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부품박스 들고 쉴 곳 헤매는 제조노동자
[커버스토리②] 부품박스 들고 쉴 곳 헤매는 제조노동자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8.16 17:04
  • 수정 2022.08.16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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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생산 시간 맞춰 쉬는 노동자들···
휴게시간 절실하지만 쉴 곳은 마땅치 않아

쉴 곳 없어 견디는 사람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8월 18일부터 일터에선 휴게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 노동 현장은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한여름 쉴 곳 없어 견디는 노동자들을 만나봤다. 매해 온열질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현장의 건설노동자, 쉬려면 공정을 멈춰야 하는 제조노동자, 아스팔트 열기와 매연을 견디는 도로 위 노동자, 밖보다 더운 급식실에서 땀 흘리는 급식노동자들에게 쉼과 쉴 곳에 대해 들어봤다.

DGF오토모티브 공장 전경.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DGF오토모티브 공장 전경 ⓒ 참여와혁신 포토DB

커버스토리② 절실한 제조공장 휴게시간

산업단지 노동자 10명 중 4명은 휴게실 없는 일터에서 일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일터의 규모를 20인 미만 사업장으로 좁히면 10명 중 6명이 휴게실 없이 일한다. 민주노총이 지난 3월부터 약 한 달간 전국 13개 지역 산업단지 노동자 4,021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 한 결과다.

산업단지는 제조업 생산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집적효과를 기대하는 작은 제조사업장들이 몰려 있고, 전국 제조업 생산의 61%가 산업단지에서 나온다.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제조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의 실태조사 결과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제조노동자들에게 쉼과 쉴 곳에 대한 이야길 들어봤다.

생산 속도 맞춰 일하는 노동자들
긴장·피로 풀기 위해 “절실한 휴게시간”

제조공장의 스케줄은 대부분 고정돼 있다. 하루 8시간 근무 기준 ‘출근-일-휴식(10~20분)-일-점심(40분~1시간)-일-휴식(10~20분)-일-퇴근’이다. 최소로 쉴 경우 오전 10분, 점심 40분, 오후 10분 총 60분 쉰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소 휴게시간이다.

공장에서 정해둔 생산 속도에 맞춰 일하는 제조노동자에게 휴게시간은 절실한 문제다. 박태현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부지회장은 “10분의 쉬는시간이 절실하다”며 “단순히 서 있는 것도 힘들지만 공장에서 계속 움직여야 한다. 물건을 들고, 대물을 밀고 당긴다. 뜨거운 열, 쇳가루, 비산 먼지, 소음 등에도 노출된다. 몸에 전방위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쉬는시간엔 안전화, 장갑, 귀마개 등을 다 내려놓고 육체적인 자극을 피할 수 있다. 그렇게 안 쉬면 네 시간 연달아 일을 못한다. 회사에서도 그래서 쉬는시간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태현 부지회장은 주로 반월공단에서 일했다. 완성차 1차 하청업체, 알루미늄 주조 회사 등 제조공장 경력으로 따지면 약 10년 차다.

DGF오토모티브라는 한국지엠 2차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이재영 금속노조 인천지부 부평공단지회 지회장도 “한 명이 빠지면 라인이 멈춘다. 한국지엠과 직서열 구조라서 우리 공장 라인이 멈추면 한국지엠 공장 라인도 멈춘다”며 “그래서 지쳐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현장 노동자들이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쉬는시간이다. 쉬는시간을 1분이라도 어기면 큰일 난다. 무엇보다 쉬는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면 노동자들은 피폐해진다”고 말했다.

부품박스 들고 떠도는 노동자들

제조노동자에게 쉬는시간은 절실하지만, 쉴 곳은 마땅치 않다. 이재영 지회장은 “산단 내 200인 이상 규모 사업장은 그마나 휴게실이 있는 편인데 50인 이하, 30인 이하, 특히 20인 미만 아파트형 공장에서 휴게실은 거의 없다”면서 “그냥 기계 옆에서 의자 놓고 쉰다. 점심에나 편의점 앞에서, 인도에 앉아서 쉰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설문조사 응답자 중 A(제조업·생산직)씨는 “휴게실이라고 할 만한 게 따로 없다”며 “일하는 곳에서 쉬는 건 눈치 보이고 해서 옥상, 야외, 나무 그늘 같은 데서 쉰다. 일하는 공간과 분리된 휴게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B(제조업·생산직)씨도 “탈의실이 있지만 캐비닛만 들어갈 정도로 협소하다”며 “공장 주변엔 편의점이 없다. 좀 나가야 한다. 커피 한잔 먹으려 해도 점심시간밖에 못 나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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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시간에 휴게실이 아닌 공장 내부 박스에 앉아 쉬는 제조노동자 ⓒ 부평공단지회

