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사회적 대화 복귀 ‘결단’에 내부는 ‘술렁’
한국노총, 사회적 대화 복귀 ‘결단’에 내부는 ‘술렁’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11.14 02:19
  • 수정 2023.11.14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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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심판! 노동탄압 저지! 11·11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대회사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심판! 노동탄압 저지! 11·11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대회사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에 마지막으로 요구한다. 지난 30년간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 온 한국노총의 노동자 대표성을 인정하고, 노동정책의 주체로서 한국노총의 존재를 인정하라. 이것 말고는 아무런 전제조건도 없다.

11월 중에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한국노총은 더욱 신발끈을 졸라매고 올겨울을 항쟁의 거리에서 맞이할 것이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 11일 조합원 약 6만 명이 모인 전국노동자대회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하자, 단상 위 대표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무게를 잘 아는 한국노총 산하 조직 대표자들과 관계자들은 멈칫했다. 

“대회사를 듣자마자 어? 뭐지? 싶었다.” (한국노총 산별조직 대표자)

“보통 시한까지 못 박아서 발언하기 쉽지 않다. 김동명 위원장이 용산(대통령실)과 교류하고 있고 노정관계가 풀릴 거란 확신을 하고 있다고 감 잡았다.” (한국노총 고위 관계자)

대통령실은 이틀 만인 13일 김동명 위원장의 요구에 답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국노총은 오랜 시간 사회적 대화를 책임져 왔으며 노동계를 대표하는 조직”이라며 “한국노총이 조속히 사회적 대화에 복귀해 근로시간 등 여러 현안을 노사정이 함께 논의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1시간 반 정도 뒤에 한국노총은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실 요청에 따라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한국노총이 지난 6월 7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중집)를 열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지 5개월 만이다.

한국노총 내부는 술렁였다. 이렇게까지 신속히 대통령실이 김동명 위원장의 대회사에 응답하고 한국노총이 받아들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이번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 결정은 내부 공식 회의기구를 거치지 않은 김동명 위원장의 결단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경사노위 참여 중단 결정을 내린 긴급 중집에서 김동명 위원장은 ‘다만 탈퇴 시기·방법에 대한 결정은 위원장에게 위임하면 여러 상황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결단하겠다’는 안을 냈고, 이 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된 바 있다.

전교조와 공노총이 21일 오전 11시 국회의사당 본청 계단 앞에서 ‘교원-공무원 노동조합 타임오프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nbsp;hnkang@laborplus.co.kr<br>
ⓒ 참여와혁신 포토DB

일부 산별·지역본부 ‘환영’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복귀 결단에 일부 산별조직과 지역본부는 환영했다. 

특히 공무원·교원 조직은 한국노총 집행부에 경사노위 복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공무원·교원노조법 개정에 따라 다음 달 11일부터 공무원·교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가 실시되는데,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시간 상한과 사용 인원 등은 경사노위가 구성하는 별도의 심의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공무원본부 관계자는 “노정관계가 경색된 채로 1년 넘게 지났다. 공무원 타임오프의 구체적인 논의도 경사노위에서 해야 하는데 막혀 있었다”며 “이번 한국노총의 결정을 환영한다. 늦어진 만큼 경사노위에서 열심히 대화를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역본부 사무실 지원 중단·축소 등에 어려움을 호소해 온 한국노총 몇몇 지역본부 대표자들도 환영했다. 

지역본부 의장단 일부는 오는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할 계획이었다. 김위상 한국노총 전국시도지역본부의장 협의회 회장(대구지역본부 의장)은 “한국노총 사회적 대화 참여에 대한 대통령실의 진심 어린 요청에 김동명 위원장이 복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며 “이와 함께 근로자종합복지관 운영, 노사민정 사업,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예산 등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재검토되고 있다. 이에 15일 예정된 기자회견이 취소됐음을 알린다”고 의장단에 전했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 설치된 시민분향소에 풀빵이 놓여져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 설치된 시민분향소에 풀빵이 놓여져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대화 복귀 명분, 절차 문제 제기도

반면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 명분과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산별조직 대표자는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중단은 중집 결의였다. 그런데 복귀 결정엔 그런 절차가 없었다”며 “또 한국노총이 대통령실과 정부에 노동정책 관련 기조를 바꿀 것을 요구하고, 이 내용이 수용되는 등 사회적 대화 복귀에 대한 명분이 지금보다 더 충분했다면 이번 결정에 공감이 됐을 텐데 많이 아쉽다”고 했다. 

노란봉투법 대통령 거부권 가능성 높은데···
대화 복귀 시기에도 이견 

시기상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동계의 숙원,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가운데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단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이번 주 중으로 법제처로 이송될 예정이다. 대통령은 법제처 이송 시점부터 15일 이내에 법안을 공포하거나 국회에 재의를 요구해야 한다. 

한국노총 고위 관계자 A씨는 “13일 전태일 열사 53주기 추도식에서 양대노총이 강하게 노란봉투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경고 목소리를 냈다”며 “그렇게 정부와 각을 세워서 싸우다가 전국노동자대회 이후 급격하게 사회적 대화 복귀를 결정한 과정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오히려 대통령이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에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 복귀를 결정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 있단 의견도 있다. 한국노총 고위 관계자 B씨는 “대통령이 노란봉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나면 한국노총은 투쟁의 길밖에 없다. 사회적 대화를 할 명분이 없을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 뒤엔 오히려 한국노총이 설 자리가 좁아지기에 지금 (김동명 위원장이) 사회적 대화 복귀를 결정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 복귀 결정 외에 구체적인 계획은 따로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결정을 둘러싼 한국노총의 내홍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14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와 관련해 후속 업무 지시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지역본부 의장은 “14일 국무회의에서 구체적인 얘기가 나올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