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젊은 그들’, 변화를 꿈꾼다
2007년 ‘젊은 그들’, 변화를 꿈꾼다
  • 박인희 기자
  • 승인 2007.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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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87년, 그로부터 20년 ⑦ 노동운동 현장의 젊은 피를 만나다

87년, 그로부터 20년 동안 한국사회는 참으로 빠르게 변해왔다. 하지만 노동계는 일명 ‘87년 체제’의 틀을 유지한 채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 때문일까. 노동계의 주요 인물지형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이미 20년 전에 수장이었던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가장 앞에 서 있다. 일이 끝나면 모여서 열띠게 토론하던 열혈청년활동가들은 이제 한 가족의 가장이 되고 작업장에선 고참이 됐지만, 여전히 노동운동판에서 막내인 경우가 많다.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드리겠습니다.

- 조병화 <의자> 중 -

 

노동계에도 전문가집단 형성


전태일 열사는 “내게도 대학생 친구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87년 이전의 한국 사회의 노동계가 안고 있는 현실이었다. 사측과 논리로서 대항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이후 대학생들이 현장에 투입되면서 현장에는 다양한 학습조직들이 생겨났고, 이는 현재 노동운동의 정책적 바탕이 됐다. 

 

그리고 이런 바탕 위에 하나둘 새로운 내용의 학습과 고민, 경험이 쌓여가면서 노동계도 이른바 전문가집단이 생기게 됐다. 감정적 호소가 아닌 사용자들의 주장에 논리적으로 비판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문제의 대안을 찾아 제시하는 역량을 갖추게 된 것이다.

 

결국 현재 노동계의 주요 인물들은 한국 사회에서 민주적 노동운동이 태생할 때부터 함께 고민을 했기에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문제를 깊게 바라볼 수 있고, 이는 한국 노동운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노동계, 젊은피의 수혈이 필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 노동운동에 ‘위기론’이 거론되고 있다. 위기의 원인으로 조합원들의 무관심과 개인주의를 이야기 하지만, 이는 새로운 젊은층이 노동운동 진영으로 유입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과거보다 역동성이 떨어졌다는 것은 집회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역동성은 우리 민족의 특성이자, 특히 노동자들의 특성이다. 노동자들의 역동성이 산업을 발전시켜 왔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켜왔다. 이젠 지난 20년간의 노동운동 진영에 쌓인 노하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줘야 할 때다. 새롭게 노동계에 뛰어든 젊은 얼굴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소통할 때다. 앞으로의 20년은 바로 그들의 몫이어야 할 것이다.

 

김유진(26) <한국노총 연합노동조합총연맹 간사>
 

“이제 시작이지만  노동자 권리 찾기에  도움 되고파”

 

한국노총 연합노련 간사 김유진씨를 만난 날은 그가 연맹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지 겨우 이 주일 남짓 지났을 때였다. 인사와 회계 등 총무 일을 맡고 있는 김유진씨는 “아직까지는 인수인계를 받는 상황이라 업무파악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웃어보였다.

 

사실 김유진씨는 아직 노동운동에 대해 잘 모르는 ‘초짜’라고 밝혔다. “예전에도 노동운동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면서 이제 노동운동에 대해 알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국노총이라는 이름만 접하다 이곳에 들어와서 그 안에 여러 조합과 연맹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또 어떠한 일들을 하고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은 여전히 노동운동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무섭다'라고 생각하시거나 걱정스럽게 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제가 이곳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한 분 한분을 뵐 때마다 다들 인상도 부드러우시고 친절하다는 생각을 많이 가졌습니다.”

 

이 당찬 ‘새내기’는 각오도 야무지다.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인식하고 권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이지만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박윤정(30) <민주노총 기획조정실>

 


“노동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힘”


민주노총 기획조정실 박윤정씨는 학생운동을 하던 때부터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돈을 벌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자’며 민주노총을 ‘직장’으로 선택했다.

 

노동운동의 중심으로 들어온 그의 눈에는 단순한 연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것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민주노총, 크게는 노동운동이 굉장히 위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실제로 노동운동이 움직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지금까지 그렇게 돼 왔다는 것을 알게 돼서 전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욱 어깨가 무거워졌다. “민주노총의 투쟁이나 운동에 따라서 실제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최저임금을 예로 들면 한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책임의 무게를 느낍니다.”

 

그는 지금 매일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변화를 추구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또 주위에 활력을 주고 조직을 새롭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서라고 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앞으로도 많은 노력을 할 것입니다.”

 

 

오철민(34) <민주노총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식음료유통본부 사무국장>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 권리 찾을 수  있길”

 

오철민 민간서비스연맹 식음료유통본부 사무국장은 원래 롯데칠성음료 영업사원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쌓여가는 건 빚뿐이었다.

 

“그 빚은 정상적인 영업으로는 달성하지 못할 높은 수치의 판매달성목표를 채우지 못해서 쌓여간 것이고, 또 그 부족한 부분을 입금시키지 못하자 결국 부당한 해고를 통지받았습니다.” 그는 해고된 후에 많은 영업사원들이 회사의 부당한 지시와 유통 구조상의 모순점 때문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일을 열심히 해도 빚만 지는 영업사원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 위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정의하는 노동운동은 어떤 것일까. “법상 인정된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되찾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들지만 노동자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찾는 노력들이 이어져 결국 완전한 권리를 누리게 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오 국장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음료회사의 부당한 영업 관행, 그리고 유통구조의 모순점이 바로 잡힐 때까지 시민들에게 현실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희(28) <한국노총 김태환기념사업회 사무국장>

 

“긍정적인 비판은  조직 발전의 원동력”

한국노총 김태환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두희씨는 처음 이 일을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두희 국장은 인권단체에서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갖고 일한 전력이 있다.


이전에는 노동운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지만 지금은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말한다. “노동운동이 노동자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탁상공론이 아닌 좀 더 현실적이고 실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에 몸담고 있으면서 다른 직장과 다른 점도 많이 느낀다. “제가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비판의식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비판은 조직을 다듬고 더욱 성장시키고 변화시켜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봅니다.”


이 국장은 앞으로 무리한 욕심보다는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위한 제대로 된 추모사업을 진행하고 싶어 한다. “기념사업이 활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