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섭의 공동체 이야기] 사회적 고용기금과 공동체
[박경섭의 공동체 이야기] 사회적 고용기금과 공동체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10.06 06:02
  • 수정 2023.10.0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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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경섭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지역공공정책연구소장
박경섭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지역공공정책연구소장

지난 8월 16일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가 1년여의 싸움 끝에 사측과 합의한 내용은 ‘사회적 고용기금’이었다. 실직한 개별 노동자의 복직이나 위로금이 아니라 노동자가 양보하고 고용에 책임이 있는 기업이 마련한 종잣돈으로 지역 노동자를 위한 고용 안정 기금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실업은 사회적 구조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로 인한 것임이 당연하지만, 정작 실업의 구체적 상황은 기업의 개별적 실패, 그로 인한 고용 계약의 파기로 간주되는 것이 다반사다. 실업급여와 재교육, 재취업 프로그램 등 구조적 실업에 대한 국가의 정책들이 존재하지만 실직의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생존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의 상황을 고려해 연대를 요청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드문 일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 노동자들이 실업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한 것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책임의 문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근래 기업의 경영전략의 일부로 강조되고 있지만 일종의 선택의 문제이거나 윤리적 문제로 간주되는 듯하다. 하지만 한국와이퍼분회의 대담한 제안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한 사업체가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것은 생산과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하지만 노동자는 그저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교육받고 훈련받았기에 고용될 수 있는 것이다. 고용은 계약에 따르지만 한 사람의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입장하기까지는 사회라는 바탕과 공동의 돌봄이 필요하다. 교육과 훈련 정도의 개인차는 있지만 인간은 사회적 관계와 사회적 자본을 통해 성장하고 사회 속에 존속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체로 기업은 생산 역량이 있는 노동자로서 성장시켰던 비용에 대해서는 지불하지 않는다.

한 인간이 노동자로서 고용시장에 입장하기 이전의 상황에 지불되지 않는 비용이 존재해야 자본주의적 기업이 설립되고 생산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기업은 고용계약을 맺는 시점부터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 이 지불하지 않는 비용, 즉 빚으로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발생한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 속한다.

문화인류학자들은 공동체의 중요한 존속 원리로 호혜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선물(gift, 혹은 증여)의 실질적 효과에 주목해왔다. 호혜성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서로 선물을 주어야 하고, 받아야 하며, 되갚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이러한 효과로 공동체적 의무라는 윤리가 성립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학자 중 하나인 로베르토 에스포지토는 영어 커뮤니티(community)의 어원인 코무니타스(communitas)가 ‘함께’를 뜻하는 콤(com)과 ‘증여’나 ‘의무’를 뜻하는 무누스(munus)가 결합된 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공동체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 소속감을 주는 정체성 같은 것이 아니라 일종의 채무이며, 이 빚으로부터 파생된 타인에 대한 의무라고 이야기한다.

에스포지토가 이야기하는 공동체는 ‘특정한 사회적 공간에서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와 다른 듯하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공동체의 본래 뜻과 지금의 의미가 달라졌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라는 말의 실천적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공동체는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불평등, 실업, 건강, 안전, 교육 등 다양한 문제의 해법으로서 항상 언급되는 말이 되고 있다. 고령자와 아이들에 대한 돌봄을 마을 구성원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해결하면 어떨까? 복지재정의 전달 비용을 줄이고 주민 참여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는 아닐까?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을 민간에게 책임을 전가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서로 돕고 사는 시골 마을을 공동체라고 간주하기 쉽지만 공동체적 행위는 구성원의 가치관 및 윤리적 의무 없이 작용하지 않는다. 도시의 건강 문제나 실업 문제에 대한 공동체적 해법이 제시되지만 서로 빚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개인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공동체 자체가 숙제가 될 수 있다.

공동체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미사여구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사회적 고용기금은 책임과 공동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국와이퍼분회는 실업 문제를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을 빌려 우리 모두의 문제로 되돌려 놓고 있다.

노동자, 기업, 정부 기구가 도출해낸 사회적 고용기금이라는 결론은 에스포지토가 공동체에 대해 “우리만의 공간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우리 개인이나 집단의 경험을 제한하는 경계를 열어 주는 것”이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가 지불했으나 기업은 지불하지 않고 있는 빚에 대한 책임, 즉 의무의 이행이다. 책임 앞에 붙은 ‘사회적’이라는 느슨하고 추상적인 표현과 달리 한국와이퍼분회가 상기시킨 것이 바로 타인에 대한 빚이라는 공동체적 의미를 담고 있는 책임의 구체적인 실행이다. 사회적 고용기금이야말로 함께 하는 삶이 서로 간의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잘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