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산업 생태계 복원이 미래 가능성
울산, 산업 생태계 복원이 미래 가능성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04.0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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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기침에, 지역경제는 몸살?
[커버스토리] 울산의 내일을 보다 ➏

‘노동자의 도시’ ‘산업수도’ 울산이 심상치 않다. 지역의 3대 주력산업 중 조선은 장기간의 침체에, 자동차는 수출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석유화학산업이 선전하고 있지만, 앞날은 또 모를 일이다.

주력산업의 부진은 지역의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골목경기는 스산하고, 인구는 감소 추세다. 지역의 소득수준도 1위 자리를 내줬다.

울산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타 지역과 공통점이 많다. 어쩌면 정부 주도 아래 ‘산업수도’로 육성되면서, 그동안 실패의 경험 없이 내달려온 울산이기 때문에 지금의 어려움이 더 크게 와 닿는지도 모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는 물론, 사회 전반의 양극화를 줄여나가는 산업 생태계 복원 없이는 지금 당장 급한 불은 끄더라도 언제고 다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과정에서 노동은, 자본은, 행정은 어떤 역할과 책임을 찾아야 하는가?

기사를 준비하다보면 스멀스멀 유혹이 꿈틀댄다. 좀더 자극적으로 읽히게끔 쓰고 싶은 유혹말이다. 울산이 ‘위기’라는 표현이 그렇다. 다가올 미래에 경종을 울리는 획기적인 문제제기나 대안제시도 아니다. 이미 울산을 위기로 규정한 보도는 많다.

2018년 신년호에서 살펴본 ‘광주’지역과 이달에 찾은 울산은 겹치는 이야기가 많다. 지역은, 혹은 지역의 중심 일자리는 점점 더 늙어가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준비는 지지부진하거나 전무하다. 오롯이 지역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대기업 그늘 아래 중소기업 현실은?

산업수도 울산은 익히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이른바 3대 주력산업이 불황이냐 활황이냐에 따라 지역의 분위기가 갈린다. 유독 눈에 띄는 지역은 동구이다. 박근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지부장의 말처럼, 2015년과 비교해 정규직 노동자만 7천 명이 줄었다.

단순히 현대중공업이라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소가 위치한 동구의 골목경기도 한숨을 쉴 지경이다. 심지어는 노사의 교섭이 난항을 겪고 있을 때조차, 지역 상인들은 노동조합 명찰을 달고 있으며, 빨리 타결해서 시장 경기 좀 살려달라는 하소연을 한다니 말이다.

지금의 상황이 단기적으로,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고 보면 참고 견딜 수 있겠다. 과연 앞으로도 경쟁력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속 시원히 답이 어려운 상황이니 더욱 막막하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일본의 몫을 빠르게 점유해 나갔고, 지금은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앞세운 중국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핵심 사업만 가져가는 것도, 일정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사업을 유지하는 것도,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일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기업들도 울산을 떠난다. 윤동열 울산대 교수는 “산업수도라고 하는 울산의 이른바 3대 주력산업의 경우, 헤드쿼터가 다 들어와 있는가? 본사는 다 따로 있다. 연구기능도 마찬가지고”라고 지적한다. 울산에 남아 있는 것은 오퍼레이션, 생산기지만이다.

대기업의 협력업체, 유관 중소기업들은 말할 나위 없다. 지난 1년 사이 중공업과 관련한 기업 수는 25%가 줄었다. 1990년대 후반, 대기업 초봉이 1,800만 원 수준에서 현재 6,000만 원 수준으로 올라가는 동안, 중소기업은 얼마나 늘었을까? 이미 나이가 많은 이들은 어떻게든 버텨나가지만, 젊은 노동자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상생의 산업 생태계 만들어가야

산업의 생태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된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가장 상위 사슬에 위치하며, 하층으로 내려갈수록 이익의 분배가 급격히 줄어드는 구조에서는 위기 대응의 모색조차 어렵다.

이준희 한국노총 울산지역본부 의장은 말한다.

“대기업의 위기나 구조조정 등이 뉴스를 통해 널리 알려지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대기업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협력업체, 비정규직의 문제이다. 이들의 상황은 심각하다. 이와 같은 지역 노동의 양극화는 결국 사회 전체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그러다보면 지역의 자영업자도 경기불황의 어려움을 느낄 것이고, 울산 경제 전체의 동맥이 막혀버릴 것이다.”

이와 같은 고민은 이미 시작됐다.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지부장 역시 “2018년 투쟁, 교섭 방침은 ‘하후상박 임금연대전략’”이라며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에 대해 노동운동도 화답할 때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SK이노베이션 노사가 중소 협력업체 상생을 위한 기금을 조성한 사례도 잘 알려져 있다. SK이노베이션 노동자들이 기본급의 1%를 기부하면, 회사가 그에 상응하는 액수를 매칭해 기금을 조성한다. 올해의 기금액은 43억 원에 달한다.

