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섭의 공동체 이야기] 공동체의 경제적 기초로서 공동자원
[박경섭의 공동체 이야기] 공동체의 경제적 기초로서 공동자원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12.12 09:53
  • 수정 2023.12.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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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경섭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지역공공정책연구소장
 박경섭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지역공공정책연구소장

얼마 전 대학 수업에서 학생들과 독일의 베를린과 관련된 영상(<난생처음 다크투어> 2부, 2018년 EBS 제작)을 보고 함께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영상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구(舊) 동독의 정치범 수용소였던 슈타지 감옥의 피해자가 감옥을 박물관(Stasi Museum)으로 만들어 보존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우리의 현재를 위해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요. 특히 젊은 사람들이 독일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말이죠. 오늘날 젊은 세대는 풍요롭게 자란 세대라서 민주주의의 적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 자기 선택권, 인권 등을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지만 그건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새롭게 쟁취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잠들면 독재자가 깨어나는 법이니까요.”

독일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슈타지 감옥은 일종의 역사적 유산이기도 하지만 과거에 대한 독일사회의 반성과 연결된 공통의 자산이기도 하다. 정치공동체의 집단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과거사 관련 기념관이나 역사관은 국가가 건립하기도 하지만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처럼 공동체 스스로 자신들의 기억을 담은 공간들을 만들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이용하는 많은 것들은 자본주의적 기업이 생산한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슈타지 감옥 같은 장소들과 적지 않은 물건들은 국민의 세금을 통해 만들어진 공공재(public goods)이거나 주민들 혹은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내 공동자원(commons)이기도 하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초고속통신망, 대부분의 도로와 하천, 대중교통도 공공재이며 여름이면 마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당산나무와 한 주민이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만든 평상도 마을의 공동자원이다.

엘리너 오스트롬은 하천, 목초지, 산림 등 공동자원을 관리해 온 공동체들이 발전시켜온 정교한 제도적 장치들을 발굴하고 분석한 연구로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특히 오스트롬의 업적 중 《공유의 비극을 넘어》(2010)는 가장 중요한 성과로 공동자원에 대한 관리의 해법을 사유화나 정부 규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자치에서 찾아 주목하고 있다.

공기업의 민영화가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공동자원의 사유화가 익숙한 사회에서 오스트롬의 공동체에 의한 관리는 생소하고 낯설게 보인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도 이러한 자치의 전통은 부단하게 계승되고 있다. 한국의 어촌마을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마을의 공동어장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어촌계다. 가령 어촌계에서는 바지락이나 꼬막의 남획을 막기 위해서 채취 구역을 구분하거나 채취할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기도 한다. 어떤 산촌에서는 상세한 규칙을 통해 동네의 산에서 나는 송이의 채취를 관리하기도 한다.

제주도에도 마을이 운영하는 공동목장들이 적지 않았으나 근대화 과정에서 사유화로 인해 대부분 사라졌다. 일부 마을은 공동목장을 활용해 마을 활성화에 성공한 사례도 존재한다. 제주도 선흘리의 동백동산(2014년 세계지질공원 대표명소 지정)은 국유지인데 마을주민들이 생태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서 공동자원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제주도의 공동자원에 대한 연구는 제주대학교의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의 성과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동자원의 사례와 지속가능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이 센터에서 출간해서 판매하고 있는 공동자원 연구 총서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공동체주의자이거나 공동체를 지향하는 활동가들은 작은 공동체가 경제적으로 자립하기를 희망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규모 공동체가 자율성을 갖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투게더-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2013)에서 공동체 활동가들이 직면한 도전은 ‘경제적인 심장이 허약한 공동체를 어떻게 튼튼하게 만들 것인가’라고 지적한다. 공동체의 튼튼한 경제적 심장을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이 바로 공동자원은 아닐까? 모든 공동체가 공동자원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공동자원은 공동체의 생존과 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공동자원을 만들거나 민주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시행착오와 경험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도시재생 사업이 만들어내는 공적인 공간 중 하나는 커뮤니티센터다. 커뮤니티센터의 소유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되 운영은 마을관리 협동조합이 담당하는 것이 최근 추세다. 커뮤니티센터는 공동체의 기회이자 가능성이다. 하지만 관리와 운영이 공공기관의 건물 관리 기준과 규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커뮤니티센터는 그저 공공재일 뿐이다.

민주주의가 잠들면 독재가 깨어나듯, 민주적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커뮤니티센터는 특정 소수에 의해 사유화될 수 있다. 커뮤니티센터가 공동체의 터전이 되기 위해서는 주민들에 의해 공동자원이 돼야 한다. 동네에 대한 자원조사를 통해 마을의 공동자원을 확인하고 발견하는 것들을 커뮤니티센터에 모으는 것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사소해 보이지만 마을의 생태 자산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나무, 대추나무라면 주민들이 함께 채취한 열매를 커뮤니티센터에서 함께 요리하고 나누는 것에서 시작해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