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시대의 금융, 다시 ‘공공성’이다
뉴노멀 시대의 금융, 다시 ‘공공성’이다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09.04 00:00
  • 수정 2020.09.08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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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경제의 혈맥…‘소비자 보호’ 관점 전환으로 신뢰 회복해야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개선, 거버넌스(governance) 전환 필요

커버스토리 ❹ 금융이 가야할 길, 다시 ‘공공성’으로

금융? 신뢰 없이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소비자에게 사과 하나가 도착하기까지 재배 및 유통의 과정을 거친다. 유통의 과정에는 시장의 규칙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규칙은 소비자와 판매자의 원활한 거래관계를 성립시킨다. 원활한 거래관계란 시장의 지속성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소비자에게 신뢰는 적정가에 품질 좋은 사과를 받아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쌓인다. 작금의 사모펀드 사태를 비롯한 금융사고는 처음부터 썩은 사과를 판매하려고 하거나, 유통과정에서 썩어버린 사과를 그대로 방치한 채로 팔면서 지속되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보다 수익추구를 우선하다보면 사과뿐만 아니라 시장 전체가 썩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누구의 책임이냐를 떠나 금융시장이 놓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넌 지금 미국 경제가 무너진다에 돈을 걸었어. 미국 경제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퇴직금을 잃고 직장을 잃어.”

- 영화 <빅쇼트> 中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의 대사

영화 <빅쇼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2008년 금융위기 전 주택시장 대폭락을 예측하고 이에 베팅한 괴짜들을 다룬 영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당시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을 시행하면서 주택융자 금리가 인하됐고, 늘어난 주택담보대출과 동시에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시작됐다. ‘이때다!’ 하고 기회를 엿본 금융회사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증권화했고, 수익을 저소득층 대출자로 확대하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고객의 기존 신용등급 기준을 하향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저금리 정책이 끝나면서 원리금을 갚을 여력이 없는 대출자들이 곳곳에서 발생하면서 증권 거래를 했던 금융회사도 손실을 입었고, 결과적으로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촉발한 원인이 됐다. 금융산업이 타산업과 달리 ‘공공성’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팬데믹으로 다시 찾아온 제로금리

3월 16일 미국 연준(Fed)이 팬데믹 상황으로 인한 경제 위기에 대응하고자 기준금리를 기존 1.00~1.25%에서 0.00~0.25%로 인하 결정을 내리면서, 제로금리 시대가 도래했다. 이에 우리나라 금융통화위원회는 바로 다음날인 17일부터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하향조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기준금리는 그보다 0.25%포인트 떨어진 0.5%를 유지 운용 중이다.

그러나 이게 웬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이후에도 여전한 생계걱정을 하는 중소상공인들의 사정과 달리 금융시장은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8월 13일 기준 코스피지수(종합주가지수)는 2,437.53을 기록하며 2,500선 돌파도 무리 없을 것 같았다. 코스피지수의 급등은 상장주식이 전반적으로 상승세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말은 곧 주식투자자들이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부동산시장은 또 어떨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영혼까지 끌어 모은 자금으로 ‘빚내서 집 사자’는 2030세대의 움직임이 포착됐고 집값은 오르기를 거듭했다. 사모펀드 시장에 투자자가 몰리는 이유도 동일한 맥락에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현상은 과거와 달리 저금리 기조에서 은행 이자로 수익을 내는 데 한계가 있으며, 이에 쏠쏠한 수익을 위한 재테크 수단으로서 각광받는 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모인다고 했다. 이번 사모펀드 사태의 원인으로 금융당국의 정책·감독 실패도 있지만, 금융 신뢰 1순위를 담당하는 은행들이 마진이 높은 비이자 수익에 집중하면서 불완전판매 여지가 있는 상품을 고객에게 ‘속여’ 팔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올해 초,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올해 경기반등, 성장회복을 위해 금융이 경제의 혈맥으로서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길 바란다”고 밝혔던 것과 같이, 금융은 특정 대상의 수익을 위한 도구 이전에 나라 경제를 위해 구석구석까지 돈을 돌게 할 공적 책임이 있다. 은행·증권거래·보험업법 각 제1조에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구절이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업에 있어 ‘신뢰’는 필연적이며, 여태까지 그 역할을 은행이 주도해왔다.

이한진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자유주의 이후 금융세계화가 시작되면서 금융사들이 수익추구를 위한 경쟁에 돌입했고, 이를 위해 진행된 대형화·겸업화·증권화 등이 문제를 촉발시켰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2009년 당시 MB가 ‘금융기관이 아닌 금융회사가 맞다’고 표현한 데는 공적 역할 수행의 의무가 있는 ‘기관’ 말고 수익추구를 우선하고 주주이익을 극대화하는 ‘회사’가 되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말했다.

