 진짜. 다섯 발자국만 걸어도 등줄기에 땀이 흘러요.” 박순향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부지부장의 말이다. 한국도로공사 현장지원 노동자인 그는 승합차로 이동하면서 고속도로 주변 시설을 청소한다.

톨게이트지부(지부장 도명화)는 2019년 7월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에 거부하며 투쟁한 끝에 2020년 5월 직접고용 되었다. 본래 톨게이트 요금수납 업무를 하던 이들은 현재 한국도로공사 현장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고속도로 졸음쉼터, 휴게소 부근 녹지대, 교량 하부 등을 청소한다. 불법 투기된 가정 쓰레기를 처리할 때도 적지 않다. TV·냉장고 등 가전제품과 가구, 음식물, 심지어 반려견을 버리고 가는 파렴치한도 있다. 현장지원 노동자들은 수거 팀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한곳에 쓰레기를 모아둔다.

“졸음쉼터는 화장실 청소하는데 30~40분 정도 소요돼요. 양변기가 5~6개 있는 곳이라면 더 걸리죠. 화장실을 청소한 뒤 광장에서 쓰레기 쓸고, 담배꽁초 줍고, 쓰레기통 비우고, 청소하고, 등나무 휴게 공간 잡풀까지 뽑으면 빠르면 30분, 늦으면 40~50분 지나가요. 점심시간까지 복귀하려면 오전은 빡빡해요.”

빠르게 흘러간 오전보다 오후 작업은 여유 있는 편이다. 아침에 깨끗이 청소해둔 시설물이 불과 2~3시간 만에 더럽혀지는 경우는 드물다. 날씨가 워낙 더우니 잠시 시간이 남으면 차량에서 대기한다. 외부에 있는 건 더위도 문제지만,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라고 박순향 부지부장은 말했다. 작업복을 입은 상태로 모여 있으면 시민들의 눈에 ‘일하지 않고 노는 것’으로 비칠까 봐 가급적이면 외부에 머무르는 걸 지양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교량 밑 암거* 등 그늘에 차량을 주차해 있지만, 그마저도 민원이 들어온다.
*지하에 매설해서 수면이 보이지 않도록 한 수로

“외부에서 보면 에어컨 켜고 차 안에서 편하게 쉰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차에는 많으면 6~7명, 심한 곳은 9명이 타요. 다리도 뻗을 수 없는 좁은 곳에서 대기하는 수준이에요. 날이 너무 뜨거우면 창문으로 열이 들어와서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더워요. 그렇다고 어디 멀리로 갈 수는 없으니 교각 밑 그늘로 피하는데, 회사에선 민원이 들어온다고 주의를 줘요.”

승합차를 꽉 채우고 앉아있는 도로공사 현장직원 노동자들 ⓒ 톨게이트지부

톨게이트지부는 도로공사에서 날씨에 따른 작업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폭염이나 폭우로 현장 근무가 어려워도 무조건 나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민원으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을 없애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톨게이트지부에 따르면, 폭염 시 별도 작업 규정은 각 지사 재량에 맡긴다.

“온도가 너무 급격히 올랐을 경우에는 대기실에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일기예보는 35℃라고 해도 아스팔트 온도는 50℃를 넘잖아요. 쓰레기 정리하고, 빗자루질하는 저희가 느낄 열기는 훨씬 높죠. 그렇다면 오후 1~3시에는 기준 체감온도를 정해서 작업을 중지하라는 둥, 대기실에 있으라는 둥 작업 지침이 있어야죠. 정말 하다못해 차량에 들어가라고 해야 하는데. 차량 내 휴식에 민원이 생기다 보니까 눈에 안 띄는 곳에서 다리 밑에 가 있으면 ‘일 안 하고 다리 밑에서 쉰다’는 민원이 들어오고, 갈등이 생기는 거죠. 비가 와서 작업이 어려운데도 복귀하지 말라는 곳도 있어요. 차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그 상황을 주민들이 보면 ‘일하는 게 아니라 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겠죠. 민원 발생은 회사 책임이라 생각해요.”

현장에 맞는 폭염지침을 요구하는 건 지역난방안전㈜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지역난방안전㈜은 폭염주의보 발령 시 관리감독자 지시에 따라 실외작업을 조정토록 했다. 그러나 관리감독자의 주관에 따라 작업 조정이 결정되는 만큼, 정작 휴식이 필요해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고 노동조합은 말한다. 휴게시간 등을 이용해 낮잠, 병원 방문 등으로 개인 건강을 유지하라는 문항도 옥외작업 현장과 동떨어진다. 김성수 씨는 “회사는 현장에서 폭염 관련 규칙을 잘 지키라고 말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업무 주기표를 보면 하루 7~8개의 물량이 책정되기도 해요.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폭염에도 무리해서 일하는 경우가 생기죠. 안전 관리 체계 기준이 정확히 마련되어 있다고 보긴 어려워요. ‘행동 요령’을 배포했으니 현장에서 요령껏 알아서 지키라는 식입니다. 여름철 폭염 관련 휴식을 비롯한 안전 관리 규정을 현실화했으면 좋겠어요.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잖아요.”

폭염은 점차 눌러가고 있지만, 관련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 한 아스팔트 노동자들은 또다시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게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7월 발표한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7월 들어 사망사고가 전년 동월 대비 11건 증가한 41건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폭염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