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실현은 민주주의 실현
광주형 일자리 실현은 민주주의 실현
  • 박석모 기자
  • 승인 2020.06.22 09:52
  • 수정 2020.06.22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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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주장만 내세울 때 민주주의 설 곳 없다
일자리·사회 문제 동시 해결로 나아가야

커버스토리❺ 광주형 일자리, 어디로 가야 하나

광주형 일자리 성공기원 문화행사 © 참여와혁신 DB
광주형 일자리 성공기원 문화행사 © 참여와혁신 DB

지금까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적용된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 추진과정에서의 문제들을 살펴봤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결론은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귀결된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쓰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해석도 제각각이어서 직접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구체적인 내용을 서술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금까지의 서술에서 결국 민주주의는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데, 여기서 참여는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주체로서 의사결정은 물론 결정사항의 이행과 그 책임까지 함께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참여가 이루어질 때, 그 과정을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나아갈 방향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상생위원회·상생일자리재단,
더 큰 참여로 만들어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정책은 ‘상생형 지역일자리’로 요약된다. 그 모태가 된 것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과 접목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자동차 공장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광주광역시가 그 외의 당사자들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만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주체들의 최고 의결기구인 광주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사업의 추진과정을 심의·의결해야 하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거수기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난 4월 2일 협정 파기를 선언했던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를 비롯한 노동계는 이용섭 시장이 광주글로벌모터스(GGM) 내 상생위원회 설치와 상생일자리재단 설립을 약속함에 따라 다시 논의에 복귀한 상태다. 상생위원회와 상생일자리재단을 통해 최소한의 참여 통로가 확보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상생일자리재단은 광주광역시의 노동정책에 대한 컨트롤타워로서 광주형 일자리에 관한 모든 사항을 주관하는 기구”이고 “상생위원회는 법인 내에서 신규 자동차 공장이 가동될 때까지 필요한 제반사항을 결정할 상설기구”라고 위상을 설명한다. 특히 “상생위원회는 이사회에 참여하는 이사들 중 1명이기 때문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노동이사에 비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구”라고 강조했다.

실제 5명으로 구성되는 상생위원회의 면면을 보면 윤종해 의장의 이야기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동안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설계부터 구체적인 적용까지 큰 역할을 했던 박병규 광주형일자리연구원 이사장과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윤종해 의장도 노동계 대표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광주형 일자리의 문제의식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던 이들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기에, 실제 신규 자동차 공장이 가동될 때까지 필요한 준비 과정에서 최초의 문제의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방향으로 의사결정과 집행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한 상생일자리재단 역시 광주광역시는 재단 운영을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의사결정은 참여 주체들의 결정에 따른다는 이용섭 시장의 약속이 지켜진다면, 그동안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을 관료들이 주도하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바로잡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은 “재단 설립이나 위원회 설치는 목표가 아닌 수단”이라면서 “위원회나 재단이 잘 돌아가는 게 아니라 회사가 돌아가야 실제 고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황기돈 원장은 이어 “재단이나 위원회는 고용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전제로 그 안에서 노사책임경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이며, 원·하청 관계는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가 논의되고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예컨대 공장 가동 이전에 필요한 인재를 준비하기 위해서 폴리텍 같은 공적 교육기관을 활용한다든지, 비즈니스를 담당할 인재를 어떻게 뽑아서 고급인력으로 키울 것인지 등 구체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상생위원회 또는 상생일자리재단에서는 신규 자동차 공장에 대한 각종 지적들에 대한 검토도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미칠 영향이나 GGM의 경쟁력 확보 방안 등 눈여겨봐야 할 지적사항이 적지 않다.

