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국가의 빈자리 메운 선한 사마리아인들
이태원 참사, 국가의 빈자리 메운 선한 사마리아인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7.05 19:10
  • 수정 2023.07.12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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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외면한 정부·여당, 유족의 질문은 계속된다
[인터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대표직무대행, 최선미 운영위원

참여와 시민단체

참여와혁신이 매달 노동·시민·사회단체를 소개합니다. ‘참여’는 일터 내 민주주의뿐 아니라 일터 밖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참여민주주의 학교인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의 참여 경험을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참여와 시민단체⑬]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우리가 사회적 참사로 아픔을 겪는 마지막 유족이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 전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독립된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한 진상조사 △재발방지책 수립이 특별법의 핵심이다. 본회의가 열리기 나흘 전인 지난달 26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 중이던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의 이정민 대표직무대행(이주영 씨 아버지)과 최선미 운영위원(박가영 씨 어머니)을 만났다. 두 유족은 특별법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자 단식을 중단했다.

6월 26일 국회 앞 단식농성장 인근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9명의 비난보다 큰 1명의 연대

- 유족들이 직접 나서서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요구하고 있다.

이정민 다들 평범한 가정의 엄마, 아빠였다. 참사를 겪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 유가족끼리 만남은 우리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만나서 대화를 하니까 뭔가 위로되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참사에 대한 의혹이나 이상한 정황들이 많이 드러났다. 목격담이나 경험을 공유하면서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점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 거다.

사실 처음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졌을 때 과연 경찰이 진짜 책임자들, 즉 자기 윗선을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역시나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꼬리 자르기가 돼버렸다. 기대했던 국정조사마저 흐지부지됐다. 그 후 정부·여당은 이태원 참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159명의 국민이 죽었으면 대통령이 유가족들 앞에 한 번쯤은 나타날 수 있지 않은가.

왜 이렇게 철저하게 외면하는지, 왜 이렇게 끝없이 단절하려고 하는지 생각하게 됐다. 우리가 품은 의혹과 정부 행태를 퍼즐처럼 맞춰봤을 때 ‘밝혀지면 안 되는 게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부 기관이라도 제대로 수사할 수 없다고 봤다. 정부나 여당의 힘이 미치지 않는 자체적이고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통해서만 진상을 규명할 수 있다.

- 어느덧 유가족협의회가 출범하고 활동한 지 약 200일이 지났다.

이정민 한 가지 확실히 한 건 우리 유가족들이 굉장히 단단해졌다. 초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그야말로 소시민들이 모여서 울기만 했다.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토록 강해졌다는 것에 스스로도 깜짝 놀란다. 부모들이 정말 투사가 다 됐다. 기자가 인터뷰를 하려고 마이크를 대면 도망가던 엄마들이 요즘은 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다. 또 여러 단체와 시민들이 7개월 넘게 함께 해줬는데, 점점 가까워져서 이제는 거의 가족 같다.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직무대행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가 가장 큰 힘이었다고 말해왔다.

이정민 유가족끼리 만났지만 막상 우리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너무 당혹스러웠다. 민변과 각종 시민사회단체가 T/F를 구성해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를 만들어서 우리를 지원해 줬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유가족협의회를 만들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특히 사회적 약자는 연대의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녹사평역에서 서울시청으로 합동분향소를 옮겼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분향소를 광화문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경찰들에 가로막히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서울시청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서도 경찰 병력 때문에 분향소를 도저히 설치를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우리와 함께 행진하던 시민들이 앞장서서 길을 터줬고, 그 덕에 겨우 분향소를 설치할 수 있었다. 우리를 위해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경찰들과 부딪히면서 분향소를 만들어 준 그 연대는 제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이 필요한 때가 생기면 나도 꼭 그 역할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항상 하고 있다.

