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몸으로 읽은 안전
17년 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몸으로 읽은 안전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2.18 17:05
  • 수정 2020.02.18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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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협의회 218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추모제 동행 취재기 ➋
화재 전동차 체험한 철도지하철노동자가 말하는 안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당시 처음 불이 났던 1079 열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전소돼 현재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보존돼 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당시 처음 불이 났던 1079 열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전소돼 현재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보존돼 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18일 오전 9시 45분 팔공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로 향했다. 화재 전동차 안전 대피 행동 요령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17년 전 오늘 같은 시간 불이 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안전 대피 행동 요령도 알지 못했을 대구 시민들은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으로 향했을 것이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로 가던 중 황우진 서울교통공사노조 역무본부 광화문지회장에게 체험은 어땠냐고 물었다. 20년 경력 역무원인 그는 이전에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화재 전동차 체험을 이미 해봤다. 그는 “가보면 압니다”라면서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당황스럽고 겁이 날 것”이라 말했다. 그의 옆 조수석에는 장태익 서울교통공사노조 역무본부 2호선북부지회장이 타고 있었다. 올해 서른하나의 그는 이번 체험이 처음이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지하에는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당시 처음 불이 났던 1079 전동차가 보존돼 있다. 모두 불 타고 원래의 은색을 잃어버려 검게 그을린 전동차 틀만 남아있다. 전동차 내부는 당시 참혹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잿더미만 쌓여 있다.

어두운 역사, 유일한 빛 유도등

한 층 더 내려간 곳에서는 대구 중앙로역을 복원해놓은 역사가 있었다. 그곳이 화재 전동차 안전 대피 행동 요령을 체험하는 곳이다. 스크린도어가 열렸고 전동차 문이 열렸다. 전동차에 탑승했다. 매일 타는 지하철과 같았지만 곧 체험을 한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17년 전 오늘 화염과 유독 가스에 쌓인 대구 중앙로역에서 한 치 앞도 안 보인 채 아비규환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을 오전 10시에서 15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화재 시 대응과 대피 요령을 배운다니 기분이 더욱 이상했다.

화재 시 객실 양 끝에 설치된 유선 무전기로 화재 사실을 알린다. 진압할 수 있는 불일 경우 구비된 소화기를 사용한다. 이후 좌석 밑 유압 밸브를 열고 전동차 문을 연다. 스크린도어를 연다. 유도등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간다. 말로는 간단해 보이는 대피 요령이다.

모형 전동차가 움직였고 전기가 모두 나갔다. 전동차도 역사도 캄캄했다. 연기가 퍼졌다. 숙지한 요령대로 전동차 문과 스크린도어를 열었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낮추고 손으로 입을 막은 후 유도등과 앞 사람의 허리만 바라보고 어둠을 뚫고 계단을 찾기 시작했다.

모의 훈련이었지만 당황스러웠다. 답답했다. 지상으로 올라오며 과연 일사분란하게 승객들이 줄을 지어 나올지도 걱정스러웠다. 지상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 있다. 방화셔터인데 문을 찾는 것이 어렵다. 그럴 땐 방화셔터 끝에서 끝까지 한 번씩 밀어보면 열리는 곳이 무조건 있다. 17년 전 오늘 역사 밖으로 뛰쳐나오던 10명의 시민들이 방화셔터 앞에서 문을 찾지 못한 채 질식으로 지상으로 나가는 출구 앞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모의 체험 훈련 내내 의지했던 것은 유일하게 빛나는 바닥에 붙은 유도등이었다. 형광물질로 돼 있어 전기가 끊어져도 빛을 낸다. 안타깝게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연기가 자욱한 역사를 헤치고 나오는 철도지하철노동자 (화재 전동차 대피 체험 중)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연기가 자욱한 역사를 헤치고 나오는 철도지하철노동자 (화재 전동차 대피 체험 중)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체험에 대해 철도지하철노동자들이 말하다

이번 체험을 처음 한 장태익 지회장은 “과격하게 말하면 모르면 다 죽는다라는 게 맞을 것”이라며 “어린이와 일반 시민들이 이런 체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체험 소회를 전했다. 다만 그는 “본질적으론 화재가 나지 않기 위한 안전 체계를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짚었다.

화재 전동차 대피 요령이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니다. 물론 대피 방법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봤다면 화재 시 생존 확률이 올라가는 것은 맞다. 그러나 본질적인 답은 장태익 지회장의 말처럼 화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참사로 번지지 않게 하는 안전한 시설과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이후 많이 알려졌다시피 불에 타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야 할 전동차 내부는 오히려 불을 키우는 소재로 만들어졌다. 좌석 안에 채워진 스펀지는 1,000도 이상의 화마를 만들었다. 안전 매뉴얼조차 없었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이후 우리나라는 영국의 법을 벤치마킹한 철도안전법을 제정한다. 그마저도 처음 벤치마킹한 취지인 원인 규명보다는 책임 추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철도지하철노동자들의 설명이다.

이석주 용인경전철지부 지부장도 이번 처음이 체험이다. 아이도 미리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아 어린 아들과 함께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를 추모하러 왔다. 역무 업무를 맡고 있으며 1인 근무를 하고 있다.

이석주 지부장은 “갈수록 1인 역무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오늘 체험을 통해 알겠지만 1인 역사 근무 시 화재가 발생하면 혼자 방송하고, 혼자 화재 진압하고, 혼자 승객 대피 유도하고 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또한 “오늘과 같은 안전 훈련도 분기별 부분 훈련, 종합훈련 등으로 진행하지만 형식적인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전으로만 하는 훈련이기도 하고 교육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석주 지부장은 “안전 전문 강사와 구체적인 자료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안전을 위해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와 세월호 사건 등 국가적 재난을 겪었는데도 대한민국 사회는 안전에 대해 깊이를 더하지 못했다”며 크게 바뀌지 않은 현실을 꼬집었다.

이처럼 화재 전동차 체험을 한 후 철도지하철노동자들은 현장의 눈으로 근본적인 안전 대책에 대해 전했다. 참사를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안전 체계 구축을 위한 인적, 물적 준비이다. 구조가 중요한 것이다.

관련해 최근 벨기에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이 있었다. 작년 12월 벨기에 법원이 내린 2010년 바위징엔(Buizingen)역 열차 사고에 관한 판결이다. 19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이다. 법원은 열차 네트워크 관리공사인 Infrabel과 국영 철도운영사인 SNCB/NMBS가 절반씩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고 각각 55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사고 당시 기관사는 충돌 사고 원인을 제공했지만 형사처벌 받지 않았다.

벨기에 법원 재판부는 “열차 기관사는 안전 체계에서 최후의 연결고리일 뿐 유일한 보호수단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즉 사회적 참사의 경우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거꾸로 보면 안전 시스템을 촘촘하게 짜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이후 기관사들만 형사처벌을 받았다. 강릉 KTX 열차 탈선 사고 이후 고속철도 시설과 운영의 분리 경영이라는 구조의 문제가 지적됐지만 현재 그 지적은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