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섭의 공동체 이야기] 공동체와 다양성이 주는 즐거움
[박경섭의 공동체 이야기] 공동체와 다양성이 주는 즐거움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11.13 07:54
  • 수정 2023.11.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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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경섭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지역공공정책연구소장
박경섭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지역공공정책연구소장

《사회학의 핵심 개념들》(앤서니 기든스와 필립 W, 서튼)이라는 책에선 공동체를 “특정한 지리적 위치에 살고 있거나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으면서 서로 간에 체계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설명하면서도, 다양한 의미와 규범적 함의까지 가지고 있기에 정의하기 어렵다고 밝힌다.

이런 정의가 한편으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왜냐하면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 어느 정도의 범위인지, 체계적인 상호작용의 정도가 어느 만큼인지 규정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도시에서의 삶은 일하는 곳, 잠을 자는 곳, 노는 곳이 제각각이니 공유하는 지리 속에서 일상적 상호작용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체로 영미권에서는 커뮤니티를 전통적으로 가톨릭의 교구 단위의 규모라고 인식한다. 교구 단위 커뮤니티란 지역에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서로의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로컬(Local·주민)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동네 정도의 규모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여행 블로그나 SNS가 추천하는 맛집이 아니라 지역의 진정한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 로컬들에게 동네 맛집을 추천받고는 한다. 바로 그런 로컬들이 삶을 영위하는 곳을 커뮤니티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영어 Community(커뮤니티)는 때로 ‘지역 사회’로 번역된다. 영국에서는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담고 있는 법안을 로컬리즘 액트(Localism Act·지역주권법 혹은 지역주권화법)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대도시에서 로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별점 정보가 없는 동네 맛집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공동체라는 말을 들으면 정다운 시골 마을을 떠올린다. 공동체의 표본이 되는 마을은 나눔, 협동, 돌봄 등의 듣기 좋은 말들로 표현된다. 기성세대는 마을에서 상부상조했던 경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여줬던 쌍문동의 한 골목의 추억들을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마을에 대한 상상에서 대도시의 달동네, 판자촌의 골목들에서 쓰라린 삶의 기억들은 사라지고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지난 30년간 그러한 골목을 떠나와 대규모 고층아파트로 이동했다. 그동안 부동산 가격은 근로소득을 비웃으며 폭등했고, 누군가는 투기를 통해서 마을을 떠났다. 다른 누군가는 오른 전세와 월세 때문에 골목을 떠나갔다. 그렇게 떠나왔던 골목들의 모습이 남아있던 서울의 익선동 같은 곳이 2020년을 전후로 다시 핫플레이스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공동체에 대한 경험과 향수를 갖고 있는 기성세대와 달리 청년들과 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공동체라는 단어에 낡고 오래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공동체는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듯한 말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마을공동체 사업 설명회를 찾아가 보면 청년 세대는 많지 않다. 시골 마을의 이웃들은 서로 호미와 낫의 개수, 숟가락과 젓가락 개수도 알고 있는 사이로 묘사된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웃 사이의 돈독한 관계가 선을 넘는 오지랖이 될 수도 있다. 젊은 세대는 그러한 마을살이를 대부분 원하지 않을 것이고 사생활의 존중과 자유가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공동체에 향수를 가진 기성세대와 공동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MZ세대가 같이 모이는 장소가 좁은 골목과 사람 냄새 나는 거리이며, 핫플레이스라고도 불리는 장소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조차 힘든 골목길에 자리한 트렌디한 가게와 식당과 술집마다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런 핫플레이스에는 이전의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곳보다 옛 모습을 살려 리모델링한 가게들이 주류다. 매력적인 가게들에는 평소와 달리 낯선 사람들일지라도 가깝게 앉아 있으며 세대와 국적도 다양하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의 저자 제인 제이콥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하고 매력적인 도시는 조용하고 깨끗한 주택가가 늘어선 도시가 아니라 가난하고 낯설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접촉하는 거리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점령한 거리는 단조롭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해외 도시여행에서도 매력적인 장소는 로컬과 여행객이 뒤섞여있고 접촉하는 곳들이다. 아파트나 원룸에서 생활하고 쇼핑하기 위해서 자동차로 이동하고 스마트폰으로 맛집을 찾는 도시의 일상은 단조롭고 획일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표준적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하고 낯설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보이고 모이는 공적인 거리를 찾는다. 보이지 않는 규율이 촘촘하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는 다양성 속에서 자유롭고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공동체가 매력적이기 위해서는 로컬과 낯설고 다양한 사람들이 즐겁게 마주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선에서의 공유가 필요할 것이다. 마을만들기와 공동체 사업이 놓치는 것도 바로 이 다양성이 주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