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인물 : 방과후강사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방과후강사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8.23 21:52
  • 수정 2020.08.24 0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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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단위피케팅 #첫노동자대회 #두번째삭발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방과후강사

방과후강사는 학교 정규수업이 끝나면 독서·논술·요리·미술·악기·스포츠 등을 가르치며 시간당 수업료를 받는다. 학부모가 강의 신청 후 낸 수업료가 곧 수입이라 수업이 없으면 월급도 없다. 코로나19로 방과후수업이 열리지 않는 동안에는 급여가 없는 셈이다. 이들은 1년마다 계약하는 학교 또는 위탁업체의 지시를 받고 일하지만 개인사업자 취급을 받는 특수고용노동자이기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코로나19 재유행으로 2학기 방과후학교 재개가 불투명해지면서 방과후강사들은 다시 절망하고 있다. 올해 초 1학기 수업이 미뤄지며 전남, 전북, 제주 등 일부 수업을 재개한 지역을 제외한 방과후강사들은 7개월 이상 무급으로 버텨오며 2학기만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던 이들은 지난달 2학기 방과후수업 재개와 생계대책을 촉구하는 전국 단위 피케팅을 했고, 17일에는 노동조합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전국 단위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방과후강사들은 ▲등교수업과 동시에 방과후교실 재개 ▲생계 대책 마련 ▲전국민 고용보험 실시 ▲노조 설립신고필증 교부 등을 주요 구호로 외쳤다. 지난해 11월 19일 노조 설립 신고 필증을 촉구하며 삭발한 이후 다시 머리카락을 자른 김경희 방과후강사노조 위원장을 만나 방과후강사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김경희 방과후강사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 두 번째 삭발이다.
딱 9개월 만이더라. 겨우 머리카락이 예쁘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웃음) 삭발을 다시 결심한 이유는 간단하다. 절박해서였다. 여전히 수도권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2학기 수업이 불투명하다. 개학을 앞두고 수업이 다시 열리는지, 아니면 결정을 못했으니 기다려달라든지 아무런 전달조차 않는 학교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방과후강사들을 하나로 모으고 언론에 주목받기 위해 다시 삭발하게 됐다. 

- 첫 번째 '전국방과후강사노동자대회'를 준비하기 전, 전국 단위 피케팅을 진행했다고. 
7월 초부터 창원, 진주 지역 방과후강사들이 한 달 동안 교육청과 지원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러다 해당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전국 단위 피케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바로 반응이 왔다. 7월 27일부터 서울, 경기, 강원, 부산, 광주, 울산, 경북 충북, 세종, 거제, 통영, 옥천, 청주 등 32개 지역에서 짧게는 3일 길게는 한 달 동안 긴 장마와 더위를 이겨내며 2학기 방과후수업 재개와 생계 대책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진행했다. 이렇게 전국에서 방과후강사들의 열기가 모이면서 피케팅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하에 전국노동자대회도 계획하게 됐다. 

- 그런데 대회 이틀 전, 광화문집회 관련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확산됐다. 
맞다. 원래 오겠다는 강사들의 절반이 오지 못했고, 수도권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대회 장소인 더불어민주당사 앞 골목을 가득 채울 만큼, 250명 정도 모였다. 통영에서 고3 아들과 함께 온 강사 등 전국 곳곳에서 왔다. 어려운 시기에 여론의 뭇매를 각오하고 온 분들이다. 우리는 발열체크를 철저히 하고 마스크, 페이스실드를 쓰고 무더운 햇볕 아래 두 시간 동안 하나가 됐다. 모두에게 처음인 집회였던 만큼 사회부터 발언까지 진정성이 느껴졌고 감동적이었다. 이 강사들을 이끌고 뭔가 하면 희망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회를 지켜본 정보과 경찰들도 질서 있고 모범적인 집회였다고 평가했다. 

- 지금 방과후강사들은 어떤 상황인가? 
8.15 광화문집회 전까지만 해도 수도권 아래로는 80% 정도 방과후교실을 운영하기로 했다. 서울은 약 30%, 경기도는 10%가 안 됐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방과후수업을 아예 안 한다는 학교도 꽤 있고, 여전히 말이 없는 학교들도 있다. 이런 희망고문이 가장 힘들다. 2학기 때는 수업을 시작할 거란 생각으로 버텼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지금 이직을 알아보는 강사분들도 많은 것 같다. 

