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전관 문제 아냐” 건설 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실시공의 진짜 원인
“LH 전관 문제 아냐” 건설 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실시공의 진짜 원인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09.07 06:51
  • 수정 2023.09.07 06: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단계 하도급→공사비 삭감→공기단축→저임금’ 구조 깨야
“발주자에게 책임 물어야” “노동자에게 적정임금 지급” 등 대책도 제시
(왼쪽부터)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전문위원, 함경식 노동안전연구원 원장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왼쪽부터)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전문위원, 함경식 노동안전연구원 원장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리포트] 건설 전문가가 말하는 부실시공

지난 4월 인천 검단동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지하 주차장이 붕괴했다. 이 현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하고 GS건설이 시공을 맡은 공공분양 아파트였다. 붕괴한 지하 주차장은 무량판 구조로 지어지고 있었다. 이후 LH와 국토교통부(장관 원희룡)는 LH 발주 아파트 중 무량판으로 지어진 아파트 주차장과 주거동에 대한 부실시공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무량판 구조는 벽이나 보 없이 기둥 위에 바로 지붕을 얹는 방식이다. 건설 비용·시간이 적게 들고,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최근 많이 이용되고 있다. 다만, 보나 벽이 없어 기둥과 지붕이 맞닿는 부위에 압력이 몰리면서 구멍이 뚫릴 수 있다. 따라서 기둥 주변에 철근(보강근)을 여러 겹 감아줘야 한다.

조사 결과 무량판 구조를 사용한 102개의 아파트 단지 중 무려 20곳에서 보강 철근(보강근)이 누락된 것이 확인됐다. 일부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보강근이 빠졌다. 나머지는 설계대로 시공되지 않았다.

이후 설계와 감리를 맡은 업체 다수에 LH 퇴직자의 재직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는 ‘LH 전관 카르텔’을 부실시공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강력한 처벌을 예고했다.

LH 전관 카르텔 혁파는 대증요법
다단계 하도급부터 구조적 병폐 잡아야

오랜 시간 건설업에 몸담은 건설업 전문가들은 전관 카르텔 혁파를 주장하는 정부 정책에 관해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는 대증요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건설업은 ‘발주→설계→시공→감리’의 다단계 구조로 이뤄진다. 건설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어느 한 단계에서 이뤄진 부실시공은 다음 단계에서 스크리닝 됐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된 현장들에선 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누구도 부실시공을 잡아내지 못했다. 그런 곳이 전체 현장의 20%나 됐다는 건 산업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함경식 노동안전연구원 원장(건설안전기술사)은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의 수명은 100년 이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건물이 지어진 지 30~40년이 지나면 대부분 안전 문제가 생겨 재시공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한국의 건설업계에 부실시공이 만연하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LH 같은 발주자가 자기 몫을 잔뜩 남기고, 가장 싸게 입찰한 설계·시공 업체에 일감을 준다. 이른바 ‘최저낙찰제’다. 시공사·설계사도 자기 몫을 남기고 다시 하도급한다. 이렇게 최저가로 여러 단계의 도급을 하는 다단계 하도급이 건설업에선 일상화돼 있다”며 “남은 금액으로 공사에 들어가면 이미 공사비가 부족한 상태다. 공기를 비정상적으로 단축하는 방식으로 모자란 공사비를 벌충한다. 이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등 저숙련 노동자가 투입되고, 부실시공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21년 6월 붕괴한 광주 학동 아이파크 아파트 현장에서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받은 단가는 단위 면적당 28만 원이었다. 하지만 두 차례의 하도급을 거친 후 시공하는 업체가 받은 금액은 4만 원에 불과했다.

함경식 원장은 “건물이 무너지지만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빠르게 공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건설업 전반에 만연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도급 업체들은 이윤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설계에서도, 시공에서도, 심지어는 감리에서도 안전 등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며 “이윤을 남기기 위해 공기를 단축하고, 그 과정에서 부실시공이 이뤄지는 것은 건설산업 특정 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문제”라고 분석했다.

