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직업계고등학교 문화는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들고 있다
[기고] 직업계고등학교 문화는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들고 있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07.11 00:00
  • 수정 2020.07.10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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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직업계고등학교 선생님의 편지
7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고 이준서 학생 공대위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지난 4월 8일 고 이준서 학생은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대회 합숙훈련 중 학교 기숙사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경주 S공고 고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이들은 7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고 이준서 학생 사망에 대한 인권침해요소 진상조사 및 개선 권고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폐지 적극 검토 ▲기능경기대회에 대한 전면적 진단 등을 요구했다. 아래는 직업계고등학교 현직 교사이자 전교조 조합원이 익명으로 기자에게 보내온 글이다. 

고 이준서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 학생을 죽음의 길로 내모는 학교가 정상적인 모습입니까. ‘침묵의 자살’은 닫힌 세상에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그 고통을 외치는 것입니다. 한 생명이 무엇으로 죽음에 내몰리게 되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말입니다.

지방기능경기대회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입상성적을 언론에 자랑하는 학교들이 다수 보입니다. 이런 현실을 목도해야 하는 직업계고등학교 교사로서 나는 참담할 뿐입니다.

7월의 학교는 기말고사 출제모드로 전환 중입니다. 6년차 교사의 전화 통화를 들은 나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전화통화 내용은 이랬습니다. “부장님 기능대회 때문에 바쁘시죠. 부장님이 가르치신 부분 시험문제를 제가 대신 냈어요. 메시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시험문제 검토해주시겠어요.” 전화통화를 듣고 있는 나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조직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조직의 규칙이나 문화가 잘못 설계되는 경우가 대다수 있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학교에 들어오면 이렇게 이상해집니다. 직업계고등학교 문화는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척박한 환경이 되어 버린 지 오랩니다.

전교조는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운영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특히, 2차 의견조사에서는 기능반 제도와 관련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교사 10명 중 9명이 현재의 기능대회 체계에 대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기능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는 기능반 활동은 비교육적 활동이므로 교육적 활동으로 개선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반교육적 학교문화를 양성하는 기능반 폐지를 적극 지지하는 강한 목소리를 폭발적으로 뿜어낸 것입니다.

많은 교사들은 학교가 기능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소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기능반 담당 교사가 나를 대신해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감정이 뒤섞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다수입니다.

이 정부는 ‘사람이 먼저다’라고 입으로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합니다. 저들의 교육부는 인지 부조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작 우리 학생이 멸시당하고 죽어 나가는데 말입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직업계고등학교 학생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기능반 중심, 취업이 중심된 학교는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거추장스러운 행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배워야 할 지점을 제대로 익히도록 해야 합니다.

비교육적 행태를 넘어 반교육적 모습으로 보이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국가인권위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정능력을 상실한 학교의 문제를 제대로 톺아주기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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