휴게실 있어도 휴게실 안 들어가

휴게실이 있어도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탄소중립화, 디지털전환 등 산업대전환기를 말하는 우리나라에서 휴게실만은 80~90년대에 풍경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은 부품박스를 들고 공장 안에서 잠깐 누울 곳을 휴게실 대신 찾게 된다. 박태현 부지회장은 “알루미늄 주조회사에서 일할 때 칸막이로 만든 공간이 하나 있었다. 조회, 회의, 휴게실 겸용이었는데 현장 바로 옆에 붙어 있으니까 먼지 투성이였다. 하루만 지나도 먼지가 쌓이는 곳에서 쉬었다. 그냥 긴 의자 위에 눕는 것”이라며 “그것도 공간이 좁아서 안 되면 부품박스 들고 어디서 쉴까 어슬렁어슬렁 헤매고 다닌다”고 이야기했다.

전북 완주일반산업단지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노동자 C씨는 “산업단지 시설 자체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까 곰팡이가 핀 공간도 많이 있다. 휴게실이 지하에 있거나 실외기와 가까이 붙어 있어서 여름에 너무 더워 쉬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내에서 일해도 땀이 ‘줄줄’

제조공장은 더위에도 취약하다. 단 열이나 습기에 의해 “기계나 제품이 퍼질 수 있는” 공장은 시원하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공장, 전자회사, 제약회사는 쾌적한 편이다.

용해, 주조, 열처리 공정 등을 거치는 동양피스톤 공장 노동자들은 일을 마친 공장 밖에서도 줄줄 땀을 흘린다. 황훈재 금속노조 동양피스톤분회 분회장은 “현장에 이동식 에어컨이 있고, 냉방 부스가 따로 설치돼 있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조건에선 쇠 등 금속 작업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땀을 잘 흘려서 체온 조절에 성공한 사람들만 공장에서 버티고 남아 있는 것”이라며 “바깥 사람들이 볼 땐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공장 사람들이 일 마치고도 계속 땀 흘리는 건 익숙한 모습”이라고 이야기했다.

박태현 부지회장은 “실내 제조업이라 여름에 괜찮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아니다”라며 “기계, 주물, 주조 등 제조 공장에선 현장이 워낙 크니까 에어컨이 커버를 못한다. 먼지가 많아서 필터가 금방 망가지기도 한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일하는데 기댈 곳은 선풍기밖에 없다. 그냥 적응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영 지회장은 “최근 인천에서 현대제철 2차 하청업체에서 야외 용접 절단 작업을 하다 탈진된 노동자가 쓰러졌다”면서 “당시 소장이 더우면 쉬었다 하면 된다고 말했다는데, 작업장에서 쉬는 곳까지 걸어서 20분이었다. 간이 휴게실이라도 설치돼야 하는데 그걸 안 해주고 있더라. 우리 공장도 매년 최소 3명씩 탈진한다. 올해만 2명이다. 포도당 캔디도 곳곳에 마련하고 선풍기를 배치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화장실을 개조한 휴게실 ⓒ 부평공단지회

쉴 때도 차별받아 서러워

차별 문제도 있다. D씨(제조업·반숙련직)는 “원청 휴게실과 협력업체 휴게실이 따로 있다. 시설·설비도 차이가 크다. 정규직이 이용하는 헬스장, 샤워실 이용하면 눈치 준다”고 전했다.

