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농성·단식···원청과 교섭하려고 안 해 본 투쟁 없다”
“파업·농성·단식···원청과 교섭하려고 안 해 본 투쟁 없다”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08.08 01:45
  • 수정 2023.08.08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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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열린 서비스노동자 증언대회
“노사 자율로 교섭 이뤄져도 사용자에게 교섭 의무 없으면 유지 어려워”

[리포트]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하는 서비스 노동자들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서비스산업·하청·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 국회 기자회견’에 참가자들이 ‘노조법 2·3조 개정하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하는 서비스업 간접·특수고용노동자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가전제품 방문점검, 대리운전, 마트 온라인배송, 면세점, 방과후학교, 음식배달, 백화점, 콜센터, 택배, 학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서비스노동자들이 국회에 모였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의 범위가 확대된다. 노동조건에 관해 실질적 영향력이 있는 원청 등이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임금 체불이나 부당해고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쟁의행위가 가능해진다. 또 쟁의행위와 관련한 손해배상책임을 노조, 조합원 등에 물을 때 개별적인 귀책사유와 기여도를 구체적으로 정하게 했다. 배상의무자 각각에 과다한 배상책임이 부과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취지다.

국회에 모인 서비스노동자들은 대부분 간접고용·특수고용노동자다. 이들 가운데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원청의 지배 아래 노동조건이 결정되기도 하고, 플랫폼업체와 계약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업체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업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기업별 노사관계에 포괄되지 않는 이들은 교섭권, 파업권 등을 보장받으려면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지난 7월 20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서비스산업 하청·간접고용·특수고용노동자 증언대회’에서 나온 내용을 참고했다. 증언대회는 서비스연맹,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은미·이은주 정의당 의원, 강성희 진보당 의원,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파업·농성 등 투쟁으로 교섭 기회 얻어
사용자 교섭 의무 없어 단협 갱신 어렵기도

일부 사업장에서는 노사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교섭이 이뤄지기도 했다.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은 특수고용노동자 최초로 1999년 노조를 설립하고 2000년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2년마다 갱신돼야 하는 단협은 2021년까지 총 5차례 갱신됐다.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은 갱신할 때마다 더 나은 노동조건을 단협에 포함하길 바랐다고 했다. 하지만 2018년 6월 이들의 노조법상 노동자성이 법원 판결에 따라 인정되기 전까지 법적으로 사용자인 재능교육에 교섭 의무는 없었다. 따라서 사용자가 교섭이나 단협 체결을 회피해도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았고, 이 점이 단협 갱신을 비롯한 노조 활동이 어렵게 된 원인이라고 학습지산업노조는 설명했다.

정난숙 학습지산업노조 비상대책위원장은 “재능교육 조합원들은 단협을 체결하기 위해 파업, 삭발, 천막농성, 단식농성, 고공농성 등 안 해 본 투쟁이 없다. 그렇게 약 20년간 노조를 지켜왔다”며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교원구몬 조합원들은 어떻게 더 처절해야 단체교섭을 시작할 수 있을까. 노동 3권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는 노조법 2·3조가 개정돼 학습지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가 보장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1년 가전제품 방문점검원으로 최초로 단체교섭에 돌입했던 가전통신노조 코웨이코디코닥지부는 1년 2개월 만에 첫 임단협을 체결했다. 김순옥 코웨이코디코닥지부 지부장은 “노조 설립신고필증을 받은 후 교섭을 열어내는 데도 1년 8개월의 긴 투쟁의 시간이 필요했다”며 “임단협이 체결된 이후에도 사측은 방문점검원의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원 판결을 받고자 했다. 결국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우리와 같은 특고를 보호해주는 법과 제도가 부족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대리운전노조는 모빌리티 플랫폼업체인 카카오모빌리티와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노조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기까지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교섭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도 험난했다고 밝혔다. 김주환 위원장은 “지노위, 중노위에서 노조와 교섭을 해야 한다는 판정이 나왔지만 카카오모빌리티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시간 끌기를 했다. 기나긴 투쟁 뒤에 교섭이 이뤄졌지만 사측의 교섭 태도는 여전히 소극적이었다”며 “특고의 노동기본권과 생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조건에 영향력 행사하는 자도 사용자
“고용에 대한 책임 회피 막으려면 법 개정 절실”

교섭을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못한 서비스업 사업장들은 훨씬 많았다. 이 가운데 일부 서비스노동자들은 직접적인 노동계약 관계에 있는 사용자가 노동시간·휴일 등 노동조건과 근무 환경에 대한 결정권이 부족하다고 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보고 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강정구 백화점면세점노조 로레알코리아지부 법규국장은 “일부 백화점 관리자들은 특정 행사가 있는 날에 입점 업체 노동자들을 출근시키라는 등의 지시를 한다. 또 매장 매출이 부진하면 사유를 보고해야 하고 페널티를 부여받기도 한다”며 “노동자의 근무스케쥴, 업무 지시 등 많은 부분에 관여하고 있는 백화점은 입점 업체 노동자들의 원청으로서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수암 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지회장은 “온라인배송노동자들은 출근해서 상품을 상차하는 업무를 하는 장소가 대형마트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시설 하나라도 바꾸려면 대형마트에 요구할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이나 근무일수 조정 등도 운송사보다 대형마트에서 결정되는 사안”이라며 “하지만 직접적인 계약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조와 대화를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 대우받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대형마트들이 교섭에 나서길 바라며 이를 위해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