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사태, 피할 수 없는 ‘금융당국’의 책임
사모펀드 사태, 피할 수 없는 ‘금융당국’의 책임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09.04 00:00
  • 수정 2020.09.04 0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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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박근혜 정부, 모험자본 활성화 명목으로 규제 완화
간과할 수 없는 금융 정책·감독 체계 문제

커버스토리 ❷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 문제의 원인은?

금융? 신뢰 없이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소비자에게 사과 하나가 도착하기까지 재배 및 유통의 과정을 거친다. 유통의 과정에는 시장의 규칙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규칙은 소비자와 판매자의 원활한 거래관계를 성립시킨다. 원활한 거래관계란 시장의 지속성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소비자에게 신뢰는 적정가에 품질 좋은 사과를 받아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쌓인다. 작금의 사모펀드 사태를 비롯한 금융사고는 처음부터 썩은 사과를 판매하려고 하거나, 유통과정에서 썩어버린 사과를 그대로 방치한 채로 팔면서 지속되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보다 수익추구를 우선하다보면 사과뿐만 아니라 시장 전체가 썩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누구의 책임이냐를 떠나 금융시장이 놓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어느 날 좋은 상품이 있다고 전화가 왔어요. 계속 안 하겠다고 말했는데, 남편 직장까지 찾아가서 설득하겠다고 전화하는 거예요. 기업은행이 국책은행인데 국책은행 직원 말을 믿었죠. ‘사모님, 이거 일반 예금이랑 같은데 왜 안 하시냐. 이거 안전하다’고 수차례 얘기했거든요. (…) 잘 살고 있는 가정에 갑자기 전화해서 이렇게 어려운 펀드를 들이밀어도 되나요?

- 디스커버리 펀드피해자 발언 中

공공기관 매출채권이고, 연 이율도 2.8%라니까 예금이라 생각하고 믿었죠. 제가 NH에서 16년을 거래했어요. 3억 원 넣었는데, 부부 노후자금이고 아이들 결혼자금이고 일부는 우리 어머님의 노후자금이기도 해요. 배신감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말도 안 되는 일이죠.

- 옵티머스 펀드피해자 발언 中

7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소재 IBK투자증권 앞에서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이 계약취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7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소재 IBK투자증권 앞에서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이 계약취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 예고된 비극

바야흐로 2020년, 연이은 사모펀드 사고로 세간이 떠들썩하지만 사고는 이미 5년 전 예고돼 있었다. 비극의 시작은 2014년 9월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박근혜 정부는 모험자본인 사모펀드 투자 장벽을 낮춰 금융산업과 벤처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목적으로 사모펀드 규제 완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15년 10월 23일, 자본시장법이 전면적으로 개정됐다. 박근혜 정부의 개정안은 △적격투자자 요건 △사모펀드 운용사 진입 요건 △사모펀드 관련 보고 규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투자 규제 △증권회사의 사모펀드 투자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헤지펀드 관련 일반투자자의 최소 투자금액은 기존 5억 원에서 법률상 최저한도인 1억 원으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의 경우 기존 10억 원이었던 규제가 완화돼 3억 원으로 설정됐다. 사모펀드 운용사의 경우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최소 자기자본요건 60억 원 이상을 충족해야 했던 기준을 20억 원으로 하향하는 등 요건을 완화함은 물론이고, 3조 원 이상을 가진 대형증권사에 한해 헤지펀드사가 요구하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를 통해 자기자본을 대출할 수 있도록 했다.

