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탈출 꿈꾸는 20대 버스기사
경기도 탈출 꿈꾸는 20대 버스기사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9.04 16:38
  • 수정 2023.09.06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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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눈으로 23시간···“몸으로 때우는 버스 근무 바뀌어야”
“길어진 배차 간격, 인력 유출 못 막으면 대책 없어”

경기도 버스업계가 인력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3년간 경기도 버스운전기사 수는 3,000여 명 감소했다. 2019년 12월 기준 2만 4,882명이던 버스기사는 2022년 12월 2만 1,855명에 불과하다.

가장 큰 원인으론 민영제 노선버스의 열악한 근무조건이 꼽힌다. 경기도버스노동조합협의회는 준공영제와 1일2교대제 시행으로 광역버스는 인력이 증가한 반면, 경기도 공공버스(준공영제 노선)에 비해 월 50만 원, 서울 시내버스에 비해 월 100만 원 적은 저임금과 장시간 운전을 하는 민영제 노선에서 인력 이탈이 집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 버스기사들은 대체로 근무조건이 나은 것으로 알려진 사업장으로 이직한 것으로 업체는 파악한다. 신규 입사자들은 채 몇 개월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둔다. 경기도 내 일부 업체는 버스기사를 충원하기 위해 다른 사업장 부근에서 채용홍보를 한다. 버스기사 쟁탈전이다. 인력난을 겪는 업체들은 궁여지책으로 시내버스 노선의 배차 간격을 늘렸다. 버스기사 부족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도민들의 불편이 가중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 참여와혁신 DB
ⓒ 참여와혁신 DB

20대 버스기사가 겪은
경기도 민영제 버스의 현실

임준우 씨(28세·가명)는 올해로 경기도에서 4년 넘게 버스기사로 일하고 있다. 군대를 전역한 직후 화성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버스운전자 양성과정을 수료해 2019년 경기도 내 버스 업체에 취업했다.

입사 후 처음 6개월 동안은 중형버스(마을버스 등)를 운전했다. 일종의 심사·적응 기간을 거친 셈이다.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신규 버스기사들은 중형버스 운전을 통해 ‘실전’을 터득한다. 통상 버스회사들은 이 기간을 큰 사고 없이 보낸 신규 입사자에 한해 대형버스(시내버스 등) 운전을 맡긴다. 중형버스에 비하면 대형버스기사는 처우가 낫기 때문에, 신규 버스기사들은 하루빨리 대형버스로 옮기는 날만 기다리며 중형버스를 운전한다.

임준우 씨는 중형버스를 운전하던 당시를 “이 악물고 버티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낮은 임금과 장시간노동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4~5시간 자면서도 이틀 연속 근무하는 ‘따블’은 일상이었다. 사흘 연속 버스를 몬 적도 있는데, 퇴근하면 잠자리로 뛰어들기 바빴다. 그럴 때면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했다. 나는 그나마 출근지까지 가까운 곳에 살았지만, 집이 먼 사람은 잠을 더 줄여가면서 일했다. 중형버스 종점은 농촌인 경우가 많아서 기사가 쉴만한 차고지나 휴게실도 없다. 논밭 주변에 차를 세우고 쉬다가 주민들에게 쫓겨 도망 다녔다.”

중형버스 기사들의 바람과 달리 대형버스로 가는 길목은 좁아졌다. 코로나19 이후 발생한 인력난 때문이다. 신규인력 유입이 정체되면서 중형버스기사는 경력을 다 채우고도 대형버스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 달간 중형버스 지원을 나갔던 임준우 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중형버스기사가 2~3일 연속 근무를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다. 빨리 대형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입사했지만, 그 목표를 이룰 수 없게 되자 적지 않은 기사들이 근무환경이 나은 회사로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그게 경기도 버스의 현실이다.”

“노동강도에 못 미치는 임금
실망한 동료들은 더 나은 일터로”

힘든 시간을 감내하고 대형버스를 몰게 되면 만족스러울까. 임준우 씨는 “초기엔 20대 또래도 많았는데 1~2개월 하고 다 나갔다. 함께 일하던 분들 중 30% 정도는 노동조건이 좋다고 소문난 곳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버스기사 임금이 나쁘지 않다는 말을 듣고 입사했지만, 막상 해보니 노동강도 대비 적은 임금에 불만을 느끼고 현장을 떠난다는 얘기다. 이들 민영제 노선버스기사는 대체로 준공영제를 도입한 서울이나 광역급행버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출퇴근 버스 등으로 이직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로 격일제 근무가 꼽힌다. 현재 경기도 민영제 버스노선 대부분은 격일제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다음 날 쉬는 ‘퐁당퐁당’ 근무다. 일하는 날 임준우 씨의 업무시간은 17시간 내외다(화장실, 흡연시간 포함). 출·퇴근, 식사, 휴식시간 등을 모두 포함하면 하루 23시간을 뜬눈으로 보낸다.

“경기도 민영제 시내버스는 완전히 몸으로 때우는 일이다. 하루 3번 이상 부산까지 갈 정도의 긴 거리를 가다 서다 반복하며 운전하면 정말 힘들다. 버스기사는 몸이 망가지고 승객은 다칠 수 있다. 서비스도 갈수록 안 좋아진다. 아침에는 승객을 대하는 태도나 운행이 부드러운데, 저녁으로 갈수록 극한으로 힘들어지니 무뚝뚝해진다. 손님들이 탈 때마다 건네던 인사 횟수도 줄고 대답도 잘 안 나온다.”

