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폭등 대책 가로막은 투기수요
집값 폭등 대책 가로막은 투기수요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10.11 00:00
  • 수정 2020.10.10 2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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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수요 억제 위해 보유세 강화해야
“주거 안정 위해 불로소득 최소화 필요”

커버스토리 ❼ 부동산 문제, 어떻게 해결 하나?

신화는 신비롭지만 우리 모두 신전에 살 수는 없다

‘부동산 가격은 어찌 됐든 오른다. 살 수 있으면 사라, 후회하지 말고’ 대한민국 부동산 불패신화의 1장이다. 심지어 실화에 가까운 신화이다. 그 덕분에 신화는 더 신비롭고 힘이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신화에 동승해 신전으로 가지 못하는 것도 실화이다.
부동산 신화를 자세히 보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다방면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 할 맛도 떨어뜨리고 사회도 둘로 갈라놓는다. 그래서 부동산 신화의 다른 얼굴을 살펴보려 한다.

'개발과 경제성장'을 목표로 내세운 박정희 정부는 부동산 정책도 이에 맞춰 설계했다. 토지 개발 정책들을 대거 추진하자 1963~1977년 동안 지가가 서울시는 87배, 강남은 176배 상승했다(≪부동산공화국 경제사≫(2019) 전강수 지음. 여문책). 폭등하는 땅값이 만든 불로소득을 지켜보며 시민은 부동산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주택·땅 값은 반드시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40여 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투기적 가수요자들이 사고팔기를 반복하며 주택 가격에는 거품이 끼었다. 지나치게 높은 집값 탓에 무주택 실수요자는 주거 안정을 누리기 어려워졌다.

문재인 정부는 주거 안정을 부동산 정책 기조로 잡았다. ‘서민 주거안정 및 실수요자를 보호’를 내세워 투기수요 규제 정책을 펼쳤지만, 집값은 오히려 정권 내내 폭등하고 있다. 2030 세대의 ‘영끌’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지금 사지 않으면 수도권에 집을 사지 못할 거라는 ‘절박함’과 장시간 부동산 불패신화를 경험한 집단이 불로소득을 이루려는 ‘한탕주의’가 공존한다. 어느 쪽이든, 정부가 주택 가격 상승을 막지 못할 거라는 심리에서 비롯한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선분양제, 부동산 가격 폭등의 굴레

집값을 잡으려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역대 정부가 시행한 규제 완화가 집값 폭등을 야기한 탓이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규제가 후분양제와 분양가상한제 강화다.

선분양제가 가격 폭등의 요인으로 작용하며 후분양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건설사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고, 집을 ‘살 곳’이 아니라 투자대상으로 인식시키는 제도”라며 후분양제 도입으로 시장 원리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했다. “후분양제야말로 시장 원리다. 소비자들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면 1,000원짜리도 하나하나 써보고 따져본다. 당연히 주택도 따져볼 것이다. 브랜드 가치가 아니라 건물을 보고 하니까 중소건설사에 오히려 기회가 될 거다.”

그러나 건설사의 부족한 자본력을 이유로 후분양제를 시기상조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주택 관련 공공기관 관계자는 “후분양제로 가기 위한 토대는 건설사가 자본력이다. 현재 건설사들은 중간중간 받는 돈이 없으면 아파트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그런 상황에서 후분양제를 열 채 지을 거를 다섯 채밖에 못 짓는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선분양제를 유지해야 한다면, 분양가상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선대인 선대인경제문제연구소 소장은 “선분양제가 존재한다면 건설업체들의 폭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분양가 상한제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 후반에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한 이후 집값은 상대적으로 안정세였다. 그 경험만 보더라도 분양가상한제는 잘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 분양가상한제를 없애고 나서 재건축 가격이 상한 없이 올라가고, 건설업체들이 분양가를 올리고, 그 분양가 기준으로 주변 집값이 정해지고, 주변 집값 올랐다는 이유로 다시 분양가를 올린다. 건설업체는 다시 폭리를 취하고, 재건축조합원들은 또 투자, 투기차익을 노리는 구조를 만든다.

정부는 7월 29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본격 시행했다. 일각에선 분양가상한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가격 책정의 기준인 공사원가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대인 소장은 “분양할 때 어느 정도의 원가가 들어가서 이 집을 공급하게 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적어도 공공에서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민간도 최대한 원가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투기수요 제거해야 시장원리 작동한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또 다른 부동산 가격 안정화 방안은 주택 공급확대다.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 물량을 공급하고, 여의치 않으면 다른 지역을 개발해서 수요를 분산시키라고 주문한다.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뤄야 가격이 안정된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문제는 투기수요다. 주택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보는 인식은 내버려둔 채 공급을 하면 투기 대상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서울 용산 정비창에 들어설 예정인 3,000가구는 ‘서울 최중심지 투자 가능 지역’, ‘알짜물량’으로 불리고 있다.