규제완화로 인해 2015년 10월 23일 이후 당월만도 84개 자산운용사가 한꺼번에 등록했고, 당시 다수의 언론은 저금리 시대의 수익성과 금융산업의 발전, 기업투자 활성화에 중점을 둔 기사를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사모펀드 규제의 무리한 완화를 우려했지만, 금융당국은 사모펀드를 통해 공격적인 투자 및 운영방법 개선으로 회사의 가치를 끌어 올린 ‘오비맥주’ 효과만을 기대하는 듯 보였다. 오비맥주는 2009년 미국계 사모펀드인 KKR와 홍콩계 사모펀드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니티)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약 2조 3,000억 원에 인수한 뒤 기업가치가 6조 원 가량으로 약 2.5배 상승한 바 있으며, 오비맥주의 현 거래가격은 9조 원 안팎이다.

옵티머스 비상대책위원회가 7월 20일 오전 NH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옵티머스 비상대책위원회가 7월 20일 오전 NH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금융시장만 바라본 규제완화, 그 이후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이 운용 사모펀드의 환매 중단을 선언한 건 또다시 10월이었다.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투자자문사에서 자산운용사로 전환한 라임은 헤지펀드 전문 운용사로 급격히 성장했다. 2016년 당시 2,446억 원이었던 라임의 펀드 투자액은 2019년 7월 약 5조 원으로,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투자액 급증은 라임 펀드 환매 중단의 비극으로 작용하게 된다. 투자액이 늘어난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라임은 부실 가능성이 높은 무역금융이나 비상장 채권 등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49인 이하 투자로 제한된 사모펀드의 형식을 변칙적으로 활용한 모자(母子)형 펀드를 도입한다. 이는 사모펀드 피해자 수를 늘린 결정적 원인이다.

이한진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모자형 구조로 (사모펀드를) 운용하게 되면 자펀드 몇 백 개를 모펀드 하나가 전부 관리할 수 있게 된다. 규제를 너무 쉽게 풀어주다 보니,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펀드가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라임은 2018년 11월 무역금융펀드 중 하나인 인터내셔널 인베스트먼트그룹(IIG) 펀드의 부실을 인지했음에도 모자형 구조로 운용방식을 변경해 펀드 판매를 지속했다. 이외에도 부실이 발생한 IIG 펀드의 목표수익률을 7%로 기재하는 등 투자제안서에 총 11개 중요내용을 허위·부실 기재했고 기존 투자자의 환매 요청에 신규 투자자의 투자금을 투입하는 폰지사기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는데, 이는 사모펀드가 가진 △정보 비대칭성 △블라인드 운용 등으로 인한 허점을 악용한 사례다.

라임자산운용으로부터 촉발된 사모펀드 사태는 디스커버리펀드 사태, 옵티머스펀드 사태 등으로 이어졌다. 디스커버리펀드의 경우 기업은행을 신뢰해 투자한 고객들에게 기업은행 계열회사인 IBK투자증권의 상품임을 고지하지 않은 점이, 옵티머스펀드의 경우 NH투자증권이 고객들에게 공공기관 매출채권 투자이기 때문에 안전하다며 판매를 유도한 점이 주요 문제로 거론된다. 옵티머스펀드 피해자 A씨는 “국공채에 투자하는 것이라 안전하다고 들었다. 심지어 수익조차 연이율 2.8% 수준으로 안내받아 예금 정도로 알았다”며 “피해자 대책 모임에 모인 사람들 대다수가 노후자금을 잃었다”고 밝혔다.

연이은 사모펀드 사태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금융회사들이 투자 및 판매에 과몰입한 나머지 ‘금융소비자 보호’에 뒷전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금융당국의 모험시장 활성화라는 명목이 경쟁을 부추기면서 벌어진 결과인 셈이다. 이재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융회사의 선관주의의무에는 고지의무와 인지여부, 책임여부가 있음에도 고위험상품 판매에 매진하는 이유는 금융노동자에게 성과를 강요하는 KPI제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최소 투자금액의 하향조정은 공격적 투자성향이 아닌 소비자까지 모험자본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김호열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상상인증권지부장은 “사모펀드 시장은 전문가들의 리그다. 생계비를 제외하고 3억 원 내지 5억 원 이상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부당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변호사를 고용할 재력을 갖춘 사람이고, 일반인이 아닌 전문투자가라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재산 분포도 기준에서 1억 원 가진 사람을 고액자산가라고 말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2011년 3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금융관련 법령 위반한 론스타 펀드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 박탈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참여와혁신DB
2011년 3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금융관련 법령 위반한 론스타 펀드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 박탈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참여와혁신DB

