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배치, 차선과 차악 사이
전환배치, 차선과 차악 사이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7.11.05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Special Report 유연성, 독이 든 성배인가
④ 쌍용자동차의 선택

경영악화 속 고용보장 위한 수동적 선택

2006년 8월 30일, 쌍용자동차 노사는 ‘2006년 임금단체협상’을 타결했다. 회사의 위기 상황 속에서 노사는 팽팽하게 맞섰고 결국 48일간 장기파업이라는 진통을 겪은 끝에 양측의 한발 양보로 노조는 ‘정리해고 철회’를, 회사는 ‘인력운영의 유연성’을 얻어냈다. 특히 자동차업계 최초의 ‘전환배치’가 눈길을 끌었다.

 


위기와 전환배치

쌍용차 노사는 모두 전환배치를 합의할 당시,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여타 완성차업체의 상황과 다르다고 말한다. 경영이 구조조정을 해야 할 상황까지 악화되었고 이를 피하기 위해 전환배치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

 

노조는 회사가 정리해고 방향을 설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한다. 쌍용자동차노조 권승오 정책기획실장은 “48일간 장기파업을 했다. 장기파업을 하는 것이 두려워서 전환배치를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차가 안 팔리는 현실을 모른 척하며 자신들의 주장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고용을 포기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불신이 발목을 잡았다”

노사협력팀 고재용 차장은 당시 합의에 대해 “구조조정을 하지 않기 위한 전환배치였기 때문에 크게 고민할 사항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이런 위기가 오기 전에는 왜 전환배치가 불가능했던 것일까. 그 원인에 대한 분석에서도 노사간의 이견은 없었다. 우선 전환배치를 정리해고의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것. 현장의 조합원들에게 전환배치는 다기능화 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있던 밥그릇을 뺏기는 것으로 여전히 받아들여진다는 이야기다. 둘째,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조합원이 원하지 않는 전환배치에 대한 노동조합 반발이 더해졌다.

 

이런 불협화음이 비단 회사가 어려울 때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회사 관계자는 “차가 잘 팔릴 때도 증산협의가 잘 안 된다”며, 결국 이런 문제의 가장 큰 이유는 노사간의 불신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최형길 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조합원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노동강도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자신들에게 선택권이 없음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 또한 ‘불신’이다. 더구나 노조는 신규투자 없이는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상하이차의 신규투자 의지에 대한 불신도 논의에 어려움을 줬다.

 

불신과 위기는 노사가 함께 만든 것

현재 고용을 둘러싼 현장 조합원들의 불안감과 불신, 그리고 위기상황은 노조 집행부와 회사가 함께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노사 모두 문제를 가장 손쉬운 ‘사람’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다. 

 

회사는 장기적인 계획 하에 인력관리를 하기 보다는 관행적으로 잘 나갈 땐 일단 사람을 더 늘리고, 조금 어려워지면 인력구조조정을 실시해 왔다는 지적이다. 노조 집행부 또한 조합원들이 현장에서의 고충을 이야기하면 사람을 더 투입하는 형태로 문제를 풀어왔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 없는 인력운영은 회사가 잘 나갈 때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상황이 어려워지면 노사 모두에게 화살로 돌아온다. 특히 노조 집행부의 ‘자판기’식 대응은 나중엔 회사에게 경쟁력 악화라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쌍용차 노사가 전면적으로 전환배치를 합의하기 전에도 쌍용차를 비롯해 완성차업체들은 전환배치의 형태라 할 수 있는 소규모 이동이 이뤄져왔다. 하지만 그 과정이 원칙이나 기준 없이 이뤄지다보니 “노조나 관리자와 친하면 편한 곳으로 가서 일할 수 있다”는 인식이 현장 조합원들에게 자리잡게 됐다. 이는 전환배치에 대한 또 하나의 불신이 됐다.

 

쌍용차 노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환배치에 있어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일단 인력이 필요한 곳에서 희망자를 받고, 필요인원보다 많은 희망자가 지원을 하면 사번이 높은 순서로 배치한다는 것이다. 또 힘들다하여 기피되는 부서의 경우엔 사번이 낮은 순서로 배치하기로 했다. 근속연수가 많은 사람에 대한 우대로 원칙을 정해 노조 집행부나 회사와의 ‘라인’에 대한 불신을 없애고자 한 것이다.

 

또 노조 집행부는 집행부와 회사의 집단교섭체제를 소협의·대협의체제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현업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1차적으로 대의원 등을 통해 현장에서 해결하도록 하고 집행부는 그것을 보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의원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와 노조 집행부가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한 노조 간부는 “전환배치 같이 조합원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문제를 위에서 노사가 합의해 아래로 내려 보내면 현장에서 반발이 크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현업에서 조합원들과 직접 부딪히는 것은 대의원”이기 때문에 “집행부를 통해서가 아닌 이들이 직접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환배치를 실시하기에 앞서 회사의 설명을 노조 집행부가 먼저 듣지 않고 전체 대의원들이 먼저 듣도록 한 것도 그런 까닭이라고 말한다. 

 

자칫하면 최악될 수도

쌍용차 노사가 전환배치에 합의했지만 어려움은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조립1라인은 계획정지(휴업) 문제로 노사가 갈등을 겪고 있고, 감산 문제나 신규차종 문제 또한 명확한 답을 못 내고 있는 상황이다. 

 

전환배치라는 선택에 대해 노사가 모두 ‘벼랑 끝 선택’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정작 ‘그 다음’을 만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노사는 기업의 생존과 조합원의 고용보장이라는 타협점을 찾았다. 그 선택을 차선으로 받아들일 수도, 혹은 차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초의 목표였던 ‘기업의 생존’과 ‘고용보장’ 둘 중 하나라도 놓치게 된다면 ‘최악’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동적 합의가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과 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적극적 해법 모색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