한국 주택 시장에 투기수요가 심각한지 여부는 ‘가구소득 대비 매매가격 비율(PIR)’로 가늠할 수 있다. PIR은 주택 시장 거품 여부를 판별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을 경우 주택을 구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다. 가령 PIR이 5라면 5년 치 소득을 모두 모아야 주택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유엔은 PIR의 적정 수준을 3~5배 정도로 본다. 통상적으로 10배가 넘으면 거품이 끼었다고 판단한다. KB부동산 리브온이 8월 30일 발표한 서울 아파트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 지수가 11.4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투기수요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수요분산 대책도 마찬가지다. 여당과 정부는 7월 말에 차례로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뜻을 내비쳤다. 당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 부처가 모두 이전해야 수도권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택 시장 안정화를 위해 발표한 분권과 국토균형발전 계획이지만, 시장은 의도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세종시 7월 넷째 주 매매가격 상승률은 2.95%로 전주 대비 1.98% 포인트 상승했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이었다. 상승 폭이 줄어들고 있어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으나, 주택 가격 상승 여건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투기 심리가 만연한 걸 보여주는 사례다. 포털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검색하면 ‘세종 집값’ ‘세종 아파트’가 연관 검색어로 뜨고 있다.

김성달 국장은 “인프라가 좋은 입지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막을 수 없지만,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정부가 해야 한다. 그런 정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던지니 서울 집값이 빠지는 게 아니라 서울은 서울대로, 세종은 세종대로 오르게 된다. 투기 억제 정책에 구멍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시장 개편, 정공법은 보유세

주거 안정 정책은 곧 주택 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투기수요는 억제하고, 폭등한 주택 가격을 낮추는 게 핵심이다.

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는 정공법으로는 보유세가 손꼽힌다. 보유세로 일부에게 집중됐던 토지와 주택이 풀리면 공급량이 늘어나 매매 가격이 안정세로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구입할 여지가 커진다.

남기업 소장은 주택과 토지를 소유하는 자체만으로도 부담을 느끼도록 실효세율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대소득 자체가 불로소득의 성격이 크다. 그 일부를 환수하는 게 보유세”라며 “불로소득을 막으려면 매매차익이나 평균 수익률을 훌쩍 뛰어넘는 임대소득을 환수할 수 있도록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대인 소장은 문재인 정부의 핀셋 규제를 근거로 보유세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말이 좋아 핀셋이지 ‘찔끔 규제’다. 규제해서 풍선효과가 생기는 게 아니라 핀셋규제를 해서 생기는 것”이라며 “모든 부동산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보유세 강화가 부동산 정책 바탕에 깔려야 투기를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등 주택 가격 상승 요충지를 정해서 지역 주택 가격을 잡고자 했다. 집값은 내려가지 않았고, 비(非)규제 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하며 집값이 상승했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도 “투기를 막기 위해선 상시적인 운용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게 보유세 강화”라며 “투기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만드는 게 바람직한 정부 역할”이라고 했다.

투기 막을 근본 장치는
‘찔끔 규제’ 아닌 보유세 강화

핀셋 규제가 부작용만 일으키자 정부는 다주택자의 부담을 강화하는 7.10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3주택 이상 및 조정대상지역 2주택’ 소유 개인·법인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는 개인의 경우 최대 6%의 세율을, 다주택 보유 법인에는 일괄적으로 6%를 적용했다. 중저가 주택의 경우, 서민 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재산세율을 인하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7.10대책이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선대인 소장은 “종부세를 최대 6%까지 적용한 걸 중과세로 보지만 그렇지 않다. 부동산 가격은 가만히 있어도 몇억씩 오르는데, 몇천만 원 세금 더 낸다고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바뀐 게 없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투기 시장 형성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었다. 남기업 소장은 “중저가 주택은 세율을 낮춰주겠다고 한다. 서민 부담 경감이라지만 중저가 주택에서 투기가 일어날 수 있다. ‘아 재산세 내려준다네? 그쪽에 가격 들썩이겠네?’ 하면서 선수들은 금방 안다. 재산세 대상 주택 조사해서 알려준다. 빌라 등이 뜨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보유세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시지가 현실화가 동반돼야 한다. 보유세를 측정하는 기준이 공시지가이기 때문이다. 보유세율을 늘려도 공시지가가 낮게 측정되면 효과가 줄어든다. 선대인 소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공시지가 현실화, 공시지가 높인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집값 급등 수준 이상으로 공시지가, 공시주택가격을 올린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주택금융 전문기관 관계자는 “거래가 활발한 아파트 공시지가는 일반적으로 시가의 70% 정도로 본다. 반면, 거래가 잘 안 되는 대형주택, 고급주택은 50%도 안 된다. 실질 가격에 비해서 세금이 과소 축소되고 오히려 부자들보다 중산층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과 받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미국의 경우 공시지가가 시가에 거의 근접해 있고 어떨 때는 시가보다 높은 때도 있다. 시가에 근접한 재산세를 매길 수 있다. 비싼 주택일수록 공시지가가 낮고, 재산세도 낮은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가에 가까운 공시지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