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일터는 왜 두려운 곳이 되었나
그들에게 일터는 왜 두려운 곳이 되었나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5.07.1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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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차단하고 좌절을 키우는 일터의 현실
건강한 일터 되살리기는 미룰 수 없는 과제
우리 시대의 노동, 노동자 ④ 노동자와 일터

‘일, 술, 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 제조업체 (노와 사를 망라한)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그 회사 노동자들의 간단명료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생활 패턴이다. 하루를 구분해 보면 이 셋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다. 예전에 비해 술을 마시는 사람 자체가 줄었을 뿐 아니라 마시더라도 과음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젊은 세대일수록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 쉬는 날이면 등산이나 여행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대공장 주변에서는 쉽게 스크린골프장을 찾아볼 수 있다. 아직 ‘필드’에 나가는 것까지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스크린골프장을 찾는 발걸음은 훨씬 잦아졌다. 한 기업 인사노무 담당자는 “스크린골프장의 경우 술과 골프를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회식 때도 자주 찾곤 한다”고 밝혔다.

▲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통계보다 훨씬 긴 일터에서의 시간

그렇다면 ‘일, 술, 잠’은 터무니없는 표현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의 노동시간이 길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통계로도 잘 나타난다.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3년 기준 2,163시간으로 멕시코(2,237시간)에 이어 OECD 2위다. 한국은 노동시간 통계치가 있는 2000년부터 해마다 1위를 놓치지 않다가 2008년에야 멕시코에 1위 자리를 내줬다.

2,000시간 이상 국가는 그리스(2,037시간), 칠레(2,015시간) 등 4개국이었고, 네덜란드가 1,380시간으로 가장 적게 일했다. 네덜란드 다음으로는 독일(1,388시간), 노르웨이(1,408시간), 덴마크(1,411시간), 프랑스(1,489시간) 등이 노동시간이 짧았다. OECD 평균은 1,770시간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노동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통계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이렇게 짧을 리가 있나’이다. 이는 일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인사노무 담당자나 경영자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2011년 고용노동부가 완성차업체에 대한 ‘근로시간 수시감독’을 실시했을 때 적발되지 않은 업체는 없었다. 근로기준법상의 주 52시간이 아니라 행정해석을 근거로 한 68시간을 기준으로 했는데도 다 적발됐다.
이에 대해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고용노동연수원 박태주 교수는 “(장시간 노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도 회사를 고발한 적이 없다는 것은 기적 같은 담합이 내부적으로 진행돼 왔고, 정부는 직무를 유기해왔다는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노사 모두가 법정노동시간을 어긴 장시간 노동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임금’ 때문이다. 따라서 신고 되고, 그것을 토대로 집계된 통계보다 훨씬 오랜 시간 노동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상적인 잔업과 특근으로 일터에서 살다시피 하는 생산직도 그렇지만, 사무직들도 만만치 않다. 퇴근시간을 훌쩍 넘겨 야간근로를 하더라도 연장근로수당 신청하기도 눈치 보이는 현실에 대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4시만 되면 셔터를 내린다고 불만의 대상이 되는 은행들도 그 셔터 안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밤 10시가 넘도록 일하는 것은 일상이고, 심지어 노동조합 주도로 매주 수요일 7시에는 아예 전원을 꺼버리도록 하는 초강수까지 둬가며 노동시간을 줄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금 이렇게 노동시간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것은 노동자의 삶에서 일터가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어야겠지만 한편으로는 일터가 즐거운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지금 당장 진행되어야 한다.

나는 잘 하는데, 동료가 문제?

시중은행 본점에서 일하는 병일 씨(47세)는 일터에서의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직장에 대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고 업무에 대한 재미도 느끼는데 ‘사람’이 문제다. 병일 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고 자부해 왔고 주위의 평판도 그렇다. 그런데 회사의 평가는 그렇지 못한 것이 불만이다.

평상시에 업무보다는 상사와의 관계 형성에 더 열심인 다른 동료에 대한 평가가 자신보다 더 좋게 나온 것이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평가에서 밀리면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은행의 평가보상 체계에 문제가 있어요. 전 주어진 일은 물론이고 다른 일들까지 최선을 다해 처리하고 있는데, 늘 저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동료는 업무처리 능력이 떨어지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윗사람들만 모르는 것 같아요. 결국 그 친구에게 보상이 돌아가니까 열심히 일할 맛이 안 나요.”

병일 씨의 생각이나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병일 씨만이 아니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나본 노동자들은 대부분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동료들이 문제’라고 대답했다. 자신에게는 관대한 잣대를, 동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그것을 회사의 평가보상 체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인간의 본성으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조직의 평가와 보상 체계에 대한 불만이 누적될 경우 업무 몰입도와 만족도가 떨어지게 되고, 이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 하락과 경쟁력 저하를, 노동자 개인에 있어서는 노동 자체에 대한 회의를 불러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가 함께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영진은 평가와 보상에 대한 내용을 경영권의 영역으로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이나 구성원들의 참여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동의할 수 있는 평가체계의 구축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참여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과 노동자의 삶의 질의 동반 상승이라는 노사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버려지는 게 두려운 50대

석모 씨(54세, 입사 27년차)는 요즘 들어 자주 자신이 일터의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석모 씨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강성 노동조합’이 있다는 사업장의 현장에서 일하는 일반직이다. 쉽게 말하면 노사간 대립과 갈등이 있을 때 회사의 편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고, 일상적으로는 현장 작업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일을 한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참 고단한 직장생활이었다. 노동조합의 체계가 아직 잡히기 전에는 석모 씨의 표현대로 ‘볼꼴 못 볼꼴’ 다 봤다. 멱살을 잡히는 것은 예삿일이고 때로는 분노한 조합원들 앞에서 경영진을 대신한 ‘총알받이’ 노릇도 했다.