최선미 지난 3월 27일부터 열흘간 ‘진실버스’를 타고 전국 13개 도시를 돌았다. 시민들에게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에 동참해줄 것을 부탁했다. 힘들다고 아프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우리의 목소리는 작다. 그런데 각 지역마다 얘기를 들어주거나 함께 목소리를 내준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모이니까 목소리가 커졌다. 그렇게 점점 커진 목소리가 국민동의청원으로 모였다. 덕분에 국회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발의될 수 있었다. 연대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게 해줬다. 함께 했을 때 작은 목소리가 커지고, 아픔은 분노가 돼서 울분으로 터져 나온다. 우리의 작은 화가 모여 분노가 되고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만드는 게 연대다.

- 이태원 참사에 대한 2차 가해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진실버스 순회 중에도 유족에게 상당히 공격적인 언행을 하는 시민이 있었다.

최선미 2차 가해는 너무 많다. 그런데 연대도 그만큼 많았다. 음료수를 사다 주거나 가던 차를 세워서 힘내라고 하던 시민들이 있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일제히 창문을 열어서 손을 흔들어 주던 모습도 생생하다. 전단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버려진 전단을 펴서 가져다주는 사람도 있다. 대신 전단을 나눠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정민 우리가 피케팅을 할 때 9명이 비난과 야유를 보내도 1명이 힘내라고 말하면 9명의 비난은 다 사라진다. 연대의 힘은 그만큼 강하게 와 닿는다. 비난의 강도보다는 1명의 연대가 훨씬 크게 느껴지고, 2차 가해로 입었던 상처도 치유된다.

-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우려하며 언제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을 했다.

이정민 우리 딸아이의 약혼자가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그 트라우마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엄청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굉장히 염려스러웠다. 직접 현장에서 봤기 때문에 부모인 나보다 더 큰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생존자 중에서 혹시라도 그런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 혼자 놔둬서는 안 된다. 결국 159 번째 희생자인 고등학교 2학년 아이가 그 트라우마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나.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이 사회가 알아야 한다. 절대 ‘살았으니 됐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끝까지 관찰하고 치료해야 하는데, 사회가 그들을 너무 등한시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생명에 경중이 없듯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생명은 없지 않나.

최선미 생존자는 유족과 굉장히 가깝다. 이태원에 혼자 간 희생자는 거의 없다. 곁에 친구, 애인, 부모가 있었다. 결국 우리 식구들이다. 그러니 생존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면 만나서 얘기를 들어야 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생존자의 아픔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그들을 치유하고 증언을 듣는다면 우리와 만날 일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안 하고 있다. 우리가 희생자만 생각할 수는 없다 절대로.

최선미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다시 참사가 발생한다면 
우리의 아픔이 될 게 분명하다”

- 유족들이 얘기를 나누며 알게 된 정부 대응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정민 굉장히 많지만, 핵심 중 하나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말한 ‘골든타임’이다. 이상민 장관은 ‘골든타임이 지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굉장히 분노했다. 왜냐면 골든타임이 지났다던 그 시간대에 맥박이 뛰던 아이가 있다고 희생자 가족 중 한 명이 말했기 때문이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고 구조를 위한 즉각적인 노력을 했다면 적잖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찬 바닥에 희생자들을 눕혀놓고 2시간 동안 방치했다. 살아있던 사람도 사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심지어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다가 너무 추워서 깼다는 생존자도 있다. 그 많은 사람을 내버려 뒀다는 걸 우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대체 왜 그런 조치를 했는지 밝혀야 한다.

최선미 우리 가영이와 함께 이태원에 갔던 친구가 말하길, 가영이가 새벽 1시 30분쯤에야 구급차를 탔단다. 2시간을 땅바닥에 있었던 건데 그동안 제대로 구급조치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함께 간 그 친구가 대신 2시간 내내 가영이에게 심폐소생을 했다더라. 이유를 물어 보니 포기할 수 없었단다. 옆에 누워있던 사람이 심폐소생술을 받고 깨어난 걸 여럿 봤기 때문에, 가영이도 일어날 거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심폐소생을 했다는 거다.