- 지금 당장 필요한 대책은? 
우선 학교는 2학기에 방과후교실을 운영할지 말지 답을 줘야 한다. 그래야 강사들도 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까. 노조 차원에서 일차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학교가 수업을 하면 방과후수업도 열어달라는 거다. 예를 들어 등교 인원이 전체 학생의 3분의 1 수준이라면 방과후교실도 비례에 운영해 달라는 요구다. 다음으론 생계대책 일자리다. 초등학교 1학년 한글지도, 돌봄교실 투입 등 7개월 이상 수입이 없는 방과후강사들을 위한 대체 일자리가 필요하다. 

- 근본적으로는? 
국가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방과후강사는 25년 넘도록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왔지만 국가 위기 상황에서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부터 방과후강사들은 10년 넘게 오르지 않는 강사료, 불안한 고용, 외부인이라 학교 내 주차도 거부당하는 현실 앞에서 노조 설립신고필증이 필요하고,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 안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외쳐왔다. 지금 우리의 어려움이 꼭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방과후강사노조가 법내노조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안전망이 강화되지 못하면 이런 상황은 반복될 거다. 

- 앞으로 계획은? 
우선 이번 주까지는 전국적으로 수업 재개 상황을 파악해봐야 할 것 같다. 그 외에는 방과후강사들의 계약서 문제를 바꿔나가려 한다. 우리가 쓰는 계약서는 강사들에게 불리한 불공정계약서가 굉장히 많다.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방과후강사 표준계약서를 만들어볼 계획이다. 앞으로 잘못된 부분들을 하나하나 바로 세워나갈 예정이다. 
 

8월 17일 전국방과후강사노동자대회 주요 발언

"방과후강사에게 고용보험을" -김진희(대구지부 지부장)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저는 코로나 이전에는 고용보험이나 4대 보험이니 이런 거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된다면 나를 어쩌지 못할 거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너무너무 열심히 수업에 임했고 여러 면에서도 인정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이들도 넘쳐났고 그래서 늘 자신이 있었고 설마 수입이 0원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한 후에 처음에는 '설마 우리를 그냥 두진 않겠지' 막연하게 뭔가를 기대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회적으로 우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허탈감은 지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나 자신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나름 고학력의 까다로운 절차로 학교에 채용되었음에도, 공공기관의 교육종사자임에도, 학교의 수많은 계약직의 한 직군임에도, 사회적으로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우리 방과후강사의 민낯을 보며 고용보험의 절실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니 가마때기라고 학교종사자 모두에게 지원대책을 수립하면서 수입 '0'원인 우리를 위한 생계대책은 1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진짜 나라에 분노를 느꼈습니다.

9월에 코로나가 창궐할 거라는 예측이 있었는데 그것이 또 맞아떨어질 것 같아 겁이 납니다. 우린 진짜 고용보험이 필요합니다. 이 국가적 재난 상황이 지금 다시 오고 있고 언제 또 올지 모르지 않습니까? 전국민고용보험! 방과후강사가 우선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방과후강사, 방과후학교의 주체가 돼야" 권지영(경남지부 진주지회 지회장)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어 6개월째 무급인 상태로, 2학기 방과후조차 불투명한 시점에, 방과후 개강을 논의하는 자리에 방과후강사가 없는 불합리한 시점에, 진주는 경남과 더불어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난 7월 13일부터 2학기 방과후수업 재개, 방과후강사의 생계보장, 방과후학교의 법제화를 목표로 3주 동안 피케팅을 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전 국민이 힘들어하는 시기에 여론의 질타를 걱정하는 선생님들의 우려 속에서 피케팅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피켓을 든 첫날부터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지지와 격려가 시작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지내고 있는지 몰랐다고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아픔에도 불구하고 아프다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자회견, 계속적인 피케팅의 결과로 도교육감님과의 면담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교육감님 면담 후 ‘앞으로 서로 협의하고 논의해서 나갑시다’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6개월에 1번 이루어지는 협의체를 만들어냈습니다. 지속적인 피케팅의 힘으로 가장 어려운 교육청 문 열기가 실현되었습니다. 그간 방과후학교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배제되었던 우리가 그 자리에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금의 진척에 방심할 수만은 없습니다. 지금은 25년 대한민국 방과후학교의 운명에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방과후 학교의 지자체 이관, 방과후 거점센터 설립, 등 방과후에 관련된 많은 방향성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에 우리 방과후강사가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관심과 단결만이 그것들을 견제하고 바꿔가는 상황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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