▲ 격일제로 근무하는 임준우 버스기사의 8월 25일 일정표. 순수 업무시간만 17시간에 달한다.

격일제로 일하는 다른 민영제 버스기사들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는 20년 경력의 A 씨는 아침 8시부터 첫 차를 운행하고 자정쯤 업무를 마친다. 경기도버스노조협의회는 “(민영제 노선 버스기사들은) 격일제로 하루 17~18시간 장시간 운전”을 한다고 밝혔다.

모든 민영제 노선 버스기사들이 1일2교대제를 바라는 건 아니다. 현장에서 만난 수십 년 경력의 버스기사들은 이미 몸에 밴 격일제 근무를 개인적으로 선호한다고 밝혔다. A 씨는 “한나절 일하든 하루 종일 일하든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격일제로 하루 종일 쉬면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으니 볼일 보기도 좋다.”

다만 A 씨는 1일2교대제 도입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회사를 떠난 젊은 사람들은 17시간 근무를 힘들어한다. 앞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와야 하기 때문에 2교대제로 가야 한다”는 게 A 씨 생각이다. 29년간 민영제 노선에서 근무한 B 씨도 비슷한 의견이다. “어중간한 시간에 퇴근하는 1일2교대제보다 다음날 종일 쉬는 격일제가 낫다. 그런데 젊은 기사들은 오후 5~6시에 퇴근해서 친구·가족과 어울리고 싶어도 격일제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없어 그만두는 기사들이 많은데, 1일2교대제를 하면 좀 해결되지 않을까 한다.”

경기도 민영제 노선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버스운전기사(사진은 가사와 직접 관련 없음)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버스기사 인력난,
승객도 힘들어진다

현장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은 버스기사 감소가 이미 서비스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임준우 씨가 운행하는 노선을 처음 맡았을 당시에는 11~12분이던 운행 간격이 지금은 20분으로 바뀌었다. 임준우 씨는 배차 간격이 길어지면서 승객뿐 아니라 운전기사까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배차 간격이 늘면 한 번에 탑승하는 승객이 많아진다. 승차 인원이 많을수록 운행 속도가 느려져 앞-뒤 버스 간격은 점점 벌어진다. 차량 간격이 벌어질수록 탑승객은 많아지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승객들은 버스 시간에 민감하다. 늦게 왔다며 화를 내는 승객은 항상 있다. 일하면서 겪는 스트레스의 절반 이상은 승객으로 인해 생긴다. 그럴 때면 도로 상황에 맞춰 운행하느라 지연됐다고 설명하지만, 승객에게 폭행을 당한 적도 있다. 경험 적은 운전기사라면 조급한 마음에 빨리 가려다 사고를 낸다. 배차를 늘리면 시민도 편할 것이고 기사도 부담이 덜하겠지만, 그건 인력 부족을 해결하고 난 다음에야 가능할 일이다.”

평택시에서 승객이 많다고 알려진 1502번 버스조차 배차 간격이 8~10분에서 11~14분으로 최대 2배 가까이 길어졌다. 해당 노선을 운영하는 협진여객은 지난 3년간 퇴사자가 입사자보다 많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퇴사자는 198명인데 비해 같은 기간 입사자는 152명에 그쳤다. 연령대로 보면 총 247명 중 50~60대가 무려 82%(201명)를 차지한다. 30대 이하는 1%(3명)에 불과하다. 버스기사 부족으로 134대 차량 중 30대는 휴차(休車)로 등록돼 있다. 서안석 경기지역자동차노조 협진여객지부 지부장은 “시에서 내준 1502번 노선 운행 허가 대수는 24대지만, 지금은 19~20대만 가동”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인력난을 해소하고자 협진여객은 2021년 단체교섭에서 1일2교대제로 전환에 합의했다. 2년가량 유예기간을 두고 2023년 7월부터 1일2교대제를 도입하기로 했으나, 사측은 인력과 인건비 부족 등을 이유로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서안석 지부장은 “1일2교대제를 하려면 인력이 100명 정도 더 필요하지만, 경기도 전체 버스기사가 부족해서 인력수급이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특히 사측은 인건비 상승을 문제 삼는다. 시에서 지원을 해주더라도 그해 예산 편성, 시의회 심사에 따라 지원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회사도 인력을 충원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만, 경기도에서 준공영제를 도입하면 조례에 예산이 명시되기 때문에 그런(지원 감축) 불확실성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버스 업계 요구에 따라 경기도는 지난해 9월 ‘김동연 도지사 임기 내 일반시내버스 전 노선을 준공영제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던 경기도는 지난 7월 경기도형 준공영제인 ‘시내버스 공공관리제’ 도입 계획을 발표하며 준공영제 완료 시기를 2027년으로 늦추고, 전환 시작 시점도 올해 9월에서 내년 1월로 미뤘다. 1일2교대제 도입 계획도 불확실하다. 경기도는 재정 부족을 이유로 밝혔지만, 준공영제를 기다려 온 버스기사들은 민영제 노선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임준우 씨도 “광역급행버스로 이직을 마음먹었던 지난해에 경기도가 준공영제를 발표했다. 준공영제를 약속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지만 경기도가 약속을 미뤘다. 1년을 기다렸는데 그 소식을 듣고 화가 났다. 이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았으니, 갈 수 있다면 임금도 복지도 나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