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 참 힘들겠구나”···‘입장 확인’ 토론회만 계속
“정의로운 전환 참 힘들겠구나”···‘입장 확인’ 토론회만 계속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4.26 21:52
  • 수정 2023.04.26 2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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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탄소중립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토론회
촘촘하고 과감한 정책 재차 주문한 노사전에 정책 설명한 정부
26일 오전 9시 40분 국회의원회관에서 ‘기후위기시대, 탄소중립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토론회가 진행됐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한국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토론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어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질문과 답변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는 걸 확인하는 게 이 토론회의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주제로 26일 진행된 토론회에서 발제한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에는 산업부·고용노동부·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과장급 관계자가 자리했다. 독일의 탈석탄위원회, 탈석탄법 제정과 같은 틀을 갖추지 않고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한지, 배제된 노동자들은 어떤 경로로 정의로운 전환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지 정부에 질문한 이유진 부소장은 뚜렷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토론에서 이미 발표했던 정책을 다시금 설명했다.

이유진 부소장은 토론회 말미에 “탄중위에서 그래도 진전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기존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걸 보고 개인적으로 충격이었다”며 “2019년 유럽이 탄소국경조정제를 내놓을 때 한편으로 어떻게 측정하고 비용을 부과할 것인지가 화두였다. 그런데 오는 10월부터 유럽으로 수출하는 철강회사는 배출량을 계산해서 내놔야 한다. 세계는 이런데 한국이 계속 후퇴한다면 그 충격은 약한 사람들에게 갈 것이다.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산업전환으로 ‘괜찮은 일자리’ 만들고
노동전환은 촘촘히 지원해야

산업전환의 이해당사자들이 서로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 26일 오전 9시 40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기후위기시대, 탄소중립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토론회를 통해서다.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이수진(비)·김경만·윤건영·이동주·이해식·전용기·천준호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노동자와 중소상인, 자영업자와 전문가들은 정부에 과감하고 촘촘한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주문했다. 발제에서 노용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정의로운 전환의 출발점은 ‘괜찮은 일자리의 창출’이라고 주장했다. ‘큰 투자’를 통해 산업전환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유인을 정부가 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노용진 교수는 “피해 근로자의 보호를 위해선 괜찮은 일자리가 창출돼야 하는데, 우리나라서 사용되는 개념엔 괜찮은 일자리 창출이 빠져 있다. 인프라촉진법을 통해 크게 투자하고 있는 미국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며 “정부 정책에서 사용되는 정의로운 전환은 비용과 수익의 공정한 분담 측면으로 작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 전망이 산업 경쟁력을 악화시키지 않고 일자리 창출도 상당 부분 할 수 있는 전망을 보여주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탄소감축의 실행 동력은 기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기업들의 탄소감축 동인을 떨어뜨리는 부분을 줄여줄 필요가 있고, 정의로운 전환에 드는 비용도 많은 부분 정부가 감당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며 “기후위기는 시장 실패에서 비롯됐다. 탄소감축을 위한 시장이 만들어지면 민간 기업에선 상상을 뛰어넘는 기술혁신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정의로운 전환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은 전혀 없고 탄소중립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지 여전히 안개 속”이라며 정부 정책이 구체적이지 않단 점을 지적했다.

