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곳’과 ‘살 것’의 균형을 맞추자
‘살 곳’과 ‘살 것’의 균형을 맞추자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10.11 00:00
  • 수정 2020.10.11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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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것’에 기울어진 균형추, 집의 의미 흐려져
부동산만이 답인 사회에 다른 길도 고민해야

커버스토리 ❽ 에필로그

신화는 신비롭지만 우리 모두 신전에 살 수는 없다

‘부동산 가격은 어찌 됐든 오른다. 살 수 있으면 사라, 후회하지 말고’ 대한민국 부동산 불패신화의 1장이다. 심지어 실화에 가까운 신화이다. 그 덕분에 신화는 더 신비롭고 힘이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신화에 동승해 신전으로 가지 못하는 것도 실화이다. 부동산 신화를 자세히 보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다방면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 할 맛도 떨어뜨리고 사회도 둘로 갈라놓는다. 그래서 부동산 신화의 다른 얼굴을 살펴보려 한다.

‘부동산 가격은 어찌 됐든 오른다. 살 수 있으면 사라, 후회하지 말고’ 대한민국 부동산 불패신화의 1장이다. 신화보다 실화이다. 부동산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많은 수익을 냈던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떨어지지 않고 꾸준히 가파르게 오르는 집값 그래프가 눈 앞에 있다. 그 덕분에 신화는 더 신비롭고 힘이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신화에 동승해 신전으로 가지 못하는 것도 실화이다. 부동산 신화를 자세히 보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다방면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 할 맛도 떨어뜨리고 사회도 둘로 갈라놓는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균형 깨진 ‘살 곳’과 ‘살 것’
무색한 집의 의미

집의 의미는 무엇인가. <참여와혁신>이 노동자 2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집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것을 자유롭게 적어달라’는 주관식 질문에서 많이 나온 답변들을 묶어보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보인다. 집은 ‘휴식’을 취하고 ‘안정’을 찾으며 ‘가족’과 ‘생활’하는 공간이다. 흥미로운 답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집을 ‘돌아와서 쉴 곳’이라고 칭한 답변이었다. ‘어디’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지를 유추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일터’일 것이다. 즉 ‘일터’에서 ‘노동’ 후 충전을 할 공간을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확장해보자면 다음 날의 노동을 준비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살아가는 공간, ‘살 곳’이다.

문제는 집이 ‘기대 수익률이 높은 안정적인 자산’이라는 것에서 발생한다. ‘기대 수익률이 높은 안정적’이라는 말의 원뜻을 고민해봐야 한다. 아주 큰돈을 위험 부담과 수고로움 없이 벌 수 있다는, 투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불패신화라서 꾸준히 급등해왔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올해 발표한 ‘국내 주요 재화 및 서비스의 가격 추세 분석 : 1980~2020’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쌀값이 3배 오를 때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 매매가는 84배 뛰었다. 전세가격으로 따지면 101배나 올랐다. 1986년 이후 35년 동안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6배, 전세가는 10.3배 상승했다. 전국적으로 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1986년에 비해 5배, 전세가격은 9.2배 상승했다. 물론 집은 ‘살 곳’과 동시에 ‘살 것’인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살 곳’과 ‘살 것’의 균형은 깨졌다. ‘살 것’의 의미가 커지면서 집값은 더 오른다. 결국 실수요자들은 뛰어오른 집값에 주거의 질이나 일터와의 근접성을 포기한다. 집은 더 이상 다음 날의 노동을 준비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공간이 아니다.

보유세 강화를 위한 넛지(Nudge)

‘살 곳’과 ‘살 것’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방안들이 부동산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그러나 실효적이지 않았다. 조금 더 실효성 있는 부동산 대책은 보유세 강화라는 것이 <참여와혁신>이 만난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보유세 강화 정책을 펴야 실제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위해 집을 공급하는 사람들로 부동산 시장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한편 보유세 강화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세금을 부과하는 혹은 더 올리는 조세 정책은 조세 저항을 동반한다. 조세 저항 때문에 쉽사리 정치적, 정책적 결정을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를 할까? 혹은 엄청난 투기는 아니더라도 재테크라도 하려고 할까? 취재를 위해 만났던 금융노동자의 말에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살면서 노후를 보장해야 하고, 자식들 교육비 감당하고, 자식들 나중에 결혼시키려면 지금 버는 것에 ‘곱하기 2’ 정도는 해줘야 하거든요. 월급 받는 것으로 교육비, 생활비 등 빠듯하죠.”

“양육이나 노후를 사회안전망으로 보장한다 해도, 이미 눈높이가 높아졌죠. 그것은 진짜 사회안전망이 필요한 사람들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중산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괜찮은 수준의 양육, 노후 등을 개인이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사회가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 현실이 사람들을 부동산 시장의 불나방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시중에 풀린 돈이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과열화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산업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물경제의 기반인 산업 분야에서 마땅한 투자처가 없으니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7월 16일 “풍부한 유동성이 생산적인 부분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생산적 투자처를 만들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물론 세계적인 저성장 추세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 타격 때문에 무리인 주문일 수 있지만 대한민국 산업의 질적 혁신을 고민해볼 이유와 시기적 필요성은 충분하다.

‘질 좋은 복지 인프라’ 구축은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야 할 이유를 약하게 만든다. ‘대한민국 산업의 질적 혁신’은 부동산 말고 수익을 창출할 공간을 만든다. 게다가 그 투자는 사회에 생산적 가치를 창출한다. 이 두 가지가 집값 상승으로 기울어진 ‘살 곳’과 ‘살 것’의 균형을 맞추고 부동산이 아니면 안 되는 대한민국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줄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