이재영 지회장은 “부평공단 A업체에서 일하는 도급업체 노동자는 정규직 휴게 공간에서 쉴 수 없다. A업체의 사장이 정규직 휴게공간에서 쉬지 말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 도급업체 노동자들은 비흡연자인데도 매일 흡연장에 나와 쉬거나 도로 인도변에 앉아 쉬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어떤 공장에선 물류 지입차 기사님들에게 화장실도 못 쓰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게 서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영 지회장이 일하는 DGF오토모티브에는 물류노동자들을 위해 화장실을 개조한 휴게실이 있는데 변기에 비닐을 덮고 의자를 한두 개 둔 곳이었다. 휴게실 문을 열자 소변 등 불쾌한 화장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법·제도 보완 필요하지만
노동자 목소리 반영 중요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까? 노동자들은 우선 법·제도적 개선을 이야기했다. 최정우 민주노총 전략조직국장은 “자세한 휴게시설 관리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휴게시설 관련해 영국은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해 전기 난방을, 일본은 개인차와 정서에 대한 배려를, 프랑스는 직원대표와 협의해야 한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 제대로 쉬기 위한 노력과 실행이 중심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우리 사회의 낮은 노조 조직률, 높은 산재 사고율, 사용주 중심의 편향된 지원, 중소·영세 비정규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대변체계가 없는 구조에서 차별 없는, 평등한 휴식권을 누리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은 보다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영 지회장은 “노동자들이 휴게실 요건으로 가장 중요하게 꼽은 것은 쉴 수 있는 분위기와 충분한 휴식시간”이라며 “제대로 된 휴게실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남녀 구분, 충분한 면적, 접근성, 쾌적한 환경 등 세부 기준이 마련돼야 하며 이를 노사 간 대화와 합의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터마다 좋은 휴게실의 조건은 다르다. 법·제도적 강화가 부족한 휴게실을 모두 보완할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재영 지회장은 노동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영 지회장은 “공정을 만들 때 노동자를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 회사 2공장에선 에어컨 덕트 길이가 짧아서 노동자 머리 위에 바로 찬 바람을 쏜다”며 “1공장은 층고가 너무 높은데 냉방시설이 커버를 못해서 문제고, 2공장은 에어컨 바람 때문에 머리가 아픈 거다. 모 아니면 도”라면서 “공장마다 바람직한 휴게실의 모습은 다 다를 거다. 그러니까 노동조합의 참여가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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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공단 내 노동자들이 몰려드는 식당 골목에 도착한 금속노조의 커피트럭 ⓒ 시흥안산지역지회

공단 조직화로
더 나은 쉴 권리 계획하는 노동자들

노동조합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선 조직화를 해야 한다. 작은 사업장이 많고 떠도는 노동자들이 많은 산업단지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이재영 지회장은 “노동조합도 사업장마다 다른 휴게실에 관한 요구를 못 따라간다”며 “또 노동조합이 휴게실을 요구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싸워서 따내는 개념이 아니고 휴게실을 마련하기 좁은 공간을 인정하고, 이 정도까진 해보자는 식으로 노동조합과 회사 간 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미조직 사업, 공단 조직화 사업이 중요하다. 이런 조직화 사업이 크게, 꾸준히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조직화가 필요한 또 다른 배경은 결국 열악한 휴게실은 노동인권 문제와 맞닿기 때문이다. 박태현 부지회장은 “휴게실이 열악한 회사는 대부분 노동인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닥”이라며 “이런 휴게여건과 실태는 단순히 휴게실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는 노동실태와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휴게실이 열악한 회사에선 대개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일한다. 그래서 노동인권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선 공단 조직화를 위한 정책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조직화를 통해 노동자들은 공단 차원의 공동교섭이라는 미래도 그리고 있다. 박태현 부지회장은 “시흥안산지역지회를 공단노조라는 별칭으로 부르고 있다. 노동자들이 개별로 공단노조에 가입하면 공단사용자협의회와 교섭을 할 수 있는 구조”라며 “공동교섭에선 공단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정한다든가 노사정 공동협의체도 만들어서 공동휴게실 등을 안건으로 논의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박재영 지회장도 “공단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다”며 “아파트형 공장의 경우 입주자협의회가 있는데, 노사협의회 개념으로 휴게공간 개선 문제를 다룰 수 있다. 또 공동교섭을 통해 공단 노동안전 관련 표준 조건을 정해볼 수도 있다. 지금은 선전전, 캠페인 등으로 시작을 하지만 장기적으론 공단 내 공동교섭을 추진해보려는 목표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