민주주의는 명예로운 양보다

황기돈 원장의 지적대로 상생위원회나 상생일자리재단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논의과정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노·사·민·정 이해당사자 중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당면한 현안에 대한 해법을 함께 모색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곧 사회적 대화다. 이런 의미에서 노사 간의 교섭도 사회적 대화의 일종이다. 사실상 모든 의사결정 과정은 이와 같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반드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라는 기구를 통해야 한다거나 혹은 경사노위에는 절대로 참여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에 불과하다. 사회적 대화는 개별사업장의 교섭에서부터 전국 단위 대표자들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또 그렇게 확대돼야 한다. 경사노위에서의 사회적 대화도 필요하지만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대화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른 한편 사회적 대화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방법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로 다른 이해당사자의 주장을 억누르는 길밖에 없다. 어느 일방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 게 아니라면 현안을 해결하는 길은 결국 각 이해당사자들의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찾는 방법밖에 없다. 이러한 양보와 타협을 이루는 과정이 곧 사회적 대화다. 이를 무시하고 어느 일방이 독주하려고 할 때 곳곳에서 파열음이 생기고 진행과정이 삐걱거리게 된다. 광주에서는 신규 자동차 공장 설립 추진과정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민주주의의 핵심은 이러한 양보와 타협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황기돈 원장은 이를 두고 “민주주의의 핵심은 명예로운 양보”라고 규정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당사자들이 양보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명예로운 양보는 대화하는 상대방이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황기돈 원장은 주장한다. 대화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서로 명예로운 양보를 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예컨대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은 노동계로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실제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가 합의한 투자협정서에는 근무조건은 상생노사발전협의회를 구성해 협의하고 여기서 결정된 합의사항은 누적 생산 대수가 35만 대에 이르기까지 유효하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를 두고 노동계에서는 단체교섭권을 유예하는 것으로 해석해 강력하게 반발했다. 연간 생산 대수를 7만 대로 가정하면 5년간 임단협을 요구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 조항에 대해 5년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 조항은 여전히 살아 있다. 광주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협정서를 의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거나 임단협을 요구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헌법상의 권리인 노동3권을 합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록 광주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서 적정임금의 기준을 마련하고 기업의 경영성과와 생산성 향상을 고려해 임금인상의 합리적 기준을 제시하면 GGM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협정서에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권장사항이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명예로운 양보를 통해 합의한 내용이라면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나, 노동자들이 협정서 상의 상생노사발전협의회와는 별도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임단협을 요구하면 GGM이 이에 응해야 하는 것은 법률적 의무이다.

GGM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높은 임금인상, 예컨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 준하는 수준을 요구할 수도 있다. 노조법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협정서의 기준과는 충돌하는 이런 경우는 향후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안고 있다. 다만 이 같은 갈등이 현실화되는 경우에도 이를 해소하는 과정은 노사 간의 사회적 대화, 즉 교섭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빛그린 국가산단 진입로 © 참여와혁신 DB
빛그린 국가산단 진입로 © 참여와혁신 DB

광주형 일자리는 지역혁신모델이다

민주주의는 이해당사자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당사자들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민주주의를 일자리 문제에 적용해 산업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의 문제의식이다. 지역 차원의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민주적으로 풀어가고자 한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문제의식이 일자리 문제, 산업 현장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광주형 일자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의결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광주지역노사민정협의회이고, 여기에는 노사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와 지역의 시민사회도 참여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의 논의과정 자체가 개별사업장 혹은 산업 차원의 노사를 넘어 지역사회와 연관돼 있다.

처음 광주형 일자리가 제기되던 때부터 노사민정 모두가 참여하는 모델이 구상의 중심에 놓여 있었고, 이를 통해 지역혁신을 추구하는 것이 또 하나의 축이었다. 광주형 일자리가 제기한 적정임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역할이 필요했던 것이다. 노동자가 임금을 통해 얻는 소득은 주로 주거와 의료, 교육 등으로 지출된다. 이를 모두 개인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기업별노조 체계는 이와 맞물려 노동자 간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으나 임금인상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것마저 어려워하는 기업도 있다. 따라서 이를 개별기업에만 맡겨두는 것은 해법으로 적절하지 않다. 기업의 사정에 따라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향에서 모색한 해법이 이른바 사회적 임금을 통한 주거, 의료, 교육 문제의 해결이다. 노동자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주거, 의료, 교육 등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노동자가 더 많은 임금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조건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다. 이 같은 해법이 현실화된다면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동시에 주거, 의료, 교육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지역혁신모델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모델을 당장 실현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예컨대 GGM을 설립하면서 노동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광주광역시가 빛그린산단 내에 주거단지를 조성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진 바 있다. 그러나 2년이 다 되도록 전혀 진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민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제 와서 목적이 전혀 다른 행복주택을 전용한다는 것은 책임회피에 불과할 뿐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단지 일자리에만 국한해 고민할 것이 아니라, 그 구체화 과정이 지역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 조건을 현실화하기 위한 방안도 광주형 일자리‘답게’ 노사민정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마련해 나간다면, 그 과정이 곧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 걸음 진전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