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의 날, 사업소득자로 위장된 ‘진짜 노동자’들이 모였다
납세자의 날, 사업소득자로 위장된 ‘진짜 노동자’들이 모였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3.03 20:31
  • 수정 2023.03.03 2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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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찾기유니온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
최악의 기업과 모범 판정 발표, 권리찾기 응원상 시상 등 진행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위원장, 아무 도움도 못 되고 이렇게 마루 바닥을 떠나게 돼 정말 미안하네. 내 인생 마루만 시공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후회만 남네. 남은 건 온몸이 상하고 퇴직금 한 푼 없는 이 마루 바닥에 대한 원망뿐이네. 부디 포기하지 말고 후배들을 위해 이 마루 바닥을 꼭 바꿔주시게.”

최우영 한국마루노동조합 위원장은 어제(2일) 마루 시공일을 그만둔 한 노동자와 통화를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 자료집에 남기고 싶었다 했다. 그는 27년 동안 근로계약서도, 임금명세서도, 4대 보험도 없이 평균 주 80시간 일하다 일터를 떠났다.

“한 달에 며칠은 근로자로, 또 며칠은 가짜 3.3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던” 최우영 위원장과 노동자들은 이 마루 바닥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어떻게, 어디서, 무슨 방법으로 싸워야 하는지 몰랐다. 그랬던 노동자들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과 국회 증언 등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한 일을 이어가고 있다. 최우영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모든 노동자가 근로차별법이 아닌 근로기준법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함께 투쟁할 것”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사업소득자로 위장돼 근로기준법을 빼앗긴 노동자들이 3월 3일 납세자의 날을 맞아 모였다. 노동자들은 납세자의 날을 ‘가짜 3.3 노동자의 날’이라 칭하며 3월 3일을 ‘진짜 노동자의 날’로 만드는 싸움에 함께할 것이라 밝혔다. ‘가짜 3.3 노동자’는 사용자에 의해 사업소득세 3.3%를 납부하게 된 노동자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사업소득자로 만들면 노동법과 4대 보험 등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

권리찾기유니온(위원장 정진우)은 3일 오후 3시 33분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을 열고 “노동자가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비참한 시대를 끝내기 위해 더 크고 강한 힘을 모아낼 것”이라 밝혔다. 권리찾기유니온은 사업주에 의해 근로소득세 대신 사업소득세를 납부하게 된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회복 등을 노력하는 노동조합으로, 지난해부터 3월 3일을 ‘가짜 3.3 노동자의 날’로 정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에서 사회연대공동축사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나지현 사무금융우분투재단 사무처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에서 사회연대공동축사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나지현 사무금융우분투재단 사무처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기념식은 축하 마당과 시상식, 연대 마당 등 3부로 구성됐다. 기념식에 참석한 이들은 ‘가짜 3.3 노동자’들과 권리찾기유니온에 “가짜 사장 말고 진짜 노동자를 위한 사회를 함께 찾겠다”고 응원했다.

나지현 사무금융우분투재단 사무처장은 “납세자의 날은 세금 잘 낸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날인데 노동자에게 근로소득세가 아니라 사업소득세를 부과해 세금을 잘못 거두고 있다”며 “불안정하고 위험한 가짜 3.3 노동자가 많아지는 것은 미래에 전 사회가 떠안아야 할 과제와 책임이 많아지는 것을 말한다.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도급 노동 등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는 가짜 3.3 노동자 문제를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진짜 노동시장 개혁”이라고 말했다.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도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은 근로기준법이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는 비정상 노동자의 존재를 송곳처럼 아프게 제기하고 있다”며 “이번 기념식을 통해 가짜 3.3 노동자 문제가 더욱 널리 알려지길 바라고, 근로기준법이 모든 노동자와 일하는 시민에게 최소한의 노동인권 방파제임을 일깨우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헌법이 정한 원칙과 기준을 구체화하는 것이 법률이지만, 우리 노동법 체계는 헌법이 정한 원칙과 기준을 억제하고 불완전하게 만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잠정적 위헌 상태”라며 “가짜 3.3이라는 허명을 찢어버리고 진짜 노동자로 바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여러분과 저, 그리고 정의당이 함께 할 것”이라 전했다.

