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사장,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다
무늬만 사장,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3.01.0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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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는 정규직(월 평균임금 266만원)의 61.2%
통계청, 특고노동자의 노동시간 실태조차 잡지 못하는 처지
[바꿔, 싹 바꿔! 2013] ④ 특수고용 노동자

2013년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바람을 찾아봤다.
일할수록 적자 인생인 저임금 노동자.
목숨을 걸고 밤샘 노동을 하는 이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이들.
파견, 용역, 특수고용, 기간제 노동자의 처지를 살짝 들춰봤다.
지난해 총대선을 거치며 금배지를 달거나 청와대에 자리 잡은 이들은 너나없이 서민들의 삶을 챙기겠다고 했다.
선거 때마다 한 약속이지만 지켜진 적이 있었던가?
여기 낮은 이들의 자그마한 소망을 쓴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지만 꼭 바꿔야 하기에 적는다.
바꿔, 싹 바꿔! 2013

ⓒ 참여와혁신 포토DB

기름 값에 통행료에 관리비 보험 세금 오일 갈고 타이어 갈면 적자라. 적자. 눈에 안보이게 들어가는 게 솔찬하지라. 차 한대에 타이어가 18개요. 한 달에 한 개는 갈아야 한당께. 타이어 한개 바꾸는데 들어가는 돈이 삼십만원이요. 7천만 원짜리 화물차가 2년을 타면 4천만 원으로 팍 깎이니까, 1년에 천5백만 원이 사라진당께. 큰 차 모니까 큰 돈 버는가 하지만 안 그래라. 실제 우리 손에 떨어지는 것은 백이삼십만 원이지라. 요즘 마누라 있고, 애 있고 하면 이 돈으로 어찌 산당가. 3, 4천만 원 하는 차 팔아 더 싼 중고차로 바꿔서 생활비 쓴당께. 나도 츄레라 뒤꽁무니 천만 원에 팔고 5백만 원짜리로 갈았지라. 내 살 깎아먹고 사는 거지.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지라. 이제 이천만 원짜리 똥차 하나 남았는데, 고거 퍼지면 밑천도 없는 거지라.

‘특수고용노동자’는 뭔가 특수한 일을 할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들은 결코 특별나지 않은 노동자다. 다만 고용형태가 남다르기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부른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사용자와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위임)계약이나 도급계약을 맺고 노동을 한다. 그래서 노동자의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고, 개인사업자 취급을 받는다. 일한 대가로 임금이 아닌 수당이나 수수료를 받는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설계사, 레미콘이나 덤프 기사, 간병인, 방송사 구성작가, 화물차 기사, 대리운전기사, 퀵 서비스 기사, 텔레마케터….
이들은 ‘사장님’일까?

학습지 교사를 만나면 그를 학습지 회사 직원인 줄 알지 개인사업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 이름이 적힌 화물차가 지나가면 그 회사 직원이 운전한다고 여기지 사업주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처럼 직원처럼 일하지만 직원이 아닌 사람들이 특수고용노동자다.

사장이 되고 싶었을까?

이들은 자신이 원해서 위탁이나 도급계약을 맺은 게 아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들은 근로계약서를 쓰고 노동자로 일했다. 학습지 회사 간 경쟁이 심해지자 사용자들은 교사들에게 위탁계약을 맺자고 했다. 노동자로 일할 때보다 성과에 따라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선전했다. 레미콘 회사들도 회사가 소유한 차량들을 기사들에게 인수하게 해서 노동자들을 자영업자로 만들었다.

이처럼 사용자들의 요구에 따라 노동자들이 특수고용노동자가 되었다. 더구나 노동자로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은 사실과 달랐다. 실제로는 노동자를 고용하여 관리할 때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사용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가 되었다.

이때 노동자로 남은 이들도 있었다. 회사는 화물차를 불하받지 않은 운전기사에게는 차량 배치를 줄여 임금을 줄어들게 하고, 해고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이 압력에 어쩔 수 없이 특수고용노동자가 된 경우도 있다.

2012년 8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특수고용노동자는 60만 명 정도다. 위탁이나 도급 계약서조차 없이 일하는 이들이 많아 통계청 수치보다 높을 것으로 파악되고, 민주노총은 2백만 명이 넘어선다고 주장한다.

차량을 불하받아 개인사업주가 된 화물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수입이 높아졌다. 노동의 대가인 임금만 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불하받은 차량의 대금도 납부해야 하고, 차량의 수리비 및 유류비도 화물기사가 떠안아야 하니 당연히 수입은 높아야 한다. 하지만 실 수입은 노동자의 임금보다도 못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자라면 보장을 받았을 사회보험도 자신이 전액 부담해야 하고, 아예 가입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은 자신이 부담하면 되지만 재해를 받았을 때 도움을 받는 산재보험이나 일거리가 없을 때 최소의 생계를 보장받을 고용보험은 가입하고 싶어도 자격이 되지 않는다. 일을 하다가 다치면 그 치료비는 물론 생계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 일거리가 없으면 곧바로 수입이 ‘0’다. 말이 자영업자고 사장이지 언제 빈곤의 굴레에 빠질지 모르는 불안한 노동자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10년 8월)에 따르면, 특수고용노동자는 정규직(월 평균임금 266만 원)의 61.2%(163만 원)의 임금을 받았다. 이는 정규직의 46.9%의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125만 원)에 비해서는 높다. 하지만 사회보험 혜택이나 퇴직금이 없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결코 나은 처지는 아니다.

