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9시간 노동’ 허용에 노동계, “초장시간 압축노동 조장법”
‘주 69시간 노동’ 허용에 노동계, “초장시간 압축노동 조장법”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3.06 18:24
  • 수정 2023.03.06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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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 발표···주 52시간→최대 69시간 노동 가능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 참여와혁신 DB

정부가 ‘1주 단위’의 연장노동 칸막이를 없애 연장노동 관리단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 제도를 바꿀 것이라 밝혔다. 이에 주52시간으로 정해져 있던 노동시간은 상황에 따라 최대 69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다. 노동계는 “사용자의 이익으로 귀결될 뿐 노동자의 이익은 찾아볼 수 없는 독으로 가득 찬 개악에 불과하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11시간 휴식권 보장하고 주 69시간
혹은 휴식권 없이 64시간 노동 가능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는 6일 오전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하고, 장관 브리핑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기존 주 52시간제(기존 40시간+연장근로 최대 12시간)를 운영하되 노사가 합의할 경우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편의 주요 내용이다.

연장근로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바꾼다면 연장근로시간은 ▲월 52시간(12시간×4.345주) ▲분기 156시간 ▲반기 312시간 ▲연 625시간이 된다. 다만 정부는 장시간 연속 근로를 제한하기 위해 분기 이상의 선택지를 활용한다면 연장근로 한도를 줄이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분기는 140시간(156시간 대비 90%), 반기는 250시간(312시간 대비 80%), 연은 440시간(625시간 대비 70%)만 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했다.

각 사업장은 11시간 연속휴식권을 부여하고 일주일에 최대 69시간 일하거나, 휴식권 없이 최대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노동자 건강권 보장 방안으로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을 부여하고, 산재 과로 인정 기준인 4주 평균 64시간 이내 근로를 준수시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권을 보장하면 하루 최대 근로시간은 11.5시간이 된다. 4시간마다 30분의 휴게시간을 부여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것이다.

ⓒ고용노동부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바꾸려면 사용자와 근로자대표의 서면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근로시간 결정에 있어 노동자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근로자대표 제도화를 추진한다. 근로자대표의 선출 절차와 권한과 책무 등을 법제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현행 보상휴가제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로 확대·개편해 저축한 연장근로를 임금 또는 휴가로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목표다.

이외에도 정부는 근로시간 기록·관리 강화, 포괄임금·고정수당 오남용 근절을 포함한 종합 대책도 이달 중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야간 근로에 대한 실효적인 보호방안도 강구한다. 유연한 근무방식을 확산시키겠다는 방향성 아래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은 전업종 1개월, 연구개발 업종은 3개월에서 각각 3개월, 6개월로 확대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업 협장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3년 만에 급격히 주 52시간제를 도입한 결과 많은 기업들이 위법과 적법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서 소위 포괄임금이라는 임금약정 방식을 오남용해 장시간 근로와 공짜야근을 야기하고 있다”며 “제도 개편의 지향점은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의 보편적 보장이다. 70년간 유지되어온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근로시간 패러다임을 구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정부 입법안은 경제규모 10위권인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게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인 진일보”라며 “이번 개편안이 현장에서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하시는 점 잘 알고 있다. 개편안이 당초 의도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권리의식, 사용자의 준법의식, 정부의 감독행정, 세 가지가 함께 맞물려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5일 연속 아침 9시 출근·밤 12시 퇴근?
죽기 직전까지 일하기 허용한 것

정부의 안에 대해 노동계는 입장을 내고 “초장시간 압축노동 조장법(한국노총)”,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하는 개악은 안 그래도 위태한 정부의 위기만 부채질할 뿐(민주노총)”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정부는 개편방안에서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한 방안으로 제시했던 ‘11시간 연속휴식 부여’조차 포기했다. 11시간 연속휴식을 하고 싶으면 1주 69시간 이상을 일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1주 64시간까지 일하라는 것”이라며 “죽기 직전까지 일 시키는 것을 허용하고, 과로 산재는 인정받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정부가 제시한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또한 “근로자대표제도 정비 역시 부분 근로자대표 도입을 통한 노조 배제를 겨냥하고 있다. 근로자대표의 민주적 선출 및 활동에 사용자의 개입·방해 행위에 엄중한 처벌이 없다면, 사용자 입맛대로 노동시간이 개편되는 길을 열어줄 뿐”이라며 “노동시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노동자의 생존권과 생명권이 걸린 문제다. 정부의 노동시간 제도개악 시도를 총력투쟁으로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노총도 ‘5일 연속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2시까지 일을 시켜도 합법이 되는 근로시간 제도개편. 여기에 노동자의 건강과 휴식은 없다. 오직 사업주의 이익만 있을 뿐’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정부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선전을 해도 그 의도와 본질은 숨길 수 없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안을 적용해 ‘1주 최대 64시간’ 옵션을 선택하면 아예 연속휴식을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1개월 단위로 환산해 특정 주에 몰아서 적용을 하면 월~금 내내 09시 출근 24시 퇴근(1주 연장근로시간이 24시간까지 가능하니 1일 약 5시간×5일)이 가능하다”며 “주당 64시간을 상한으로 제시해 과로사 기준을 피하기 위한 4주 연속 64시간 노동을 피하려는 꼼수를 부렸지만 만성피로의 기준이 되는 12주 연속 60시간 노동의 문제에 대해선 무어라 답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어 “무엇보다 노조가 없는 대다수 노동현장(전체 노동자의 약 80%가 근무하고 있는 100인 미만 사업체)에는 노동자에게 선택권(결정권)이 전혀 없다”며 “정부가 강조하는 노사 당사자의 선택권이란 실제 현장에서 일방적인 결정권을 가진 사용자의 이익, 경영상 효율성 제고와 노동자 통제를 강화해 주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경영계, “근로시간 효율적 활용 환영
관련 법 개정 국회서 조속히 통과되길”

경영계는 일제히 환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경영계는 정부의 개정안이 주 단위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단위로 확대하는 등 근로시간의 유연성과 노사선택권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에 대해 환영한다”며 “이번 정부 개정안을 계기로 그동안 산업현장에서 주 단위 연장근로 제한 등 획일적·경직적인 현행 근로시간제도로 인해 업무량 증가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나 워라밸 요구 확대에 따른 다양한 시간선택권이 제한돼 온 어려움이 해소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정부가 근로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노사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라며 “노동 개혁의 첫 단추인 근로시간제도 개편 관련 법 개정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개편안이 기업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근로자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업은 산업 현장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고, 근로자들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연장근로 단위를 분기, 반기 등으로 확대할 때 총근로시간을 축소하는 것은 근로시간 유연화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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