금융당국, 근본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사모펀드 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자 금융당국은 4월 27일 ‘사모펀드 현황평가 및 제도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당시 금융당국은 △은행판매 제한 △상품 투자권유자문인력에 대한 제한 △판매 시 녹취의무 및 숙려기간 부여 △판매사 및 운용사의 고난도 금융상품 영업행위준칙 마련 등과 동시에 일반투자자의 최소 투자금액 요건을 다시 1억 원에서 3억 원 이상으로 조정했다.

이어 7월 1일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대해 100% 투자전액 반환 결정을 내린 금융감독원은 “4.27 대책으로 완화된 관련 규제를 강화함과 동시에, 3년간 (라임사태) 케이스별 전수조사를 실시해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으며, 8월 11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국민은 금융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금융회사를 믿고 거래하고 있으므로 부실상품 판매나 불완전판매로 피해가 발생하였다면 판매회사가 고객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에서 주목할 키워드는 ‘부실상품’과 ‘판매회사’, ‘불완전판매’다. 세 키워드가 판매사의 전액반환 결정을 촉구하는 동시에 부실상품을 판매한 판매사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호열 상상인증권지부장은 “경찰이 도둑을 못 잡은 건 경찰의 직접책임이 아니나, 도둑이 뻔히 돌아다니는 걸 알면서 순찰을 게을리 해 사고가 일어나는 건 경찰의 책임이다. 불완전판매로 규정하고 금융회사의 책임, 판매 직원의 책임으로 돌리면 금융감독기관이 직접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금융감독원 태도의) 이면에는 자기 책임을 축소하기 위한 입장이 함의돼 있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이어 “문제는 과거 동양증권 사태부터 시작해 점점 더 질 나쁜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 정책당국의 정책실패, 감독당국의 감독실패에 있다”고 지적했다.

7월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모펀드 관련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섰던 고동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정책 및 감독 실패의 문제가 현행 금융감독기구 체제와 투명하고 다층적인 의견수렴절차 부재 등에 있다고 짚었다.

고 교수는 “금융위원회가 정책 및 감독 업무를 수행하고, 금융감독원이 감독 및 집행 업무를 수행하는 이원적 체계다보니, 견제장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가 두 기능을 수행해 관치금융을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감독을 위해서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수평적 분리가 반드시 필요하나,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에 의하면 금융감독원은 금융위원회의 지도 및 감독을 받게 돼 있다.

고 교수는 또 “정책설계 시 다양한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로 이뤄진 위원회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여러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절차의 투명성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목표가 정해지면 일사천리로 나간다”며 “특히 금융산업 쪽에서는 행정고시라는 제도로 인해 전문성이 부족하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과거부터 이어지는 관료들의 산업 활성화 우선 인식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이한진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2004년 론스타 사태 이후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월스트리트 같은 선진금융자본처럼 금융으로 먹고 살아보자는 생각을 갖고, 금융기관에 대해 돈 잘 버는 회사로 만들기 위한 정책적 목표로 접근하기 시작했다”며 “한국의 경제적인 발전과 역사 관계에 걸맞게 제도를 수정하고 토착화하는 과정을 거쳤어야만 했다”고 밝혔다.

김호열 지부장은 “엘리트 관료, 정치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소비자와 노동자에게 혜택을 주는 등 기업에 불편을 끼치는 의사결정에 극도의 거부감을 가진 경우가 많다”며 “이제는 한국이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됐고 OECD 가입한지도 20~30년이 되어간다면, 그에 맞는 정책의 철학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