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열탕에 익어버린 삶과 노동
부동산 열탕에 익어버린 삶과 노동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10.10 00:00
  • 수정 2020.10.10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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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때문에 일할 맛 안 난다
임금 상승보다 집값 상승에 더 행복한 사회

커버스토리 ❹ 집값 폭등,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다

신화는 신비롭지만 우리 모두 신전에 살 수는 없다

‘부동산 가격은 어찌 됐든 오른다. 살 수 있으면 사라, 후회하지 말고’ 대한민국 부동산 불패신화의 1장이다. 심지어 실화에 가까운 신화이다. 그 덕분에 신화는 더 신비롭고 힘이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신화에 동승해 신전으로 가지 못하는 것도 실화이다.
부동산 신화를 자세히 보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다방면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 할 맛도 떨어뜨리고 사회도 둘로 갈라놓는다. 그래서 부동산 신화의 다른 얼굴을 살펴보려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가까운 사람이 잘되는 것을 축하해주지 않고 질투한다는 뜻이다. 속담은 누구나 들으면 직관적으로 공감한다. 왜 하필이면 다른 것도 아니고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에 공감이 갔을까. 속담이 만들어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사례를 많은 사람들이 느낀다. 그래서 집값이 폭등할 때 누군가는 일할 맛이 떨어진다. 게다가 높은 집값에 쾌적하지 못한 집을 구해 일할 맛도 떨어진다. 부동산과 노동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말이다.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노동의 위기는 부동산과 뭔 상관인데?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으면 노동은 위기를 맞는다. 어마어마한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사회는 개별 노동자의 노동 의욕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또한 자산이 불평등을 공고하게 만들어서 계층 이동의 장벽이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노동의 의미마저 퇴색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 생존하고 사회를 유지하고 자아를 찾기도 하는데, 노동의 의미가 퇴색한다면 생존도 사회 유지도 자아를 찾는 것도 노동을 통하지 않는 사회문화가 형성된다.

반대로 불로소득으로 생존하기에는 경우의 수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다. 불로소득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것, 자아를 찾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색하게 들린다. 그렇게 노동이 우리 사회에서 설 자리는 좁아진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노동자는 단적으로 “회사 사람들이 직장생활을 하는 데 어떤 일을 성실히 하고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을 통해서 그냥 땅 굴려서 돈을 벌 생각을 한다”며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지 못하고, 당사자의 업무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전했다. 취재를 위해 만났던 전문가들도 서로 다른 의견을 가졌지만 “과도한 불로소득(집값 급등으로 가능한)으로 노동의 가치가 절하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부동산 가격 폭등,
노동과 삶의 가치를 절하하는 방식들

기본적으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집값 폭등은 그것의 수혜자이든 수혜를 목격한 사람이든 모두에게 노동의 가치를 절하하게 한다. 한편 집값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도 노동의 가치와 삶의 가치를 절하하기도 한다.

① 멀면 힘들고 가까우면 답답하고

집값은 노동자의 몸과 마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도심지에 자리한 일터(사람들 많이 오고가는 도심에는 다양한 직종의 일자리가 많다.) 근처에 집을 구하기 힘들다. 집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까운 거리를 택한다면 주거 환경은 상당히 안 좋아진다. 집값이 비싸니 좁은 집, 허름한 집, 반지하와 옥탑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반면 괜찮은 주거 환경을 선택하려면 도심 외곽지로 나가야 한다. 도심보다 확실히 싸지만 교통이 문제다. 긴 시간을 길 위에 써야 한다. 대중교통을 타도 자가용을 타도 마찬가지다. 주거 형태가 월세라면 오히려 도심에 집을 구하는 것과 지출 비용이 비슷할 수 있다. 교통비와 유류비를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게 집값이 비싸니 일터에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도, 먼 곳에 집을 구해도 몸이 편치 않다.

이러한 현상을 <참여와혁신>이 진행한 특집 설문조사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만족하는 이유로 ‘출퇴근이 편리함’, ‘깔끔하고 조용한 주변 환경’ 등이 각각 51.9%(복수 응답 가능)로 가장 많은 응답을 받았다. 반대로 불만족하는 이유는 ‘좋지 않은 주택 상태’(45.6%), ‘생활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주택 크기’(42.1%) 등이었다.

몸이 편치 않으면 마음도 상한다. 좁고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은 곳에서는 답답함을 느낀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 탄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좋지 않다. 노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즐겁지 않고, 새로운 노동을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도 즐겁지 않다. 일터에서 일어나는 문제 때문에 노동이 즐겁지 않을 수도 있지만 노동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일어나는 문제 때문에 노동 의욕이 떨어질 수도 있다.

