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은 일이 넘치고 다른 쪽은 모자라고
한 쪽은 일이 넘치고 다른 쪽은 모자라고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7.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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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유연성, 독이 든 성배인가
① 현장의 ‘시한폭탄’ 물량 문제

깊어가는 물량 갈등, 쉽지 않은 해법 찾기

요즘 현대자동차가 잘 나간다. 최근 발표한 2007년 3분기까지의 경영실적이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3분기까지 내수 45만5994대, 수출 76만4326대 등 모두 122만320대를 팔았고, 이에 따라 매출액은 21조7530억원에 달했다. 영업이익이 1조1785억원, 경상이익 1조7104억원, 당기순이익 1조3444억원이었다.

이런 호조는 신형 아반떼, i30, 베라크루즈 등 신차 효과에다 기존의 효자 차종인 NF쏘나타, 그랜저TG 등도 판매호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더구나 해마다 파업과 추석 연휴 등으로 인해 실적이 저조했던 3/4분기였는데, 올해는 무파업으로 교섭을 마무리 지은 효과도 봤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한 실적, 그 속의 고민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장밋빛만은 아니다. 대외적으로 볼 때는 배럴당 100달러 시대를 예고하는 유가의 지속적 상승, 계속되는 달러화 약세, 일본차의 발 빠른 치고 나가기, 중국 업체의 급성장 등 여기저기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더 큰 고민은 대외 상황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현대자동차의 고민은 안에 있다. 지나치게 경직된 내부 시스템이 고민의 출발점에 있다. 흔히 ‘물량 문제’라고 통칭되는 생산을 둘러싼 갈등이 그 핵심이다. 또 UPH(Units Per Hour, 시간당 생산량 즉 한 라인에서 한 시간에 몇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지를 나타내는 수치, 60UPH라면 한 시간에 60대, 1분대 1대씩을 생산한다는 의미)와 M/H(Man Hour, 인력공수 즉 정해진 UPH를 달성하기 위해 한 라인 작업에 몇 명의 인원이 필요한 지를 나타내는 수치) 협상 과정에서의 지리한 줄다리기도 빠트릴 수 없는 고민이다.

 

사실 이 문제는 잘 나간다는 현대자동차만의 고민은 아니다. 국내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이 모두 안고 있는 문제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판매부진으로 한때 유동성 위기설까지 나돌았던 기아자동차도 똑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최근 급격히 기력을 회복하면서 옛시장을 되찾겠다고 나선 GM대우자동차나 지속되는 위기로 배치전환 합의까지 나왔던 쌍용자동차나 사정은 마찬가지다. 모든 자동차업체들이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셈이다. 다만 현대자동차가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선도 기업이다 보니 더욱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노사 모두 속앓이

물량 문제에 대한 고민은 노사가 모두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회사로서는 적기에 적정한 생산을 하고 이를 판매와 연결시켜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고민일 수밖에 없다. 노조로서는 시급제라는 임금체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물량의 적정한 분배를 통해 모든 조합원들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답답한 지경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전체 직원이 5만3천명에 달한다. 그런데 이 중 4만3천명 정도는 현재 잘 나가는 회사 분위기와 같이 물량이 넘쳐나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문제는 1만명이다. 모자라는 물량 때문에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이런 모순은 차종에 따라 판매가 다른 자동차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현대자동차는 국내에서 울산에 5개 공장과 아산, 전주 등 모두 7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울산 1공장은 클릭, 베르나 등 주로 소형차를 생산하고, 2공장은 투싼(수출), 싼타페, 베라크루즈, 에쿠스를, 3공장은 투스카니, 아반떼, i30를, 4공장은 소형버스(그랜드스타렉스), 소형트럭(포터, 리베로)을 만들고 있다. 5공장은 투싼(내수/수출)과 함께 12월부터 양산에 들어갈 새로운 대형승용차 BH(판매명 제네시스)를 생산할 계획이다. 아산공장에서는 쏘나타와 그랜저, 전주공장은 대형트럭과 버스 등 상용차를 만든다.

 

이중 3공장, 아산공장, 전주공장은 생산이 판매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여서 한달 내내 주말에 근무하는 특근을 실시중이다. 이에 반해 그런대로 돌아가고 있는 2공장이 있고, 1공장과 4공장은 상황이 안 좋다.

