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보다 귀한 메달은 없다”
“인간의 존엄보다 귀한 메달은 없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07.09 17:33
  • 수정 2020.07.0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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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 인권위에 진정서 제출
공대위, 직업계고 기능반 폐지·기능경기대회 재검토 요구
“직업계고등학교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내몰렸는가?”
7월 9일 오후 2시 30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참가자들이 고 이준서 학생을 추모하며 묵념 중이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경주 S공고 고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고 이준서 학생 공대위)가 7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지난 4월 8일 기능경기대회 합숙훈련 중 학교 기숙사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 이준서 학생의 사망 진상조사를 위해서다.

고 이준서 학생 공대위는 진정서 제출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고 이준서 학생이 탈출하고 싶어 했던 피진정인 신라공업고등학교의 기능반 중심의 차별적인 교육 실태, 이를 용인해온 피진정인 경북도교육청과 피진정인 교육부의 직업계고 교육정책, 그리고 성과지상주의로 차별적인 교육을 조장하는 기능경기대회 출전을 둘러싼 폐해들에 대해 조사해주실 것을 진정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고 이준서 학생 사망에 대한 인권침해요소 진상조사 및 개선 권고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폐지 적극 검토 ▲기능경기대회에 대한 전면적 진단 등을 요구했다.

7월 9일 오후 2시 30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용기 전교조 경북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이용기 전교조 경북지부장은 “고 이준서 학생의 사망 진상규명과 직업계고 기능반 폐지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섰다”며 “기능훈련을 아침부터 밤까지 시키고, 교사들과 학교의 압박, 학생들 간의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을 다시 한 번 살피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권영국 고 이준서 학생 진상조사단장도 “한 학생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직업계고등학교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고발했음에도 우리는 그 내용을 본질적으로 들여다볼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안타깝다”며 “가장 평등해야 할 학교에서 기능반과 일반반을 나누고 학생들에게 기능대회 성과를 낼 것을 종용해 왔다”고 꼬집었다.

한편, 지난 6월 24일 발표된 고용노동부와 교육부의 ‘기능경기대회 개선 방안’ 중 22시 이후 야간 및 휴일교육 금지조항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는 직업계고 학생들의 학습권·건강권 보호를 위한 대책에서 ‘학생·학부모가 희망하는 경우 사전계획을 수립해 학운위 심의를 받고 실시하되, 대회 과제 발표 이후에만 가능’이라는 예외조항을 달았다. 이 예외조항이 사실상 야간·휴일교육 규제를 무력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래는 7월 9일 고 이준서 학생 공대위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진정서 전문이다.

진 정 내 용

지난 4월 8일 장래를 촉망받던 이준서 신라공업고등학교 기능영재반(기능반) 3학년 학생이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합숙 훈련 중 학교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을 매 생을 마감했습니다.

생명을 버린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버릴 만큼 그 무게가 무겁고 막중한 일입니다. 이준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후 학교는 준서 학생이 무슨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진상을 알려고 하기보다 학교 책임이 없다는 변명을 하기에 급급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학생에게 가정문제가 있었다거나 파트너와의 불화가 있었다는 말을 앞세웠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불행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보여준 태도는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준서 학생의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들여다보고 그 치부를 도려낼 대안을 마련하여 또 다시 동일하거나 유사한 불행을 막아야 한다는 교훈을 무색하게 만드는 비교육적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은 한창 성장기에 있는 학생을 보호하고 이들의 인격적 발전을 지원해야 할 고등학교 내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결코 불행한 일로만 추모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직업계고등학교는 기능반 운영을 통해 기능경기대회 상위권 입상이라는 성과를 내기 위해 늦은 밤까지 반복적인 훈련으로 학생들을 혹사하고 메달 수상자 이외의 대다수 학생을 소외시키는 불평등한 교육환경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있어왔습니다.

이준서 학생의 죽음은 기능경기대회 성적을 올리기 위해 정규반이 아닌 특별반(기능반)을 운영하고 기능반 학생을 일반 학생들과 다르게 ‘관리’해온 피진정인 신라공업고등학교의 차별적인 교육행위와 이를 용인해온 피진정인 경북도교육청과 피진정인 교육부의 차별적인 직업계고 교육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러한 차별적인 교육 행위와 교육정책의 결과로 인해 이준서 학생을 비롯한 기능반 학생들은 적정한 교육을 받을 학습권과 올바르게 성장할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인은 피해자 이준서 학생이 탈출하고 싶어 했던 피진정인 신라공업고등학교의 기능반 중심의 차별적인 교육 실태, 이를 용인해온 피진정인 경북도교육청과 피진정인 교육부의 직업계고 교육정책, 그리고 성과지상주의로 차별적인 교육을 조장하는 기능경기대회 출전을 둘러싼 폐해들에 대해 조사해주실 것을 진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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