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철학 결핍이 노동의 소외를 부르는 사회
노동철학 결핍이 노동의 소외를 부르는 사회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5.07.1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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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는 인정 못해도 노동에 매달려야 한다
새로운 노동의 의미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 필요
우리 시대의 노동, 노동자 ① 2015, 노동을 말하다

2015년 초여름, 대한민국의 화두는 ‘공포’다. 중동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하나가 대한민국을 초토화 시켰다.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두려워하지 말라’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만 여럿이 모이는 자리는 속속 취소되고, 공포는 확산되어 갔다.

정부가 앞장서서 공포의 ‘과잉’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이 사태의 원인이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싶다. 우리 사회는 이미 지난해 안전의 결핍이 어떤 참상을 낳는지 똑똑히 지켜봤고, 이번에는 질병관리체계의 구멍이 자칫 한 사회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그렇다. 2015년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진짜 화두는 ‘결핍’이다. 풍부해야 할 것들이 모자란 사회, 우리는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의 결핍’에 주목했다. 정확히는 ‘노동철학의 결핍’일 것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정부, 고용을 화두로 내세웠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 중 하나는 ‘일자리’다. 역대 정부들이 출범할 때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과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풀어가야 할 과제인 셈이다.

일자리는 곧 노동과 연결된다.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노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노동을 할 수 있는 곳이 곧 일자리다. 그런데 고용, 혹은 일자리는 당대의 화두가 되고 있지만 정작 노동은 웬일인지 뒤편으로 밀려나 버렸다. 누구나 노동을 하며 살아가지만 누구도 노동을 우리 사회의 화두로 부각시키지 않는다.

현 정부는 임기 내내 추진할 국정과제로 ‘고용률 70% 달성’을 제시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일자리 창출’을 내걸었다. 지난 4월 최종 결렬되기는 했지만,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를 구성해 사회적 대화에 나선 것도 큰 틀에서 보면 일자리 창출과 연관된다.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이유 중 하나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50만 명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냈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4월 청년실업률은 1999년 이래 가장 높은 10.2%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10.0%를 돌파하면서 1999년 이후 가장 높다고 했었는데 올해 다시 이 수치를 경신한 것이다. 게다가 청년 취업자 5명 중 1명은 1년 이하 계약직이었다. 청년 고용의 양과 질 모두에서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청년실업 문제는 단순히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청년들은 결국 우리 중년 세대의 자식들이다. 따라서 청년실업은 내 자식이 취업하지 못한다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정부의 지지기반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는 위기신호가 감지된 것이다.

이렇게 일자리 문제는 정부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는 일자리 창출 정책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비판의 핵심은 ‘일자리의 양뿐만 아니라 일자리의 질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대표적인 정책이 ‘시간제 일자리 활성화’였다. 비판론자들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시간제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질 낮은 일자리’일 뿐이며,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곧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관련해서도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를 안정화시키는 게 아니라 거꾸로 정규직 일자리의 안정성을 흔들어 하향평준화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 정책은 일자리의 질과는 상관없이 고용률 70%라는 숫자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일 뿐이라는 것이다. 비판론자들 역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데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창출되는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질 낮은 일자리가 아닌 ‘양질의 일자리’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논란을 지켜보면 정부가 추진 중인 ‘일자리 만들기’는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라기보다는 고용률 70%라는 숫자 혹은 정치적 상징성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노동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장기적인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기업, 일자리는 절대선이다?

기업의 마인드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물론 오랜 기간 노동조합과의 교섭의 경험이 축적된 대기업들의 경우 경영자들의 노동관이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1987년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격렬한 대립기를 거친 후,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한 기업 노무 담당 임원은 “솔직히 옛날에는 낮은 임금으로 일을 많이 시키더라도, 일자리를 주는 게 어디냐는 마인드가 경영진은 물론이고 근로자들에게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 때는 나라 전체가 가난했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것이 절대선이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지금은 경영진의 마인드가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힘의 역전 현상이 나타나서 경영진이 노동조합의 눈치를 보는 상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 오랜 기간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50대 활동가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 “그 시절과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월급 얼마 올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인 대우 해달라며 투쟁하던 시절과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게 더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힘의 역전이라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쥔 것은 자본이고, 그들이 노동조합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최근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은 이른바 ‘고용 시혜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자리가 있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남용우 노사대책본부장은 “매일 아침에 출근하고 늦게까지 일하고 술 마시고, 경영자단체에서 일하는 우리도 다르지 않다”면서 “이런 근로환경 속에서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말도 하지만, 직장을 잃어보면 다른 반응이 나온다”고 말한다.

