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플렉스 노동자, 일자리 지워지지 않으려면 과로해야
퀵플렉스 노동자, 일자리 지워지지 않으려면 과로해야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04.20 18:12
  • 수정 2023.04.20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쿠팡 배달노동자 노동실태조사 결과 발표
택배노조 “생활물류법,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 위반인지 여부 검토할 것”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은 20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은 20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쿠팡 배달노동자(퀵플렉스 기사)들이 배달 구역 회수(클렌징)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상시적 과로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호소했다.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위원장 진경호)은 20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CLS는 쿠팡의 물류 자회사로 배송 서비스 ‘퀵플렉스’를 운영한다. 퀵플렉스는 지입차 업체와 계약을 통해 최소 1톤 트럭 이상의 화물차를 보유한 배달노동자를 간접고용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는 지난 1일부터 12일까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실시한 쿠팡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실태에 관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응답자 282명 중 유효 응답 278명을 중심으로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구역 회수(클렌징) 불안감 있는 노동자 78%
“클렌징으로 일감 줄면 해고와 비슷”

조사 결과 응답자 78%는 구역 회수를 당할까 봐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매우 불안하다고 답한 비율은 45.3%에 달했다. 실제로 구역 회수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42.4%가 ‘있다’고 밝혔다.

구역 회수는 일감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간접고용된 쿠팡 배달노동자들은 일감이 줄어들면 수입도 줄지만, 사실상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박석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사실상) 부당해고를 클렌징이라는 이름만 갖다 붙인 것이다. 이는 노동자·소비자·규제 당국을 모두 헷갈리게 만드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가면을 쓰고 나온 쿠팡 배달노동자 A씨는 “배달 업무 수행률이 떨어지면 클렌징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많은 동료들이 시간에 쫓기며 장시간 노동과 관절 부상 등에 시달리고 있다”며 “클렌징이 된다는 것은 일자리를 잃는 것과 다름없다. 최소한의 계약 기간도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을 느껴야 하는 현실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은 20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택배노동조합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은 20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택배노동조합

식사·휴게시간 하루 평균 18분
42.8%, ‘휴게시간 없다’고 답해

클렌징에 대한 우려로 무리하게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조사 결과 응답자들의 일주일 중 평균 근무일수는 5.9일,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9.7시간이다. 응답자 31.4%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루 평균 식사 및 휴게 시간은 평균 18.1분으로 드러났다. 응답자 42.8%는 아예 휴게시간이 없다고 응답했다. 한 달 평균 휴일 및 휴가 사용일수는 평균 4.8일로 낮게 나타났다. 이주환 부소장은 “이 정도의 휴게 시간과 휴일 사용이면 사실상 일과 가정의 양립은 어렵다고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쿠팡 배달노동자 B씨는 안전하게 일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도 밝혔다. 배송시간에 맞춰 물건을 들고 뛰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침 7시까지 배송을 하라고 지시받지만 물건을 적재하는 시간이 새벽 4시 반~5시 정도다. 물건 정리 시간, 이동시간 등을 고려할 때 어떻게 안전하게 배송할 수 있겠나”라며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배송기사들은 경제적 수입, 해고 불안에 대한 부담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은 “현재 CLS와 대리점 간 계약서를 입수하고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등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추후 기자회견을 통해 쿠팡 배송기사들의 계약서가 불법적인지,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를 쿠팡이 지키고 있는지 등을 정리해서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택배노조는 다음 주 중 택배노조 산하에 쿠팡 배달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출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택배노조는 “쿠팡 배달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택배노조도 같이 맞서서 싸워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