이유진 부소장은 “4월 완성된 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보면 기본 원칙*은 잘 세웠으나 실제 계획에 구현되지 않고 있다”며 “정의로운 전환에 2조 2,203억 원, 연간 4,440억 원을 쓴다고 하는데 이 돈이 어디에 쓰일 것인지 나와야 한다. 정책을 펴고 예산을 지불할 때는 얼마나 돈이 들 것인지 예측을 해야 하는데 ‘몇 억 원’처럼 선언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신뢰감을 줄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했다.
*기후정의를 추구하며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동시에 극복하고 취약한 계층·지역을 보호하는 등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 녹색기술과 녹색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회로 활용, 모든 국민의 민주적 참여 보장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한 “한국 사회는 산업전환에 대한 법을 따로따로 만들고 따로따로 논의를 한다. 산업전환과 노동전환, 지역전환은 같이 논의될 수밖에 없는 의제다. 따로따로 이야기하다 보니 노동과 관련해서는 교육 등(을 논의할 수밖에 없는) 한정적인 구조를 갖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장기적인 기반 구축에 대한 통합적인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환경연구원(KEI)은 중층적 거버넌스를 만들기 위해 탄소중립위원회처럼 전국 단위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전환부문(산업·업종)별 대화 기구를 구성하고, 이를 지자체 수준의 사회적 대화 운영과 산업·업종별 및 기업 차원의 단체 교섭과 연계하는 ‘투트랙 전략’을 써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이유진 부소장은 “경사노위와 탄중위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했다. “산업·노동전환 과정의 피해자들에 대한 보이스 기제로 경사노위와 탄중위 등 두 기구가 가진 장단점이 서로 다르기에 양 기구를 동시에 활용할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효성 있는 지원 강조한
산업전환 이해당사자들

토론에서 이해당사자들은 지원 없는 산업전환은 막막하고, 아직까지는 정책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진 한국자동차부품협회 정책연구소장은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는데 목적성이 없다. 대체 어떤 커리큘럼으로 적용을 해서 정의로운 전환을 할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모든 걸 힘이 없는 중소 부품사들에게 알아서 전환하라는 무책임한 정책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이제는 중소부품사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하고 중소부품제조사들이 글로벌 차원에서의 공유 생산기지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 총연합회 사무총장은 “10년 전 복지 문제가 화두가 됐을 때 맞벌이 부부를 위해 학교 준비물 부담을 없애겠다고 학교에서 준비물을 구입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동네 문구점은 다 망하고 다이소같은 대형 마트가 문구 업계의 큰손이 됐다”며 “사회가 진보하며 생기는 부작용인데, 탄소중립도 유사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30년 동안 자동차 정비업을 하셨던 분들은 어떻게 업종 변경을 해야 하나. 자영업을 걸림돌로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함께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재환 공공노련 남동발전노조 분당지부 지부장도 “발전소 현장에서 에너지 전환은 심각한 현실이고, 노동자들에게 고용 문제는 생계와 직결되지만 산업전환 과정에 노동자 참여는커녕 의견 청취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며 “정의로운 전환에 노동자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해야 하고 공공성을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 지원하겠다는데
‘내용 없다’ 지적도

나병호 금속노련 정책국장은 “2020년 노조가 실태조사를 했을 때 현장에선 재교육과 훈련을 크게 요구하고 있었는데, 산업전환 공동훈련센터 운영을 보니 개설된 과목이 산업전환 리더십과 친환경 산업동향 등이었고 훈련 시간은 길어야 이틀이었다”며 “이런 교육을 통해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이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 상당한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같은 자동차 부품이라 하더라도 탄소 중립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부품군, 중립적인 부품군, 긍정적인 부품군이 혼재돼 있어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결정할 영향력이 있는 분은 정년 때까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동력이 떨어진다”는 고민도 털어놨다.

이에 이산철 산업부 산업환경과장은 “산업부에서는 새로운 (탄소)감축 수단 확보가 중요한 과제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과 근로자, 지역에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계층도 있을 것”이라며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정부 대책이 기본계획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은 동의하고, 과제별로 세부 이행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리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임동희 고용노동부 지역산업고용정책과장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탄소 다배출 산업을 전환할 필요가 있고,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근로자분들도 불안해하시고 그래서 선제적으로 대응하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보완하면서 추진하겠다”고 했다.

양대성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포용전환과장은 “기본계획이 반드시 차질없게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본다”며 “이해당사자들 참여를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고, 피해가 예상되는 곳에 대한 선제적인 내용이 기본계획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좌장을 맡은 안현효 대구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는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사실 탄중위의 발제문을 보면 큰 틀과 내용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노동전환에 대한 정책을 하나씩 보면 다 교육이다. 교육에 투자하겠다고 하는 건 좋지만 커리큘럼을 보면 내용이 없다. 내용이 없다는 건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라며 “교육에 투자 해봤자 큰 돈 드는 건 아니니 고용안정 등에 과감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