남용우 본부장은 “우리 부모세대가 노인이 되면서 돈을 얼마나 벌든 일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면서 “우리가 자꾸 잊어버리는데 일을 하고 있다,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의 소중함, 이를 인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구조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낮은 임금에 장시간 근로를 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10% 남짓의 조직노동자를 제외하면, 중소영세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경영진의 왜곡된 노동관이 그 자체로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 23년째 노동상담을 하고 있는 경기노동상담소 손민숙 소장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지방노동위원회 심판 때 가 보면 아직도 우리나라 기업주 마인드가 70년대 마인드다. ‘너는 내가 일 시키는 직원에 불과해, 하라면 해야지 안 해?’ 이런 식이다. 그러면서 배려할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자기 입장에서만 판단하고 이야기한다”고 비판했다. 손민숙 소장은 “별나라 가고 달나라 가는 21세기라고 하는데, 우리 의식에는 70년대 의식이 그대로 잠재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먼저 기업 경영자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노동자, 노동은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

안타까운 사실은 노동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시각조차 노동이 생계를 위한 수단이라는 수준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당장의 끼니를, 혹은 집값과 아이의 교육비를 걱정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일 수도 있다. 또한 이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노동을 방치해 두고 있는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취재를 하며 만난 많은 노동자들의 답변 중 노동이 “살아있다는 의미를 부여해준다”는 대답이 그나마 노동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은 유일한 대답이었다.

“노동하면서 보람도 있고 금전적으로 가족들에게 뭔가를 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직 가족이 없어서 노동의 가치를 느끼거나 하지는 않는 편이죠. 사실상 하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사회생활이죠.”  
- 현석 씨(40세, 미혼, 11년차 공무원)

“정말 파란만장한 고용형태를 겪었어요. 처음에는 계약직으로 입사해 6개월 동안 일했어요. 계약이 한 번 더 연장되었고, 그 다음에는 프로젝트 단위에서 일종의 프리랜서처럼 일했죠. 그러다가 정규직으로 전환이 됐어요. 여기는 아직도 학력을 많이 봐요.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학력 세탁’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우여곡절 끝에 정규직이 됐지만, 아직 끝이 아닙니다. 직장에 들어와서까지 스펙 쌓기의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 현정 씨(33세, 여성, 4년차 금융 노동자)

“현재 노동은 고통일 뿐입니다. 일을 끝내면 거의 파김치가 됩니다. 그런데도 집에 들어오면 애들 돌보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살림이 또 남았어요.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은 오로지 잠잘 때뿐이에요. 그건 아무도 안 건드렸으면 좋겠어요. 잘 때가 제일 행복해요.”
- 은실 씨(50세, 여성, 마트 판매 노동자)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은 무엇을 고민하며 살고 있는지 물었다. 물론 여기에서 나온 이야기를 일반화해서 모든 노동자들이 이와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조직된다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이문호 소장은 노동의 본질이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의 일차적 본질은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힘들고 괴롭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다만 이렇게만 본다면 우리에겐 평생 즐거움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문호 소장은 “우리는 일을 통해 많은 것을 얻는다. 먹고살기 위한 돈, 상하 동료와의 사회적 관계, 어느 직장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 보상과 승진 속에서 느끼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 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즐거움, 그리고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 등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면서 “노동은 중요하다.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삶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더 많은 성과를 내는 사람은 더 많은 욕구를 충족한다. 노동의 동기는 이로부터 촉진되며, 노동이 사회통합의 중심 역할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조직되고, 노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고 밝혔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현주소를 집약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로 가장 먼저 ‘불안정’을 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비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도 언제 잘릴지 모르고, 언제까지 그런 고소득을 누릴 수 있을지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노동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을’이다. 노동이 없이는 경제가 굴러가지 못하지만, 정부도 기업도 심지어 노동자 자신도 노동을 주체적 요소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계약관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혹은 경제성장의 하위 카테고리로 두는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병훈 교수가 지적하는 키워드는 ‘장시간 노동’이다. 적정하게 일하고 여가를 가족과 보낼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 채, 일하는 사람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노동에 매달려 있지만, 다른 한쪽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우성치는 구직자들이 넘쳐난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자신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노동자들은 벌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더욱더 오랜 시간을 일에 매달리게 되고, 그러면서도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니 또 다른 일자리를 준비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한편에서는 ‘일 중독’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에 몰입하지 못하고 일을 잘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도 약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것이 이병훈 교수의 진단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혹은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노동에 끊임없이 매달려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노동철학이 결핍된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노동자는 소외된다. 자신의 일터, 가정,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스스로 소외되고 고립되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의 미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노동이 단지 고난이 되어버린 사회에서는 내일을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