함경식 원장은 “예컨대 이렇게 공기 단축을 강조하는 현장 분위기에서 감리는 안전이나 부실시공이 의심돼도 (현장이 급하게 돌아가는 것을 알고 있으니) 쉽게 공사 중지를 명령할 수가 없다. 공사 중지를 하려고 하면 전문건설업체에서 감리에게 ‘이유 없이 공사를 중지하면 민사 소송을 걸겠다’는 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들도 공사비가 부족하니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감리를 압박하는 거다. 상황이 이런데, 감리를 강력하게 처벌한다고 현장이 나아지겠나. 절대 아니다”라며 “지금 정부가 지적하는 LH 전관, 물론 문제 있다. 하지만 그렇게 부분적으로 땜질하듯 처방해서는 절대 부실시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안홍섭 교수 “발주자 책임 강화가 해법”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발주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홍섭 회장은 “지금의 법제도 하에선 발주자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발주자는 설계·시공 업체 선정 등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건설 관련 법에선 시공사, 설계자 등의 책임은 물어도 발주자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발주자에게 적절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8월 27일 국토부는 부실시공을 한 시공사, 건축사사무소, 감리 업체엔 자격정지 등 강력한 처벌을 예고했지만, LH에 대한 처벌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LH에도 강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건설 관련법상 행정처분과 형사처벌 대상에서 발주처는 빠지게 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안홍섭 회장은 “발주자가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역량 없는 설계자를 싼값에 선정한다. 설계자는 역량이 부족하니 다시 구조계산 등을 역량 없는 구조기술사에게 맡긴다. 이런 과정에서 설계상 철근 누락이 발생하는 거다”고 말했다. 이어 “그 후 발주자는 도급한 설계·시공업체에 안전이나 부실시공의 책임까지 전부 넘겨버린다”며 “이처럼 발주자가 권한만 가지고,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를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홍섭 회장은 구체적으로 발주자에게 ▲적기에 시공 역량이 있는 적절한 수급자를 지명할 것 ▲적절한 공사 기간을 보장할 것 ▲설계자와 시공자에게 공사 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 등의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발주자가 제대로 된 설계업체, 감리업체를 선정하려고 하다 보면 전관 문제도 일부 해결된다. 지금 전관 문제가 대두되는 원인 중 하나는 기술력 위주로 설계 수주가 이뤄지지 않고 영업력 위주로 수주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업체에서도 기술력을 늘리려고 하기보다는 영업력이 좋은 전관을 섭외하는 것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라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면 기술력이 수주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전관 등의 문제는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부실시공 문제의 최종 책임자는 그동안 발주자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법규범을 만들지 않은 입법부와 행정부”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건설업 이권 카르텔에 대한 엄벌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런 법 제도를 갖추지 못 한 것에 대한 반성을 먼저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규범 전문위원 “적정임금 지급해 현장 정상화해야”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전문위원 또한 건설산업 부실시공은 전관예우 등 어느 일부분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심규범 전문위원 역시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단계를 내려올 때마다 공사비가 대폭 삭감되고, 이를 과도한 공기 단축과 저숙련인력 투입으로 막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다만, 안홍섭 회장이 발주자의 책임을 강조했다면 심규범 전문위원은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적정임금제’를 도입해 임금의 하한을 두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심규범 박사는 “건설업에서 쓰이는 비용은 대체로 노무비가 30%, 재료비가 40%, 그밖에 부대비용이 30% 정도를 차지한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노무비, 재료비를 줄이는 것이 공사비 절감의 핵심”이라며 “그런데 재료비는 기술력을 늘리지 않고는 투입량을 줄이기가 쉽지 않다. 또 저품질의 재료를 썼다는 것은 금방 티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니 노무비를 대폭 깎는 방식으로 공사비를 아낀다. 이 과정에서 숙련인력은 임금이 높아 고용이 되지 않는다. 그 자리를 값이 싼 이주노동자들이 채운다. 숙련공은 없고, 소통이 힘든 이주노동자가 많아지니 부실시공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임금을 깎지 못 하도록 적정임금을 주는 것을 법제화해야 한다. 같은 임금을 줘야 하면 건설사에서도 숙련공을 먼저 채용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라며 “숙련인력의 채용은 견실시공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줘야 하니 건설노동자를 고용하는 건설사에서도 공사비가 너무 낮게 책정된 공사는 수주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적정임금 법제화는 시공사과 발주자가 지나치게 낮게 공사비를 책정하는 것을 막게 해주는 장치로도 기능한다는 것이 심규범 전문위원의 설명이다.

심규범 전문위원은 “안홍섭 회장이 말하는 대안이 위에서부터의 책임을 강조해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건설현장을 정상화시키는 것이라면, 내 대안은 아래에서부터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해 건설현장을 정상화시키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삼풍 참사 때부터 문제였던 산업구조, 근본적으로 변해야

부실시공 논란이 계속되며 정부는 LH가 아닌 민간 업체가 시공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에 대해서도 안전점검을 진행하겠다고 지난 8월 3일 밝혔다. 이 가운데 참여와혁신이 만난 전문가들은 “부실시공의 원인은 LH에만 있지 않다. 지금 건설 산업 구조가 부실시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간 아파트에선 더 많은 부실시공이 발견될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안홍섭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년)가 발생한 지 30년이 돼 간다.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10년마다 사고 이후 변화를 정리하는 책을 썼다.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이 부실시공이 계속 반복되는데도 몇십년째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실시공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번에는 건설산업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부실시공으로 인한 사고는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