이상민 장관이 ‘골든타임이 지났다’라고 얘기했던 바로 그 시점이다. 그러니까 분명히 150명이 넘는 희생자들은 같은 시간에 한 번에 간 게 아니다. 사고 후 적정한 조치를 못 받고 서서히 시간차를 두고 희생됐다. 누구도 ‘골든타임’이란 말을 할 수 없다. 이상민 장관이 골든타임이라고 말한 것 자체가 너무 오만하다. 밑에 당직자들의 얘기만 듣고서 사고가 오후 10시 15분에 일어났으니 오후 11시 20분쯤에 이미 사람이 다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 같다. 장관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런 이야기를 해선 안 된다. 응급실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을지언정 아이들을 그곳으로 옮겼어야 했는데, 체육관이나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복도로 옮겼다.

그리고 우리 가영이는 친구가 옆에 있었는데도 무연고자로 분류됐다. 그 바람에 저는 12시간을 아이만 찾으러 다녔다. 가영이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얘기를 나눠 보니 무연고자로 분류된 사람이 더 있었다. 성인의 신원을 몇 초 만에 확인할 수 있는 게 우리나라다. 의혹이 너무 많은데 하나하나 밝혀진 게 없다. 국정조사든 특수본이든 진상을 규명하려고 마련한 게 아니라고 본다. 자신들이 저지른 오류를 덮기 위해서 수사를 한 것 같다. 참사 당일 왜 질서 유지를 못 했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물어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런 핑계만 대고 있다.

- 일각에서는 유가족협의회를 정치단체로 규정한다.

이정민 정부·여당이 짜놓은 프레임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특별법이 상정이 되자 국민의힘 간사인 이만희 의원이 이렇게 말했다. ‘특별법은 진상조사위원 추천 배정을 여당 3명, 야당 3명, 유가족 3명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중립적이지 못하다’고. 유가족 추천 위원 3명을 야당 인원으로 본 거다. 마치 정치색을 가진 것처럼 말하는데, 가족을 잃은 사람이 정치를 할 여유가 어디 있나.

그동안 우리는 정부·여당에게 참사에 대한 의혹을 해소해달라고 계속 요청했다. 한 번이라도 그 상황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노력했으면 아마 특별법을 만들라고 안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유족에게 단 한 번 브리핑조차 한 적이 없다. 그런 정부·여당에서 특별법을 정쟁의 수단으로 얘기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논리다.

최선미 정쟁이라고 말하려면 서로 논쟁이라도 있어야 한다.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여당 말이 맞으면 우리가 설득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우리와 전혀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태까지 경찰, 소방, 행정안전부 중 누구 하나 우리한테 와서 참사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답이 없다. 하다못해 이태원 참사로 인한 원스톱지원센터를 만들었으면, 그래서 뭔가 지원을 해주려면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와서 살펴봐야 한다. 실태조사라도 하는 게 맞을 텐데 정말 뒤통수 한 번 못 봤다.

- 특별법 제정으로 바라는 것은?

이정민 정말 얘기하고 싶은 건 딱 한 가지다. 안전을 절대 도외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안전을 무시하다가 계속 참사의 아픔을 겪었다. 우리가 사회적 참사로 아픔을 겪는 마지막 유족이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투쟁하고 있다.

최선미 우리가 특별법을 통해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실 그 혜택을 우리 아이들이 받는 게 아니다. 앞으로 살아갈 청년들이 받게 된다. 특별법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이다.

자식을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픔이 얼마나 큰지 상상도 못할 거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엄마가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일주일간 식사도 못 하고 누워만 있었단다. 아픔이 다시 재연됐기 때문이다. 다시 어떤 참사가 발생한다면 그건 우리의 아픔이 될 게 분명하다. 우리는 이 아픔을 두 번은 겪고 싶지 않다. ‘나만 아니면 된다’라고 누군가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아픔은 나만 아니면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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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은 4월호에 소개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에 지난 5월 9일 후원금 30만 원을 전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