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의 노동 있는 민주주의] 노조 가입 권하는 대통령
[박상훈의 노동 있는 민주주의] 노조 가입 권하는 대통령
  • 참여와혁신
  • 승인 2024.01.17 11:19
  • 수정 2024.01.1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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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2015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는 노동절을 기념해 보스턴의 노동자협의회가 주관한 행사에서 연설한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은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장을 원하는가. 누군가 당신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라고 하겠다. ···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노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어린아이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함께할 때 우리는 더 강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조직으로서, 지금까지 이보다 나은 노동자 조직 모델은 존재한 적이 없다. 노동자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안전을 지켜주었으며, 소득의 증가와 일자리 안정, 나아가 참정권과 사회경제적 평등을 진작하는 데도 노조만큼 큰 역할을 한 것은 없다.

노조를 무시하고는 정치를 할 수도 없다. 정치가에게 노조는 선거 승리에 필요한, 가장 많은 ‘표’와 ‘돈’을 가진 존재이다. 오바마의 대통령 선거 승리도 노조의 지지 없이는 꿈도 꿀 수 없었다. 2008년 대선만 보면, 오바마는 공화당 후보가 조합원의 28%의 지지를 얻는 동안, 그의 2.5배가 되는 69%의 지지를 얻었다. 노동조합의 정치 후원금 가운데 90% 이상이 그에게 몰렸다.

누가 뭐라든 현대 민주주의에서 노동자는 가장 중요한 시민집단이다. 이들이 합당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좋은 일터, 좋은 경제, 나아가 좋은 사회, 좋은 정치, 좋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토대이다. 오바마는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터란 급여 이상의 곳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톱니바퀴의 톱니가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꿈을 간직한 엄마와 아빠들이다. 어려움에 처한 동료를 돕기 위해 교대근무를 해주는 사람들이다.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해 저축하려는 사람들이다. 매일 아침 일터에 나오고 늦게까지 일터에 남아 제대로 일을 마쳤는지를 확인하는 사람들이다. ··· 더 높은 임금, 공정한 임금, 아이를 위한 보육, 유연한 근무지 선택, 그리고 유급 휴가와 같은 것들은 여성 노동자와 노동자 가족들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기업에도 좋은 것이다. 경제 전반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다.”

오바마의 이런 생각은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표현된 바 있다. 그때 그는 미국 민주주의를 이끌 민주당의 비전을 말하면서, 자신의 경제관을 남다르게 표현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는 미국 경제의 튼튼함을 억만장자의 숫자나 《포춘》(Fortune) 지가 선정하는 500대 기업의 이윤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뇌물을 제공하지 않고도 도전 정신을 발휘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경제, 손님의 팁에 의존해 살아가는 식당 여종업원이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내면서 실직의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경제를 튼튼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노동의 존엄성(dignity of work)이 존중되는 경제를 튼튼하고 강하다고 말한다.”

일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공동체를 풍요롭게 이끌고 그들의 자존감이 성숙한 민주 사회의 기틀이 될 수 있으려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조가 없는 사회, 즉 노동 억압적인 기업이나 노동 배제적인 경제체제에서라면 일하는 사람들의 시민권이 온전히 보장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노동자들만 무권리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 미래의 노동자 시민이 될 아이들 역시 시민권을 가질 수 없다. 노동자를 제외한 소수의 사회 구성원만이 온전한 시민권을 갖는다면 그때의 시민권은 사회를 넓게 통합하는 보편적 권리가 되지 못한다. 중상층의 계층만 제대로 된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를 민주주의라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를 오바마는 이렇게 표현했다. “노조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어느 직업이나 자부할 만한 것과 존중받을 만한 것이 있다. 다만 여러분들이 매일같이 일하는 동안 자존감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내는 데 있어서 노조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노동자의 가정이 마땅히 가져야 할 가치와 자존감이 모든 일터에서 반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싸우고, 노동자들의 이익은 물론, 조직할 권리를 위해 나섰던 이유이다. ···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왜 노조가 중요한지를 이해시킬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노동자 친화적인 정당이 집권하면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높아진다. 노조에 대한 호감도도 높아진다. 이 연설이 있던 시기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12%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은 ‘노조에 대한 미국인들의 호감도’가 56%로 조사되었다고 발표했다. 노조에 대한 호감도 수치는 2009년 48%, 2012년 52%, 2018년에는 61%로 늘었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2009년 66%에서 2019년 82%로 증가했다. 서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에 비해 노동자의 권리 보호가 약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조차 최소한 이 정도 수준은 된다.

우리는 어떨까? 돌아보고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노동조합을 누구나 함부로 공격해도 되는 ‘공공의 적’이 아니라 노동자 시민들의 권익과 열정을 표출하는 자율적 결사체로 존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 발전의 중요한 지표다. 노조가 온전한 시민권을 향유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일터, 좋은 경제, 좋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다.

민주주의자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노조 없는 사회가 아니라 노조의 역할이 기업 차원을 넘어 사회와 공동체 전반으로 선용(善用)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노동의 존엄성과 노동조합의 역할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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