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졸라맨다는 허리띠? “비정규 노동자의 삶”
정부가 졸라맨다는 허리띠? “비정규 노동자의 삶”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9.08 12:35
  • 수정 2022.09.08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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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 및 가계부 공개 기자회견’
“졸라맬 허리띠 어디 있냐”···물가인상률 고려해 임금 인상해야
공공운수노조가 8일 오전 9시 30분 서울역 광장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 및 가계부 공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이 임금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며, 국회에 인건비 예산을 대폭 증액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서비스노조(위원장 현정희, 이하 공공운수노조)는 8일 오전 9시 30분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의 임금과 가계부를 공개했다.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기조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을 책정한 정부에게 “졸라맬 허리띠가 어디 있냐”고 반문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13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굉장히 강하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예산 편성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게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내년 예산안이 ‘건전재정’이라는 목표 아래 발표됐다.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의 임금 상승률은 2.2%로, 정부는 이를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는 기조와 함께 공무직의 처우도 개선해야 한다는 판단하에 내린 절충안”이라고 설명했다.

공공운수노조에 조직된 비정규 노동자들은 “실질임금이 하락하는데 처우가 개선된다니 기막힐 따름”이라는 반응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7%로, 7개월 만에 하락세를 보였지만 농산물과 외식 등의 상승폭이 컸다. 물가가 치솟는 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으니 비정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계속 하락하고, 매월 생활비도 부족하다는 게 공공운수노조의 주장이다.

그 증거로 공공운수노조는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의 가계부를 꺼내놓았다. 환경부에서 공무직으로 11년째 일하는 한 노동자는 지난 2020년 8월 216만 8,860원의 급여를 수령했다. LH임대주택에 사는 그가 외식에서 가장 크게 쓴 액수는 갈비탕 4만 2,600원이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사교육비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렇게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8월 한 달 295만 6,837원을 사용했다. 약 78만 원 정도 적자다. 그는 휴무일에 부업을 해서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고 있다.

2년이 지난 올해 8월,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한 명의 자녀를 키우며 학교에서 교육공무직으로 일하는 15년차 노동자의 8월 급여 실수령액은 176만 2,460원으로, 생활비인 285만 5,410원이 빠져나가면 100만 원이 넘게 마이너스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의 경우 방학 중 임금을 모두 받을 수 없어 더 어렵다. 야간근무가 일상인 11년차 공공기관 자회사 무기계약직의 8월 급여 실수령액도 202만 2,080원으로, 4인 가족을 꾸리기에 생활비가 부족해 대출로 해결하고 있었다.

안명자 공공운수노조 사무처장은 “보다시피 우리는 얼마 안 되는 임금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3~4명의 가족이 180만 원, 200만 원을 가지고 얼마나 잘 살 수 있겠나”며 “이 문제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수없이 이야기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복지를 책임질 만한 사회를 만들자는 게 그렇게 못된 일이냐. 보편다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달라”고 했다.

정경숙 교육공무직본부 부본부장은 “물가가 하도 올라서 안 쓰던 가계부를 써 봤는데, 대단한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먹고 사는 데 급급했다. 게다가 급식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 때문에 한의원과 정형외과 등 병원을 전전긍긍한다”며 “우리는 이렇게 사는데 정부는 임금인상을 자제하라고 한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물가폭등이 노동자 때문인지 묻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준석 하고 싸우지 말고 물가폭등, 비정규직 차별과 싸우라”고 발언했다.

오동윤 서울지부 중앙박물관분회 조합원도 “내일이면 추석 연휴가 시작이지만 공무직 노동자는 마냥 즐거워할 수 없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에서 월세, 교통비, 통신비, 식비를 제외하면 나를 발전시킬 돈은 거의 없다”며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똑같은 임금으로는 막막하다. 윤석열 정부는 악덕 사업주를 자처하지 말고 물가상승률을 임금에 반영하고, 직무와 무관한 수당 차별을 하루 빨리 해결해 달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공공운수노조는 “이제 정부의 예산안은 국회에서 심의한다. 국회는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의 인건비를 대폭 증액하는 예산심의에 나서 최소한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삭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명재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 지부장은 “야간근무까지 했지만 202만 원을 수령했고, 매달 100만 원의 마이너스가 발생한다. 더워서 커피 마시는 비용도 포함하지 않은 가계부였다”며 “임금 올릴 돈은 충분하다. 법인세 인하로 재벌은 배불리고 노동자들의 허리를 졸라매지 말고, 당장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의 임금을 대폭 인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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