 

이런 와중에 공장간 물량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기존 아산공장에서 생산하던 쏘나타 중 일부를 울산1공장으로 옮기는 문제, 3공장에서 생산하던 투스카니 일부를 4공장으로 이관하는 것, 그리고 2공장에서 생산하던 에쿠스 후속 모델을 어디서 만들 것인가 하는 것 등이다.

 

 

 

물량 보내라…못 주겠다

그런데 이같은 물량 이관 문제가 첨예한 대립을 낳고 있다. 우선 아산에서 울산1공장으로 옮기려던 쏘나타(연산 7만대분)는 지난해 4월 협의를 시작한 이래 1년6개월이 넘도록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에 문제가 있는 소형차를 차츰 인도 등 해외공장으로 이관하고 베스트셀러카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쏘나타 일부를 1공장으로 옮긴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계획은 아산공장 조합원들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무산됐다. 1공장의 한 조합원은 “당시 NF의 물량이 폭발적이었고 때문에 몇 달씩 기다려야 했는데 공급을 제때 맞춰주지 못해서 경쟁 차종이던 SM5가 치고 올라오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더구나 쏘나타의 폭발적 인기가 한풀 꺾인 지금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아산공장에서는 울산1공장으로 물량을 이관할 경우 자신들의 일감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5공장은 2개 라인 중 한 개 라인이 1년째 ‘쉬고’ 있는 중이다.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존 갤로퍼 라인을 최고급 차종인 BH를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라인으로 바꿔 까는 리모델링 공사 때문이다. 그러나 그 1년의 기간 동안 이 라인에서 일하던 500여 명 중 100명만 다른 라인으로 옮겨갔을 뿐, 나머지는 휴가와 교육 등으로 사실상 쉬었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본인이 원하지 않을 경우 다른 곳으로 전환배치시킬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옮겨가기를 원한 사람이 100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5공장 BH라인은 12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3공장과 4공장 사이의 물량 이관도 쉽지 않았다. 3공장은 아반떼의 지속적 선전, i30의 출시 등으로 지금도 ‘풀특근’을 하고 있다. 자동차 공장은 일반적으로 주야 2교대로 작업이 진행된다. 주간조와 야간조의 교대 및 점검 시간 각 1시간, 식사 시간 각 1시간을 제외하면 작업조는 8시간 기본 근무에 최대 2시간까지 잔업을 할 수 있다. 기본 근무만 하는 것을 8/8이라고 하고, 잔업까지 할 경우 10/10이라고 부른다. 물량이 이것보다 많을 경우 토요일과 일요일에 특근을 하게 된다. 모든 주말에 다 특근이 필요할 정도로 일이 많은 경우를 풀특근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4공장은 8/8 수준이었다. 그래서 3공장에서 생산하던 투스카니 중 일부 물량을 4공장으로 이관하는 협의가 진행됐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노사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합의에도 불구하고 4공장에서 투스카니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올 8월이었다. 노사 합의 이후에도 3공장과 4공장 간의 세부적인 합의에 다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이런 상황에 대해 판매쪽의 한 관계자는 “생산이 한 번도 판매를 받쳐주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팔고 싶어도 팔 차가 없다는 것이다.


울산공장 생산운영팀 조영규 과장은 이에 대해 “그것은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의 불균형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즉 일반적으로 수요는 신차가 출시됐을 때 가장 높고 이후 차츰 떨어지는 양상을 보이는데 비해, 공급은 초기 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초기에는 적고 이후 차츰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신차 출시 초기에는 공급이 부족하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수요가 부족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

 

 

판매쪽의 한 관계자는 “생산계획을 잡을 때 신차 효과를 감안해 초기 생산량을 주문에 어느 정도 맞춰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바람에 놓치는 고객도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생산쪽도 고민이 있기는 매한가지다. 생산관리쪽의 한 관계자는 “판매쪽 얘기도 맞지만 생산쪽도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다. 생산을 처음 시작할 때는 보수적으로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것은 판매 예측을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와 함께 특근을 어느 정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투싼을 생산할 당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때 UPH 협상이 늦어지면서 출시가 지연됐는데, 그 결과 당초 투싼보다 늦게 출시 예정이던 동급 차량인 기아자동차 스포티지가 먼저 나오게 된다. 초기 시장을 스포티지가 선점하자 이후 투싼은 내수 시장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얼핏 보면 대단히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시장 상황에 맞춰 신속하게 물량을 옮기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일이 많은 쪽으로 인원을 이동시키면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노사 모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를 하지만 말 못할 고민 또한 안고 있다. 지금부터 그 속내를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