한 화물차 기사의 경우 한 달 수입이 400만 원가량인데, 유류비와 식대를 제외하면 250만 원정도가 남는다. 여기서 차량 감가상각비, 세금, 보험료를 제외하고 실제 집에 가져가는 돈은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정도라고 한다.

퀵 서비스 기사는 보통 아침 8시에서 저녁 7시까지 일한다. 하루 수입이 15만 원 안팎으로 한 달에 350~400만 원가량 벌고 있다. 하지만 중계수수료로 23~25%를 내고, 유류비 및 점심 값과 같은 비용을 제외하면 집에 가져가는 액수는 200만 원이 되지 않는다.

밤 일을 마다하지 않는 까닭?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대부분 사용자랑 1년에 한 번씩 계약을 갱신한다. 계속 계약을 유지하려면 사용자의 부당한 지시나 명령에도 복종해야 한다. 노동자라면 노동조합을 통해 항의하거나 개선책을 찾을 수 있지만 개인사업자가 되는 순간 이런 권리는 사라진다. 사용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약을 갱신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학습지 교사들 가운데 처우개선을 요구했다가 계약해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레미콘, 덤프, 화물차 기사의 경우 사용자에게 밉보이면 일감을 주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한다.

한 물류회사의 계약서를 살펴보면, 제8조에 계약해지에 대한 조항이 있다. 4항에는 ‘갑의 경영 방침이나 업무지시, 규칙을 위반하거나 따르지 않는 경우’라고 나와 있다. 여기서 갑은 사용자다. 6항에는 ‘을이 배차거부 또는 당일 배송을 미완료할 경우’ 계약해지를 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을은 특수고용노동자다. 곧 사용자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을 경우 사용자는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특수고용노동자를 무늬만 사장이고, 처지는 노동자보다 못하다고 말한다.

통계청에서 경제활동인구조사를 할 때,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실태조차 잡지 못하는 처지다. 한 레미콘 회사의 운전기사의 말에 따르면 출근시간은 오전 6시로 정해져 있지만 퇴근시간은 그날의 작업량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그날 일이 끝나야 퇴근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보통 14시간을 일을 한다.

화물노동자의 경우는 1주에 64시간 일하는데, 이는 운전을 하는 시간이다. 물건에 차에 실고 내리는 시간이나 대기 시간을 포함하면 80시간에 이른다. 이들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8시간을 초과해 일을 해도 시간외 수당을 받지 못한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일이 없으면 수입이 줄어들거나 제로가 되기 때문에 곧바로 실업자 신세가 되어 빚더미에 앉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거리가 있으면 과로를 해서라도 밤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속도전을 내며 진행했던 4대강 공사현장에서는 과로로 숨진 노동자들이 많다. 2010년 7월 30일에는 낙동강 살리기 20공구에서 덤프트럭 기사가 숨졌는데, 주야 맞교대로 하루 13~14시간 씩 일을 하고, 교대자가 없을 때는 16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았다. 4대강 현장에는 노동시간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운반 횟수와 운반량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탕뛰기’ 형태로 일을 시키기 때문에 과로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사회보험 적용을 받는 특수고용 노동자도 있다. 하지만 일터에서 보험을 적용받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국민연금은 0.4%, 건강보험 0.6%, 고용보험 2%다. 산재보험은 아예 적용대상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 국민연금 지역 가입조차 하지 않은 이가 64.7%에 이른다. 곧 사회의 안전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일을 하고 있다.

2008년 7월부터 레미콘 기사, 보험 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에 한해서는 산재보험 의무 가입 대상에 추가 됐지만 가입률은 2012년 3월 말 기준으로 9%에 불과하다. 이들은 산재보험법 125조에 따라 사업주와 보험료를 50%씩 분담해 의무 가입(노동자의 경우 100% 사업주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위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적용 제외 신청’을 할 경우는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의무처럼 보이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라는 말이다.

위 업종 노동자들이 산재에 가입하지 않는 까닭은 열악한 수입에서 보험료 50%를 내는 부담감도 있다. 하지만 사용자들이 50%의 보험금을 부담하지 않으려고 노동자에게 ‘적용 제외 신청을 하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압박을 가하기 때문에 가입률이 낮다고 한다.

2012년부터는 택배나 퀵서비스 기사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으나 적용 제외 신청으로 가입율은 높지 않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사업주에게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게 하거나 지금처럼 반반씩 부담하더라도 적용 제외 신청 사유를 제한하여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