석모 씨는 요새 두렵다. 입사 27년차, 쉰 넷의 나이에 그는 차장이다. 동기들 중에는 벌써 이사직함을 단 경우도 있다. 이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요즘에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밀려서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경우를 자주 상상한다.

“생산직은 정년퇴직 하지만, 제 주변에서 일반직이 정년을 채운 경우는 아직 한 번도 못 봤어요. 이제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해요. 지난 세월 동안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버려지는 게 아닌가 두렵습니다.”

석모 씨 집은 서울이다. 20년을 넘게 살던 집이다. 그런데 어느 날 경기도 지역 공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때부터 석모 씨의 ‘새벽별 보기 운동’이 시작됐다. 매일 오전 4시 40분에 일어나 5시에 마을버스에 올랐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공장 인근 도시의 지하철역에 내려 거기서 다시 통근버스를 탔다. 퇴근할 때는 거꾸로 반복했다. 이 일을 5년간 계속했다.

지금은 그나마 가까운 지역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일터에서 시간보내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석모 씨는 첫 조의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공장에 도착해서 교대제의 업무가 시작된 이후에 일을 마친다. 하루에 12시간을 공장에 머문다.

5월 한 달 동안은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다. 하절기를 앞두고 현장에 냉방설비를 설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일상 업무를 처리하고 주말에 공사를 진행했다. 주말마다 출근해서 챙겨야 했다. 더워지기 전에 일을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요. 청춘을 바쳤지만 승진이 제대로 안 되면 보직도 없이 허수아비가 되는 경우도 있어요. 나가라는 거죠.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내 노력과 시간 투자에 대한 반대급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요? 조직에서 모든 걸 다 챙겨줄 수는 없겠지만 아쉬움이 남죠.”

석모 씨에게는 20살짜리 딸이 하나 있다. 아직 어리건만 주변에서는 일찍 결혼시키라고 성화다. 회사에서 밀려나기 전에 결혼이라도 시켜야 부조라도 제대로 챙길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반농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석모 씨는 씁쓸하다.

“퇴직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들 하는데, 글쎄요. 전 벌써 늦었다고 생각해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지도 않아요. 사람이 소속감이 없어지면 허무할 것 같아요. 30년 가까이 월급쟁이 생활 하다가 생활 방식이 달라지면, 물론 적응이야 하겠지만, 쉽지 않겠죠? 주변에서도 봤어요. 퇴직하고, 조직을 벗어나고 나니까 사람이 이상해지더라구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관심과 배려’라며 ‘짝사랑 하는 것이 아니라 교감했으면 좋겠다’는 석모 씨의 바람은 어쩌면 너무나 사소하지만 더 없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참 사원들에 대한 배려 차원의 교육이나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30대의 무력감과 불안감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찬우 씨(34세)는 요즘 짜증이 늘어난 자신의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괜히 화가 난다고 했다. 스스로는 직장생활 권태기가 아닌지 생각해 보는 중이란다. 남들보다 빠른 스물여덟에 입사해 벌써 7년차가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답을 내려 보기도 했다.

술잔을 앞에 놓고 오랜 시간 넋두리를 하던 찬우 씨가 조금씩 답이 보이는 듯 하다고 말한다. 찬우 씨의 20대는 거칠 것이 없었다. 세계금융위기로 취업문이 바늘구멍이라던 그 시절에 그는 단번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금융회사에 입사했다. 실패는 없었다.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장까지 올라가는 샐러리맨 신화를 선보이겠다는 야무진 꿈도 꾸었다. 이 회사가 내 회사라는 소속감, 충성심, 그리고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리고 찬우 씨는 30대가 되었다.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다. 행복은 더 커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아내는 사랑스럽고 아이는 보물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묵직한 부담감이 밀려왔다. 내 가족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다.
회사에서도 벽에 부딪쳤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하던 일들이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워졌다. 좌절도 여러 차례 겪었다. 본인이 추진했던 업무가 실패라는 결과로 돌아올 때마다 이 길이 자신의 길인지 반문하게 됐다. 사장은커녕 이 회사에 몇 년이나 더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직원들을 세대별로 분류해 보면 20대에 업무 몰입도나 만족도, 조직 로열티가 가장 높고 그 다음이 50대, 40대 순으로 나타나고, 30대는 가장 낮다는 것이다.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이문호 소장은 면밀한 자료검토와 면접조사가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다만 일반적으로 유추해 보자면 20대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취업을 했다는 기쁨이 있을 것이고 50대는 그래도 남들 다 관둔 상황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안도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라고 추정했다. “반면 30대는 불안정하고 언제 일을 그만두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문호 소장의 설명이다.

일터에서의 이런 세대별 차이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인사담당자들의 이런 표현이 단순히 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경향성이라면 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가장 왕성하게 노동하고, 또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건강한 노동을 만들어가야 할 30~40대가 노동에 대한 만족보다는 불안을 안고 지낸다면 개인과 조직 발전 모두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을 사는 노동

일터에서 자신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석모 씨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노동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석모 씨는 27년간의 노동 속에 느낀 자신의 삶에 대한 대답으로 대신했다.

“나 자신을 위해 산 것이 아니라 회사와 가족들을 위한 삶이었어요. 내 삶이 아니라 그 사람들 삶이었던 거죠. 타인의 삶을 살았어요.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뭘 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르겠네요.”

노동의 의미는 고사하고, 자신의 삶의 이유와 의미조차 찾을 수 없다는 그의 대답 속에는 짙은 후회가 함께 묻어 있었다. 일터의 노동을 바로세우는 일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인 이유에 대한 더없이 강력한 설명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