② 상대적 박탈감과 소득불평등

우리 사회는 임금이 오르는 것보다 집값이 오르는 게 더 행복한 사회이다. 익명을 요구한 취재원은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평생 내가 벌어봤자 모을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는 반면에 주택은 시류만 잘 타면 몇 년 동안 내가 평생 모을 돈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다”며 집값이 오르는 게 더 행복한 이유를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다수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2020년 펴낸 <한국사회 격차문제와 포용성장 전략>에서 정리한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소득불평등에 대한 원천별 기여도를 보면 자산소득이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확연하게 볼 수 있었다. 자산소득의 불평등 기여도는 80% 정도로 소득불평등을 유발하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자산소득 중에서도 부동산 자산소득의 불평등 기여도가 컸다. 자산 종류별로 따졌을 때 순자산 5분위의 실물자산 규모는 순자산 1분위 규모의 77.2배였다. 쉽게 말해 부동산으로 인한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되레 노동소득의 기여도는 –35.5%로 소득불평등을 감소시키는 요인이다. 열심히 일해서 메워놓은 격차가 부동산 유무로 상당히 벌어진다. 임금이 오르는 것보다 집값이 오르는 게 더 행복한 사회이지만, 몇몇에게만 행복이 해당된다.

그럼에도 부동산 열광 알고리즘은 계속 돌아간다. 상대적 박탈감이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기 때문이다. 선대인 선대인경제문제연구소 소장은 “예를 들어 5억 원에 집을 샀는데 집값이 뛰어서 3억 원 벌었다고 하면 옆 사람은 ‘아니, 저 사람이 능력이 뛰어난 것도 노력을 더한 것도 아닌데, 나는 열심히 1년 일해서 5,000만 원을 벌었고 어떤 사람은 1년 만에 3억 원을 벌었네’라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마음이 든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불로소득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어서 부동산 시장으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효과는 크다. 취재원들이 공통적으로 “머리로는 부동산이란 불로소득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현실에서 나에게 생기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집은 인간이 살아야 하기에 어떻게든 필요한 필수재인 동시에 큰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므로 재테크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노동에 대한 의욕을 잃고 자산시장을 바라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시장을 바라보고 뛰어들면서 다시 부동산 시장은 투기시장화의 악순환을 만든다. 다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의 땅덩어리는 줄어든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부동산 때문에 계층이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라며 반문했다. 남기업 소장은 “아주 소수는 계층 이동을 위해 아주 열심히 연구해서 빌라 사고 팔고 또 큰 주택을 사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지만, 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부동산으로 얻는 수익은 사회 전체적으로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은 아니기 때문에 제로섬 게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누구나 계층이동을 하려면 주거의 안정성을 기본적으로 누리고 열심히 경제활동을 해 더 많은 소득을 낳아 자기 소득으로 질 좋은 주택으로 이사를 가면 되는 것이고, 시세 차익을 남겨서 계층 상승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못 올라오게 만드는 사다리”라고 지적했다. 물론 열심히 경제활동을 해서 더 많은 소득을 낳기에는 부동산 시장의 유혹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임금이 오르는 게 더 행복했다면 부동산 버블은 유지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③ 아파트 주변만 맴도는 사회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이 높다. 국토교통부에서 올해 발표한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PIR(Price Income Ratio,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수)가 전국은 5.4배였고, 서울의 경우 11.6배였다.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주택 마련에 쓸 경우 대한민국 전체 평균 5.4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서울의 경우 11.6년 동안 월급을 쓰지 않고 몽땅 내 집 마련에 쏟으면 된다. 월급 한 푼 모두 집을 마련하는 데 쓸 수는 없기 때문에 내 집 마련에 사실상 꽤나 많은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생애에 내 집은 없을 수도 있다. 소득 분위가 낮아질수록 실질적인 체감 정도는 더 무겁다. <참여와혁신>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내가 일하는 이유에 중에서 내 집 마련은 몇 순위인가’라는 질문에 1~3순위(7순위까지 선택 가능) 분포 비율이 68%였다. 내 집 마련에 집중하는 사회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본인의 삶과 노동, 타인의 삶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활동을 하는 공동체로 나아갈 동력이 약해진다. <참여와혁신>이 진행한 설문 응답자 205명 중 심층 인터뷰를 했던 4명(내 집 소유자 /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자 /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자) 중 내가 일하는 이유에서 내 집 마련이 1~3순위 안에 들었던 3명에게 ‘내가 일하는 이유 중에서 내 집 마련이 후순위가 됐을 때, 1~3순위를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1~3순위 각 항목별로 다양하게 답해줄 것을 예상했지만 의외의 답변들을 들었다. ‘자녀’와 ‘일을 통한 자아실현 및 보람’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자녀라고 응답한 취재원 2명은 대한민국에서 ‘미래 세대의 주거 문제 및 삶’이 여전히 걱정이었던 것이다. 내 집 마련을 꿈꾸고 있던 취재원 1명은 ‘내 집 마련’이 2순위 응답이었고 1순위 응답이 원래부터 ‘일을 통한 자아실현 및 보람’이었다. ‘내 집 마련’의 고민이 사라지자 오히려 무엇을 내가 일하는 이유로 삼아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심층 취재를 통해 고민해볼 거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주거 문제가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내 집 마련’에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인 탓에 일의 다른 의미를 되새겨 볼 경우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종합해보면 ‘아파트 주변만 맴도는 사회’는 대한민국의 현재이자 미래일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가격 폭등, 집값이 하늘까지 솟아버린 결과 노동과 삶의 가치는 미끄럼틀 위에 놓였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 혹은 정상화할 필요성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다만 부동산 시장을 열탕으로 만들어버린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국 시민들이 그 길로 들어서게 한 구조적 이유가 존재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 구조와 부동산 정책을 살펴보고 부동산 가격이 널뛰기한 까닭을 찾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