실패 모르는 울산, 내성을 키우자

‘산업수도’ ‘노동자의 도시’ 이외에 울산을 수식하던 표현 중 하나는 ‘고임금’의 도시였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역의 내부에서 이와 같은 차이 때문에 갈등이 불거지기 이전에, 울산은 공연히 외부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요즈음과 같이 조선을 비롯한 주력 업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즈음에는 더욱 그렇다. 이성균 울산대 교수는 “돈 많이 벌던 산업도시가 어렵다. 이 와중에 노조는 파업하고 자기 잇속만 챙긴다는 식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이와 같은 관전평이 과연 울산의 현재 상황에 도움이 될까? 안 그래도 실패의 경험이 없던 산업수도 울산이 문제해결을 위한 내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비판과 제언이 필요하다. 이는 단지 울산지역만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서울과 지방으로 양분되는 기형적인 한국사회가 얼마나 균형을 찾아갈 수 있을지 미래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지금 필요하다.

 

▲ 이준희 한국노총 울산지역본부 의장

지역노총 의장으로서 보기에 지금까지 이와 같은 과정이 쉽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울산의 경기는 지금까지 위기가 없었다. 고도성장을 지속해 오면서. 하지만 지금은 조선업, 자동차, 석유화학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위기를 겪어보지 않은 울산 전체가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위기라고 하는데 지금 당장 조선업이 위기다, 자동차가 위기다. 실질적으로 화학도 위기이다. 다 위기라고 봐야 한다. 이게 진짜 위기인 건지, 각 사업장 별로 진짜 위기가 맞는 것인지. 왜냐하면 괜히 위기를 언급하는 것은 전체적인 사업장이나 산업 분위기를 위축시킬 수 있으니까. 왜 위기라고 언급되는 것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보고서 한 편이 나오질 않고 있다. 개별 기업단위이든, 집단적인 산업 차원에서든 명확한 데이터와 분석 자료가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 분석 결과 정말 위기라고 한다면, 이것은 지역의 노사민정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닐 것이다. 고용 위기이든, 경제 위기이든 중앙정부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서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사안이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노동이 참여하고 함께 바꿔나갈 수 있는 지점은 무엇일까?

참 어려운 이야기이다. 노사민정이 경제 문제를 함께 하면서 노동이 참여하는 훈련이 안 돼 있으니까. 실질적 위기라고 하면, 데이터 상으로. 경제의 위기는 곧 고용의 위기이고, 임금의 문제이다. 전반적인 경제를 살리는 쪽으로 참여해야 한다. 소위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모습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경영계와 일정 부분 함께할 수 있는 툴이 필요하다. 그게 지금은 없다. 노사민정이 각자 경제 위기 해결할 수 있는 툴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는 위기일 수록 필요하다. 그걸 경영계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울산 지역에서도 큰 문제인 것이, 대기업 그늘에 가려 있는 협력업체, 비정규직 문제이다. 이것은 대기업이 직면한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이런 문제는 지역의 노동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그러면 사회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결국 울산에서 전체적으로 자영업자들이 어려워지고. 그걸 통해 울산 경제 전체가 동맥이 막혀버릴 것이다.

처방을 할 때이다. 단지 주력업종의 문제로만 볼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같이 보아야 한다. 이면에 안 보이는 그늘은 앞으로도 더욱 가려질 것이다. 원하청 구조가 개선이 안 되면 울산 경제와 산업 전체의 선순환 동맥은 뚫리지 않을 것이다.

노사나 지자체, 정부 등 당사자들 외 외부의 시각은 어떤가? 이들이 함께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은?

학계가 더 절박함을 느낄 수도 있다. 늘 한발 앞서서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다. 아무리 좋은 의견이 있어도,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게 담보돼야 한다. 지방행정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절차 문제로 봤을 때, 긴장감을 갖고 있고 위기를 진단하는 학계도 포지션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 이경훈 전 현대차지부 지부장

지금까지의 경험이 이와 같은 과정에서 어떤 도움이 되고 있나?

현대차지부 지부장을 재임하면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완강한 회사의 태도를 바꾸고, 기업의 책무를 강조한 점이다. 2011년 노사공동 사회공헌 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서 사회공헌활동의 다각화에 주력했다.

대형마트 때문에 전통시장이 외면 당하고 있을 때, 재래시장 상품권을 처음으로 정착화하면서 울산 지역의 상인들도 깜짝 놀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복지단체 차량 지원, 결식학생 급식비 지원, 사회적기업 지원 등도 체계화했다. 노동자 정신의 대명사격인 전태일 정신을 계승해 나가고 있는 전태일 재단에 이소선 어머니 생전 차량을 기부하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인 저소득층과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책에 최선을 쏟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비정규직 노동 존중과 소외계층 양극화 해소 정책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노동자에 대한 권익과 대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최우선에 놓고 노사관계를 조율해 나갔던 경험을 살려, 노동자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사회복지 정책을 펼치고 싶다.

울산의 미래에 대해 어떤 희망을 품고 있나?

지난 촛불혁명은 비상식이 난무했던 정치적 격변기를 새롭게 규정했다. 국정농단 세력의 노동정책과 역사지우기는 국민들을 사분오열시켜 왔다. 자율적이고 상생하는 노사관계가 곧 노동존중이다. 노동은 곧 인권이고, 노동의 존중이 세상의 평화이다. 자율적인 노사관계를 존중하고 부당한 개입은 어떠한 경우에도 차단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세대 차이의 인식 제고도 절실한 지금이다. 울산의 새로운 미래를 늘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