2018년 1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관련 토론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2018년 1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관련 토론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성과주의 매몰된 금융지주, 책임은 전무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개선 필요해

한국의 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은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금융회사의 대형화를 촉진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업종(증권, 보험 등) 간 겸업화를 통해 대내외적 경쟁력을 확보해 금융산업을 활성화한다는 데 그 의미를 두고 출발했다. 그러나 금융지주회사 제도는 형식적 사용자(계열사)와 실질적 사용자(지주회사)를 나누게 되면서, 실질적 사용자(지주회사)가 계열사 경영전략에 따른 과도한 성과강요의 책임을 회피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대다수 금융권 노동조합은 금융지주회사가 사모펀드 사태의 책임을, 핵심 성과를 판별하는 KPI제도로 인해 압박에 시달린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본다. 이재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은 “펀드를 판매하기 전 금융회사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라도 사전검증을 하게 돼 있다. 펀드 판매는 회사의 정책에 따라 수행되는 것이지 노동자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며 “(회사가) KPI와 연동해 노동자들에게 묻지마 식 영업행위를 강요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타시중은행과 달리 사모펀드 판매에 연루되지 않은 KB국민은행의 경우는 어떨까. 류제강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은 “KB금융그룹이 증권계열사를 가지고 있으니 은행에서 판매하지 않은 것”이라며 “증권사에서 판매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면 판매 채널이 은행으로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판매 책임에 대해 금융지주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열 상상인증권지부장은 “(사모펀드를 판매한) PB(프라이빗 뱅커)에게도 일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나, 금융지주회사의 의사결정자들에 대한 제재가 확립되지 않은 채 PB의 도덕성을 강조해봐야 결국 PB는 꼬리자르기로 희생되고 실질적인 의사결정자는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문제 해결에 있어 순서와 단계와 전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계열사 사용자성 부여 △의사결정구조 투명성 강화 △지주회사 책임 강화 등이 거론된다. 우선 계열사에 사용자성을 부여하게 될 경우 노동조합이 직접 교섭을 이행할 수 있는 창구가 열리게 되며, 이는 나아가 지배적 구조의 견제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거수기(擧手機)화 된 이사회 결정사안에 투명성을 고려하기 위한 노동이사제 도입과 노동자가 자사 주식을 취득·보유하게 하는 우리사주제도 참여,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등을 통해 각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책임감을 높여 투명한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거버넌스(governance) 체제로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지난 7월 17일 서울 여의도 소재 IBK투자증권 앞에서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이 규탄 집회를 열었다. ⓒ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지난 7월 17일 서울 여의도 소재 IBK투자증권 앞에서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이 규탄 집회를 열었다.
ⓒ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잃어버린 금융의 ‘공공성’을 찾아서

바야흐로 2020년, 팬데믹 시대가 찾아오면서 전 세계는 경기 침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는 소비 위축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호황을 맞이하고 있는 금융경제와 달리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지출·분배 등과 관련된 실물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8월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장혜영 의원은 1분기 부동산 금융 익스포저(위험노출액) 잔액이 약 2,105조 원으로 늘어난 점을 지적하며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거나 금리가 급상승하는 등 리스크 발생 시 실물경제로 위험이 전이되는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실물경제와 금융경제는 서로 긴밀히 연관돼 있으며, 균형을 이뤘을 때 나라 경제의 장기적 지속이 가능하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경우 미국에서만 부동산 거품과 투자 손실 등으로 19조 2,000억 달러에 달하는 가계 자산이 증발했으며, 기업이 도산하면서 880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600만 명이 집을 잃었다. 경제적 위기는 코로나19처럼 취약층을 먼저 급습해 휴유증을 낳았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으나, 금융시장의 불합리한 관행은 1997년 외환위기, 2004년 론스타, 2008년 금융위기, 키코(KIKO) 사태 등을 거쳐도 DLF, 라임, 디스커버리, 옵티머스 사태 등으로 아직까지 반복되고 있다.

이재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은 “‘경쟁과 약탈의 차가운 금융’이 아닌 국민경제 수준에서 공익에서 기여하고 사회적 약자의 경제기회 장려를 위한 ‘협동과 돌봄의 따뜻한 금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라며 “성과급제 개선을 통해 소비자와의 관계를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열 상상인증권지부장도 “사회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소수 재벌, 기득권자가 아닌 약자·소수자·불특정 다수자인 국민을 위한 경제가 기본이 돼야 한다”며 의견에 맥을 같이 했다.

성과만능을 긍정하며 무한 경쟁하는 신자유주의의 한계는 이미 코로나19로 증명됐다. 제로금리의 뉴노멀 시대, 한국 경제의 건전성을 위해서라도 실물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각종 금융사고로 인해 소비자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아야 하며, 기존 금융산업 발전과 수익추구에 매몰돼 있던 관점에서 벗어나 ‘소비자 보호’를 우선으로 하는 ‘금융 공공성’에 초점을 맞춰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