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부동산을 둘러싼 희노애락
커버스토리 ❻ 네 사람 이야기 Part.2
신화는 신비롭지만 우리 모두 신전에 살 수는 없다
‘부동산 가격은 어찌 됐든 오른다. 살 수 있으면 사라, 후회하지 말고’ 대한민국 부동산 불패신화의 1장이다. 심지어 실화에 가까운 신화이다. 그 덕분에 신화는 더 신비롭고 힘이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신화에 동승해 신전으로 가지 못하는 것도 실화이다.
부동산 신화를 자세히 보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다방면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 할 맛도 떨어뜨리고 사회도 둘로 갈라놓는다. 그래서 부동산 신화의 다른 얼굴을 살펴보려 한다.
<참여와혁신>은 내 집 마련에 관련한 개인의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설문조사에 응한 205명의 노동자 중 네 사람을 선정해 심층면담을 진행했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사람(50대)과 도전하는 사람(30대), 그리고 포기한 사람(30대, 50대)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사회에서 집과 부동산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다층적으로 드러낸다.
Part.2 이유 있는 도전과 포기, 청년들의 이야기
셋. 정지희 씨 이야기
살기 위해 사야 하는 실수요자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정지희 씨(30세·가명)에게 ‘내 집 마련’은 퀘스트(온라인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이다. 어느 순간, 어느 나이대가 되면 해야 할 것처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5년 후에는 ‘내 집’을 마련해 살고 있지 않을까하고 퀘스트를 깬 본인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지희 씨는 현재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주민이다. 1.5룸 형태의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 전세 가격은 1억 8,000만 원이다. 만만치 않은 액수지만 지희 씨는 직장에 따라 거주지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첫 직장은 강남에 있었다. 지희 씨는 독립하지 않고 본가인 안산에서 1년 반 동안 출퇴근을 했다. 출퇴근 시간이 도합 5시간이나 걸렸다.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도 몸이 고달팠다. 그렇게 첫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강남 소재 회사까지 대중교통으로 20분 걸리는 서울대입구역 근처 전세 9,000만 원, 5평 정도의 원룸에서 1년 반을 살고 나왔다.
충정로 근처의 회사로 옮기면서 거주지도 지금의 후암동으로 옮겼지만, 9,000천만 원의 5평 원룸은 너무 좁아 누워있으면 관 같아서 답답했고 탈출하고 싶은 마음도 이사에 영향을 미쳤다. 후암동에서 충정로 회사까지 역시 대중교통으로 20분 정도 걸린다.
다만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회사와 주거지가 너무 가까우면 퇴근해도 퇴근한 것 같지 않고 회사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일터와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인 주거지와의 분리가 필요했다. 지희 씨의 주거 이동사의 중심 고리는 ‘일터와의 거리’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지희 씨에게 집의 의미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환경’이었다.
대출로 집 사는 것과
전세살이의 차이점
지희 씨에게 ‘안정적이고 편안한 환경’을 사야 하는 이유는 주거비가 고정적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매번 계약이 만료될 때마다 이사를 가야 하는 불확실성도 또 다른 이유였다. ‘1억 8,000만 원 = 부모님 1억 원 + 본인 1,000만 원 + 전세대출 7,000만 원’이다. 대출 이자는 10만 원가량, 관리비 6만 원, 기타 가스·전기 이용료 등. 지희 씨는 20만 원 남짓을 주거를 위해 쓴다. 월급은 260만 원 정도로 주거비 부담은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이라면 결과적으로 집이라는 실물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지만, 전세자금 대출과 기타 비용은 순전히 회수되지 않는 지출이다. 또한 부모님이 해주신 1억 원도 돌려드려야 할 돈이다. 지희 씨에게 주거비가 고정적으로 나가 부담이 가중된다는 뜻은 내 집이 없을 때 부담해야 할 지출들의 총합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도 같은 이유로 ‘대출로 집 사도 나중에 내 것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희 씨는 향후 집값이 비싸지면 내 집 마련의 의지가 조금은 꺾이긴 하겠지만 안 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입장이다. 지희 씨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서울이 아닌 조금 외곽으로 나가더라도 집은 가지고 싶다.
집을 쇼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 쇼핑백은 텅 비었고
지희 씨가 계약한 전셋집의 주인이 바뀌었다. 지희 씨가 입주 당시 계약했던 주인이 집을 팔았다. 두 번째 주인은 지방에 사는 사람이다. 서울로 올라오지 않고 계약을 했다. 지희 씨는 “집 앞에 미군기지가 있는데 공원으로 바뀐다고 하면서 집값이 들썩들썩해지고, 아마 첫 주인은 다주택자라 세금 부담으로 집을 처분하고 두 번째 주인은 투기 목적의 갭투자를 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어제와 오늘을 봤을 때 괜한 추측은 아니다. 지희 씨는 본인 전셋집을 두고 주인이 바뀐 일에 대해 쇼핑한다고 표현했다. 사는 곳이 아닌 살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쇼핑이다. 누군가의 쇼핑으로 지희 씨는 당장 내년 초 이사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지희 씨는 “이번 정책이 집값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믿어보겠다”고 했다. 다주택자들의 투기수요를 잡는다든지, 살지 않고 사려는 사람들을 막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좋은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지희 씨가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하는 부동산 시장을 어지럽히는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이번 정책이 잘 구현된다면 사라질 것이라 희망했다.
