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섭의 공동체 이야기] 해방과 안전, 사업과 활동 사이의 공동체
[박경섭의 공동체 이야기] 해방과 안전, 사업과 활동 사이의 공동체
  • 참여와혁신
  • 승인 2024.01.08 10:52
  • 수정 2024.01.0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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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경섭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지역공공정책연구소장
박경섭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지역공공정책연구소장

국가나 민족을 가리키는 정치공동체와 이익 공유에 입각한 경제공동체라는 표현처럼 공동체라는 말의 쓰임은 다양하다. 그러나 공동체가 외부와 독립돼 있는 자율적 단위라는 생각은 상식으로 통용된다.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라는 말과 가장 쉽게 부합하고 어울리는 단어는 마을일 것이다. 학술적으로나 어원적으로 공동체와 마을은 구별되지만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일정한 경계가 있고 성원권(membership)이 있으며 구성원들은 많은 것들을 공유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라는 말이 공적 활동과 관련해 등장한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80년대 공동체론은 외래문화를 비판하며 등장했던 민족문화운동을 통해 강조됐다. 이 시기 대학가에선 풍물, 탈춤이 활성화됐다. 1990년대에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대안, 이기주의에 대한 극복 방안으로 사회운동과 시민사회 영역에서 다양한 공동체 운동과 활동이 등장했다. 2000년대엔 민간의 공동체 운동과 활동을 수용해 지방자치단체들이 ‘마을만들기’ 조례를 만들어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재정적 지원 근거를 만들었다.

당시의 흐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해 마을공동체 사업을 정형화하고 지원체계를 확립한 것이 2011년 10월 당선된 박원순의 서울시였다. 하지만 2021년 4월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오세훈 시장은 전임 시장이 추진해왔던 10여 년간의 마을공동체 사업을 종료하고 대부분의 지원을 중단했다. 2022년 12월 서울시의회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을 최종 가결했다. 비록 일부 기초자치단체들이 사업지원을 지속하고 있음에도 예산 대폭 축소와 지원제도들의 폐기로 서울시 마을공동체는 기로에 서 있다.

공적인 재정 지원 없이 마을공동체가 홀로서기를 상상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마을공동체 사업이 사회운동 및 활동과 공적 재정 지원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었기에 지방정부의 지원에 대한 의존성과 공동체의 자율성은 항상 긴장 관계에 있었다. 때문에 협동과 돌봄의 가치를 강조하며 마을공동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율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마을공동체 사업이 관리와 통치 방식 중 하나라며 비판했다.

마을공동체가 위기에 처한 시점에서 공동체 대한 비판과 옹호를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시 공동체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고, 공동체는 어떤 필요나 욕구에 기반한 것인가?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과 지그문트 바우만의 글은 상이한 입장과 어조로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바우만은 《액체근대》(2000)에서 현대인의 공동체에 대한 요구를 안전에 대한 욕구, 정체성에 대한 갈망으로 이해한다. 근대적인 가치와 제도를 액화시키는 ‘액체’ 근대에서 사람들은 불안과 늘어만 가는 불확실성으로 고통을 받는다. 근대적 가치와 의미의 상실로 인한 불안을 종교와 이념에서 해소하려 해도 액체 근대에서는 쉽지 않다. 소비를 통한 자기정체성 불안의 해소 또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원의 제약 속 많은 선택지로 불안정하다.

넘쳐나는 공동체 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바우만은 공동체를 사막의 오아시스, 일종의 안전한 피난처로 비유한다. 그리고 바우만은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선 공동체론이 거부해 왔던 개인의 선택 혹은 이기심에 호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바우만은 공동체는 현존하는 사실이 아니라 일종의 희망의 기획이자 개인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물으면서 공동체와 자유가 대립 관계에 놓여있을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상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자유의 합(合)이 어떻게 안전을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동체가 낡고 보수적으로 보인다면 자유와 해방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거나 그에 대한 해법이 부재하기 때문일 수 있다.

바우만과 달리 세넷은 《투게더》(2013)에서 서로 다른 타인들과의 협력을 어떻게 격려할 것인가, 연합하고자 하는 욕구를 어떻게 자극할 것인가라는 사회적 질문은 공동체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밝힌다. 세넷은 이러한 사회적 질문으로서 공동체를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했던 미국 시카고의 복지관(settlement house)을 사례로 설명한다. 복지관은 바깥에서 보기에는 무정부 상태였지만 격식이 없는 곳이었고 공동체의 토대를 제공했다. 복지관의 효시가 된 헐 하우스(Hull House)를 설립한 제인 애덤스(1860~1935)는 이민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일상에 주목하고 느슨한 교환과 비공식성을 복지관의 장점으로 삼았다. 이러한 격식 없음은 ‘돕기는 하되 지시하지 말라’는 지침으로 확립됐다.

사회복지관의 활동가들은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분노만으로는 노동계급의 일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복지관을 통해 공동체의 세포를 배양하고, 이러한 활동이 사회운동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복지관은 이용자들을 둘러싼 빈곤과 불평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기의 저하, 확신의 부재, 협력의 부족이라는 문제와 맞닥뜨렸다.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세넷은 공동체의 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 사기를 진작시키는 협동적 행동, 자기희생이 아니라 함께하는 즐거움에 대한 헌신을 제시한다. 세넷은 이러한 해법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공동체가 주는 진지한 즐거움과 협동과 경제가 맞물리는 작업장(workshop)을 제시한다.

자유와 안전이 서로 증대되는 공동체, 협동의 활력과 공동체의 즐거움이 맞물리는 작업장은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기로에 선 마을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공동체나 협동의 작업장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원 정책을 참여자들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정도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며 함께하는 즐거움과 협동의 활력을 증대하는 데 힘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