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영혼들을 달래는 집, 그리고 부동산
불안한 영혼들을 달래는 집, 그리고 부동산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10.10 08:59
  • 수정 2020.10.10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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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집은 가족,안정,따스함 등 ‘안식처’
‘부동산’은? 투기,재테크 등 ‘돈 벌이 수단’으로 인식

커버스토리 ➊ 프롤로그

신화는 신비롭지만 우리 모두 신전에 살 수는 없다

‘부동산 가격은 어찌 됐든 오른다. 살 수 있으면 사라, 후회하지 말고’ 대한민국 부동산 불패신화의 1장이다. 심지어 실화에 가까운 신화이다. 그 덕분에 신화는 더 신비롭고 힘이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신화에 동승해 신전으로 가지 못하는 것도 실화이다.
부동산 신화를 자세히 보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다방면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 할 맛도 떨어뜨리고 사회도 둘로 갈라놓는다. 그래서 부동산 신화의 다른 얼굴을 살펴보려 한다.

 

“이 땅 때문에 빚을 지게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만 같다. 부모님의 기분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부모님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민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버블패밀리> (2017)의 한 대목

마민지 감독은 다큐멘터리 <버블패밀리>에서 소싯적 중소주택건설업자였던 부모님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해하려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에서 ‘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추적한다. 한국인들은 ‘땅’을 소유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달랬다.

하지만 누구나 ‘땅’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땅’을 가질 수 있는 사람만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땅’에 미치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땅’이 뭇사람들의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끝을 모르고 치솟는 땅값에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부동산 불패신화’의 페이지를 차곡차곡 채워왔다. 여기에는 ‘노동자’도 예외일 수 없었다. 노동자들은 오르내리는 부동산 가격을 보며 울고 웃었다.

집,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공간’

마민지 감독이 말하는 ‘땅’은 부동산을 뜻한다. 부동산은 보통 자산의 여러 종류 중 건설자산과 토지자산을 이른다. 건설자산에는 아파트, 단독주택 등 주거용 건물과 사무실, 공장 등 비주거용 건물, 저수지, 도로 등 토목건설물이 있다. 토지자산에는 주거용 건물 및 비주거용 건물의 부속 토지와 농경지, 임야 등이 있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여러 부동산 종류 중 주거용 건물과 부속 토지, 즉 집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한다.

집은 일차적으로 인간 생활의 3요소인 의식주의 하나로 기본권적 성질을 가진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드러내듯, 사람들은 집에서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참여와혁신>이 노동자 2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것을 자유롭게 적어달라’는 질문에 대다수 노동자들은 집에서 ‘휴식’, ‘안정’, ‘가족’, ‘생활’ 등을 연상했다.

물론 연령대별로 중점을 두는 지점이 ‘안정감’, ‘공동체’(40~50대) 혹은 ‘자유’, ‘내 공간’(20~30대) 등으로 약간 차이를 보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집을 편안한 공간으로 여기고 있었다. 구체적인 응답으로 “편안함, 나만의 공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언론노조, 20대), “돌아와 쉴 곳”(노동평등노조, 40대), “소리 내어 홀로 있을 공간”(공공운수노조, 30대), “가족의 안정적인 보금자리”(희망연대노조, 30대) 등이 있었다.

부동산, ‘넘사벽’, ‘로또’, ‘좌절’

다른 한편으로 집은 경제 영역에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7월 21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국민대차대조표(잠정)’에 따르면, 주거용 건물과 부속 토지를 합한 주택의 2019년 평가금액은 전년 대비 7.4%(347조 원) 증가한 5,056조 8,000억 원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물가상승률이 0.4%인 것을 감안하면, 주택 자산에 수많은 돈과 사람이 몰리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집의 경제적인 면모를 표현하는 말은 ‘부동산’이다. 노동자들은 ‘집’이라는 말과는 사뭇 다른 의미로 부동산을 인식하고 있었다. 설문조사에서 노동자들은 ‘부동산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것을 자유롭게 적어달라’는 질문에 ‘투기’, ‘재테크’, ‘부의 척도’ 등으로 대답했다.

한편, 응답 중에서 ‘넘사벽’, ‘로또’, ‘좌절’ 같은 말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구체적인 응답으로는 “비싸다.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식품노련, 30대), “포기해야 마음이 편하다. 미니멀하게 살면서 여건에 맞게 옮겨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위안 삼는다”(공공운수노조, 50대) 등이 있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질책하는 응답도 있었다. “돈 놀이 하는 곳. 노력에 비해 많은 돈을 벌어 가는 사람들만의 것”(언론노조, 20대), “가진 자의 횡포가 매우 심각함에도 어쩔 수 없이 보호하고 있는 정부”(서비스연맹, 40대) 같은 응답이다.

내 집 마련, 도전! 성공? 포기?

우리에게 집은 원형적인 의미에서 시골 초가집과 같은 정겨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반면, 경제적인 의미에서 집은 투기의 수단이다. ‘안락함’과 ‘투기’. 두 단어의 간극은 ‘내 집 마련’에서 좁혀진다.

노동자들은 안락한 집을 꿈꾸며 내 집 마련에 도전한다. 설문조사에서 노동자들은 ‘내가 일하는 이유 중에서 내 집 마련은 몇 순위인가’라는 질문에 평균 2.92순위라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 내 집 마련을 1~3순위로 응답한 비율은 68%(139명)로 많은 노동자들이 내 집 마련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나의 꿈”(라이더유니온, 40대), “내 평생에 가질 수 있을지 모를 꿈같은 것”(언론노조, 30대)으로 남았다. 다른 한편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사람들은 보유한 집을 기반으로 재산을 더 불리기도 한다. 이들에게 집은 “땅값. 부의 척도”(소속노조 없음, 40대)이며, “든든함(화학노련, 40대)”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내 집 마련에 도전한다. 노동자들은 내 집 마련을 포기해서 단념하거나, 성공해서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 배경에는 굳건한 부동산 불패신화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자들은 부동산 불패신화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내 집 마련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흐름 자체가 부동산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부동산이 가장 현실적인 해법?
부동산이 해법 돼서는 안 돼

“경제 흐름 속에서 게임의 룰을 잡고 있었던 것은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었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나의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부모님이 선택한 부동산이라는 해법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는 지는 게임을 하도록 정해져있다.”

마민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버블패밀리>(2017)의 한 대목.

그렇다고 내 집 마련에 대한 욕구를 마냥 비난할 수 없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내 집 마련에 도전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개인의 합리적 행동이 사회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단적으로 집을 구입할 수 없는 처지의 많은 사람들의 삶은 계속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현재의 부동산 시장은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도’, 즉 열심히 ‘일’해도 게임에서 지는 사람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동산 문제를 꽤나 심각한 위기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