넷. 김다운 씨 이야기
가장 저렴한 고시원 찾은 청년
분당에 사는 김다운(33세·가명) 씨는 회사 근처 고시원에서 6년 째 거주중이다. 매달 내는 고시원비는 28만 원. 입주 이후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방 한가운데 큰 기둥이 박혀있는 탓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계약을 맺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형과 월셋집에서 자취를 했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은 처음이었다.
집을 구하던 당시 모아놓은 돈이 없어서 보증금,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당시 주변 월세가 보통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원이었다. 과금까지 더하면 40만 원이 넘어갔다. 28만 원에 가스요금, 공과금이 없어 “압도적으로 싼” 고시원에서 살기로 했다.
현재 다운 씨의 월급 실수령액은 210만 원 정도다. 주거비로 15% 정도가 나가는 셈이다.
가성비로 따지면 만족스럽지만, 지금 주거에 만족하지는 않는다.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아서다. 방음이 잘 안 돼서 밤이면 귀마개를 끼고 잔다. 창문이 없어 환기가 잘 안 된다. 화장실, 샤워실, 주방은 공용으로 사용한다. 무엇보다 다운 씨가 아쉬워하는 건 방의 크기다. 6년 동안 짐이 많이 늘었다. 안 그래도 좁은 방은 더 좁아졌다. 운동을 좋아해서 기구를 놓고 싶지만, 여유 공간이 없다. 방을 꾸미고 싶어도 여의치 않다. 다이소에서 구매한 박스에 물건을 차곡차곡 정리한 수준이다. 사실상 잠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정책의 사각지대,
내 집 마련을 포기하다
다운 씨는 일치감치 내 집 마련 계획을 포기했다. 이사할 곳을 알아보다 내린 결심이다. 월세, 공공주택을 알아봤다. 월세는 비쌌고, 공공주택은 근방에서 찾기 어려웠다. 회사에서 먼 오산 평택에 임대물량이 있었지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면 왕복 3시간 걸렸다. 월세로 이전조차 어려운 마당에, 전세를 거쳐 자금을 모아 내 집을 마련까지 갈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현실적으로, 사회초년생이 월급으로 학자금대출 다 갚고 와중에 돈 모아서 집까지 마련한다? 정년은 돼야 가능할 거예요. 저는 월급 210만 원에서 60~70만 원 정도를 저축해요. 1년이면 720만 원을 모아요. 전세자금대출 받아서 1억 원짜리 집에 가려고해도 5년을 모아야 해요. 내 집 마련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거죠.”
더 나은 주거지를 찾다 포기한 다운 씨는 정부 정책에 괴리감을 갖고 있다. 정책의 사각지대를 경험한 탓이다. 입사 6년차 30대 미혼남성은 전세자금 대출, 월세 지원 등을 받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경우 정책 수혜자는 자영업자, 신혼부부, 갓 입사한 청년 등이었다.
“취약 계층은 당연히 도와야 하지만, 성실히 일하며 혼자 사는 젊은이들에게도 나라가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어요. 갭 투자, 주식 등 안 하고 일만해도 최소한 의식주는 보장돼야하는 데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2030이 부동산 투기를 한다면 욕하지 말고 정책을 마련해야죠.”
1인 가구의 필요 조건,
충분한 휴식·취미 즐길 공간
정부가 어디까지 주택 정책을 그리고 있을까? 1인 가구인 다운 씨가 갖는 의문이다. 언론에서는 ‘1인 가구 증가’ ‘30년 뒤 1인 가구 비율 60~70%’ 등의 기사가 보도된다. 신혼부부와 3~4인 가구에 집중된 정책이 현실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게 다운 씨 생각이다.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운 씨는 “화장실과 주방만 갖춰진 적당한 크기의 원룸이면 만족할 수 있다”며 1인 가구가 살 수 있는 작은 평수의 집을 정부가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운 씨는 수요가 많은 지역에 공공주택이 공급되길 바란다. 수도권 외곽에는 공공임대주택이 많지만 들어갈 마음이 없다. 직장과 너무 멀고, 교통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직업이 없거나 그 지역 자영업자라면 모를까, 도심 외곽에서 출퇴근하길 원하는 노동자는 없을 거라 여긴다.
“제가 가장 바라는 건 이런 거예요. 차라리 도심에 있는 주택을 일정 수량 매매해서 저렴한 가격에 임대를 주는 게 방법일 거 같아요. 또 나라가 보증을 서서 한꺼번에 전세금을 주면 좋겠어요. 목돈을 구하기 어려우니까요. 중소기업은 수입이 낮아서 대출도 안 돼요.”
대부분의 청년들이 정지희 씨와 김다운 씨처럼 첫 직장을 가지면서 독립을 한다. 첫 직장이기 때문에 모아 놓은 돈이 없을 확률은 매우 높다. 어떤 부모님이든 지원을 해주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경제력의 차이가 있고, 부모님에게 손 안 벌리겠다는 자식들이 있기에 청년들의 주거의 질은 달라진다. 그 결과가 개인의 온전한 책임은 아니다. 집값이 너무 비싸고 개인이 주거를 부담해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러한 개인들의 선택이 존재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