이에 프로축구단 유소년 코치로 14년간 일했던 ‘가짜 3.3 노동자’ 최우정(권리찾기유니온 대의원) 씨는 “많은 싸움에도 거꾸로 돌아가려는 스포츠 업계에서 일하느라 힘들 수많은 가짜 3.3 노동자들이 밝은 사회에서 투명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이 제 바람”이라며 “오늘 참석하신 많은 분들이 지금껏 계약의 형식으로 위장된 노동자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저희와 같은 가짜 3.3 노동자와 더 함께해 달라”고 말했다.

학원에서 ‘가짜 3.3 노동자’로 고용돼 있던 남보리(권리찾기유니온 대의원) 씨도 “이 자리에 자리해주신 모든 분들 덕분에 이름과 사연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분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가짜 3.3 노동자가 없어지고 모든 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을 때까지 함께 싸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악의 기업’과 ‘모범 판정’을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다. 최악의 기업으론 부산아이파크 축구단을 운영하는 HDC스포츠가 선정됐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10년 넘게 장기 근속한 직원을 퇴직금 없이 해고했고, 소속 근로자이니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노동청 시정 지시도 거부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모범 판정으론 광주MBC 방송 아나운서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입사한 후 2년이 초과된 시점부터는 이들을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본 전남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이 꼽혔다. 재택근무를 하는 인터넷 모니터링 요원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서울행정법원의 판정도 모범 판정으로 선정됐다.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에서 법률구제 응원상을 받은 한국마루노동조합 조합원이 마루노동자의 관련 영상을 보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에서 법률구제 응원상을 받은 한국마루노동조합 조합원이 마루노동자의 관련 영상을 보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시상식도 진행됐다. ‘법률구제 응원상’과 ‘현장활동 응원상’은 한국마루노동조합과 최태경 경남CBS 아나운서가 각각 받았다. 서종근 한국마루노동조합 조합원은 “30년 동안 바닥만 쳐다보며 마루 시공 일을 했는데, 노동조합을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권리를 빼앗겼는지 알게 됐다”며 “가만히 있으면 절대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우리가 진짜 근로자, 노동자가 되는 날까지 연대해 달라. 우리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최태경 경남CBS 아나운서는 “5월 1일 노동자의 날이 되면 ‘나는 노동자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늘 했다. 돌아보면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가짜 3.3 노동자로 살았다”며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투쟁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더 용기를 내고, 연대해주시는 많은 분들과 멈추지 않고 흘러가겠다”고 했다.

한편, 기념식에 참여한 각계각층의 33인은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근로기준법을 되찾아야 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각각 낭독하기도 했다. 다음은 메시지 중 일부.

“오늘 가짜 3.3 노동자의 날을 맞아 전태일의 마지막 절규를 다 함께 외칩시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이덕우 전태일재단 이사장)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불리어 마땅한 노동자란 이름을 되찾는 길에 함께합니다.” (이한별 촛불교회 담당목회자)

“이름이 바로 서야 세상이 바로 섭니다. 배제된 이들의 권리찾기는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찾는 일과 다름없습니다.”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모든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 노동자는 자본에 인격을 팔려고 일하는 것이 아니다.” (박병준 삼성전자서비스 해고노동자)

“땀 흘려 일하는 모두가 노동자로 존중받고, 노동의 가치가 정당하게 인정 받을수 있도록 가짜 3.3 노동자들 역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최태경 경남CBS 프리랜서 아나운서)

“더 이상 노예처럼 살기 싫어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마루 시공자의 빼앗긴 근로기준법을 되찾고 더불어 소외된 모든 동지들과 함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최우영 한국마루노동조합 위원장)

“근로기준법을 빼앗긴 천만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 모두의 권리를 쟁취하겠습니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에서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이 최악의 기업 발표 시상식을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에서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이 최악의 기업 발표 시상식을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에서 현장활동 응원상을 받은 최태경 경남CBS 아나운서가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에서 현장활동 응원상을 받은 최태경 경남CBS 아나운서가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 참가자들이 '노동자의 이름으로, 모두의 권리로' 현수막을 펼쳐 드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제2회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 참가자들이 '노동자의 이름으로, 모두의 권리로' 현수막을 펼쳐 드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