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의 노동 있는 민주주의] 아이를 위해서는 온 나라의 정치가 필요하다
[박상훈의 노동 있는 민주주의] 아이를 위해서는 온 나라의 정치가 필요하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4.03.13 14:39
  • 수정 2024.03.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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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민주주의 사회라면 정치를 통해 공동체를 잘 가꾸고 개인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모두의 자유이자 권리다. 아이들에게도 정치교육을 해야 한다. 오히려 권장돼야 좋은 사회다. 민주주의 선진국의 가장 큰 특징은 미래의 시민, 미래의 노동자에게 정치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독일은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것을 시민교육이라고 하지 않고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시민교육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정치교육이 더 좋은 표현이다. 국가나 정부가 시민을 가르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시민이 정치를 이해하고 선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기회를 누리는 것, 그것이 정치교육이다. 미래의 시민이자 미래의 노동자, 미래의 직업인으로서 자신들이 어떤 정치적 기회를 가질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나치가 정치를 악용해서 불행을 겪은 나라다. 나치는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정치가 잘못되면 사회가 얼마나 큰 비극을 겪는지를 보여 준 사례다. 독일 연방정치교육센터(Bu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의 가장 큰 목표는 그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데 있다. 미래 세대들에게 정치를 선용하는 길을 알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 업무다.

국가/정부의 본질은 폭력이다. 개발과 환경 파괴를 가장 많이 하는 것도,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것도 국가/정부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하는 국가/정부를 만나게 될 것인지, 시민의 자유와 생명, 재산을 지키는 국가/정부를 만나게 될 것인지는 정치가 어떤가에 달려 있다. 선거와 정당, 노동조합과 여러 결사체는 민주정치의 중심 제도이자 행위자들이다. 이들이 국가와 정부를 어떻게 움직여 가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정치는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 사회적 강자들의 욕구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소수의 도당과 파당에 의해 남용될 수도 있다. 정치를 공공재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똑같은 민주주의를 하더라도 어떤 나라는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고 평화롭게 사는 반면, 어떤 나라는 그렇지 못한다. 정치를 알고 이해하고 선용하는 힘을 시민들, 그리고 미래의 시민들이 가질 수 있는가는 한 사회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정당 가입을 생각해 보자.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은 아이들의 정당 가입을 제한하지 않는다. 물론 제한하는 나라도 있는데, 그래도 우리보다 장벽이 훨씬 낮다. 아무리 보수적인 정당도 16세부터는 가입할 수 있으며, 진보적인 정당은 12세에서 14세면 가입할 수 있다. 선출직 공직자가 되어 공동체를 잘 이끌어 보겠다는 꿈을 갖는 아이라면 일찍부터 정당에 가입해 정치를 배우고 경험할 수 있다. 30대 장관은 물론 30대 총리가 나올 수 있는 곳은 이런 나라들이다.

아이들에게 공부나 할 것이지 왜 정치에 관심이냐고 야단치는 사회에서 정치는 늘 나쁜 사람들의 전유물이 된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공동체를 더 사랑하게 되고,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더 존중하게 된다. 정치를 멀리하라는 것은 “정치는 나쁜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좋은 정치의 길을 말해 줘야 하고 좋은 정치의 방법을 익히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풍부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뭘까?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다. 누가 더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가를 두고 경쟁하게만 하면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감을 가질 수 없다. 아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이상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각이 깊어지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환경에 대한 이해도 성숙해진다. 정치를 그렇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정치는 권력 장악이 목적 아닌가?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권력에 관심 갖게 하는 것이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을 장악하고, 다른 사람을 힘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반(反)정치이고 정치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가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이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정치를 가르치지 않으면, 정치를 욕하는 세태를 아이들이 반복하게 된다. 아이들이 정치를 욕하기만 하면 어찌 되겠는가.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정치를 자유롭게 참여하고 선용할 수 있는 ‘우리들의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정치는 결국 기존에 정치를 독점해 왔던 사람이 계속하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담임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당부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회에 나가서 뭘 해도 좋은데 정치는 절대 하지 마라!” 그때 우리는 모두 웃었고,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이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그보다는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고 본다.

‘이제 여러분은 성인이 된다. 대학생이나 직업인으로서 사회에 나가게 된다. 투표도 하게 될 것이다. 본격적인 시민권의 행사자가 되는 것이다. 그때 소극적으로 투표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뭔가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선출직 공직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부디 좋은 소명 의식과 더불어 재능과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정치가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잘만 한다면 공동체를 위해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나날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길 바란다. 사회에 나가서 뭘 해도 좋은 데 그 가운데 정치를 하겠다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정치는 불온한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시민의 사업’이다.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도 가르치고, 수학도 가르치고, 영어도 가르쳐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공동체를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정치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기회도 없이 공동체를 말하는 것은 공허한 일이다. 아이들은 정치를 배울 권리가 있고, 정부나 교육 당국은 그 기회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마찬가지로 조합원에게 정치교육을 하는 것은 노조의 민주적 역할이다.

한 아이를 좋은 시민으로 키워내는 일에 책임감을 갖는 사회라야 민주주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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