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노동 없는 일터엔, 노동 없는 휴게실이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노동 없는 일터엔, 노동 없는 휴게실이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8.16 17:03
  • 수정 2022.08.16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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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년 전 만난 백화점 화장품 판매서비스 노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화점에서 노동자는 사람 취급 안 해요.” 감정이 듬뿍 담긴 표현이었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왜요?” 백화점에선 아무리 더운 날에도 손님이 오기 전까진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는 겁니다. 손님을 맞기 위해 창고에서 화장품 박스를 나르고, 상품을 진열하는 동안 땀이 뻘뻘 흘러도 백화점 냉방버튼은 요지부동입니다. 그 사이 옷은 흠뻑 젖습니다. 마침내 백화점 정문이 열리면 보이는 서비스노동자의 단정한 유니폼, 정교한 메이크업 뒤엔 말 그대로 열 받는 노동이 있었습니다.

노동 없는 일터에서 마련한 휴게실도 열악했습니다. 휴게실이 너무 멀었고, 그렇게 간 휴게실은 협소해 건물 계단에서 노동자들이 다닥다닥 앉아 쉬고, 도시락을 먹기도 했습니다. 이런 환경은 백화점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집단감염에 취약했던 주원인이 됐습니다.

다시 여름입니다. 올해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8월 18일부터 휴게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하는 변수가 있습니다. 일터에 손님도 오지 않는 육체노동자들에게 시원한 휴게실은 절실합니다. 그런데 현장에선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밖에서 달궈진 물을 마시기 어려우니 제빙기 좀 마련해달라는 건설노동자의 요구는 그냥 이뤄지지 않습니다. 회사와 한참 실랑이 끝에 마련된 제빙기에서 나오는 얼음엔 어쩐지 부유물이 떠 있습니다. 층고가 높은 어느 공장에선 에어컨을 틀어도 좀처럼 공기가 시원해지지 않습니다. 또 다른 공장에선 노동자 머리 위에서 덕트로 바로 쏘는 찬 바람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 아픕니다. 산 넘어 산입니다. 아스팔트 위에서 일하는 도로노동자들은 숨이 턱턱 막혀도 주변에 들어가 쉴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바깥보다 더운 조리실을 견디는 급식노동자들은 그나마 좁은 탈의실에서 발을 뻗을 수 있습니다. 육체노동자들은 매일 손님이 없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셈입니다.

단순히 휴게실이 있고 없고의 문제, 휴게실이 열악한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휴게실의 수준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는 노동실태와 직결됐습니다. 풀어나갈 일이 한둘이 아니란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업장마다 좋은 휴게실의 기준은 다를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동자들은 우선 제대로 된 휴게실에서 편하게 쉬려면 남녀 구분, 충분한 면적, 접근성, 쾌적한 환경 등 휴게실의 세부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노사 간 대화와 합의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냉풍을 노동자의 머리로 쏘는 일을 막으려면 말입니다.

또 하나, 휴게실을 노동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휴게실이 그렇게 열악한 회사는 모든 노동인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닥”이라며 아무리 법·제도를 엄격하게 만들어놔도 노동 없는 휴게실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참여와혁신은 한여름을 맞은 건설노동자, 제조노동자, 아스팔트 노동자, 급식노동자들에게 휴게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