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주얼리 노동자에게 절실한 ‘4대 보험의 따뜻함’
종로 주얼리 노동자에게 절실한 ‘4대 보험의 따뜻함’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11.12 14:35
  • 수정 2020.11.1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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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보험‧연차도 없는 깜깜이 일터, 종로 주얼리 업계의 현실
작은 사업장에는 노동조합은커녕 근로기준법도 지켜지지 않아
​​​​​​​주얼리업계 업종교섭, 작은 사업장 노동조건 개선의 지름길

 

“4대 보험이 어쩌고 하는 말들과 상여금, 특근수당, 연차와 실비보험 같은 단어들이 그렇게나 따뜻하고 푹신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p.207 《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2019, 창비) 중에서

곧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시대에 현금이 담긴 월급봉투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700여 개의 귀금속제조업체 대부분은 아직도 월급을 현금으로 준다. 도대체 왜일까. 이 월급명세서는 종로 주얼리 노동자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종로 주얼리 노동자는 4대 보험이 주는 ‘따뜻하고 푹신한’ 느낌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종로 주얼리 노동자의 고용보험 미가입률은 83%에 이른다. 대부분의 종로 주얼리 사업주들은 정부 지원의 기준이 되는 ‘10인 미만 사업장’을 유지하기 위해 직원 중 일부만 4대 보험에 가입시킨다. 운 좋게 가입하더라도 사업주들은 월급을 줄여서 신고한다. 4대 보험료를 덜 내려는 사업주의 꼼수다.

한 주얼리 노동자의 월급명세표. '파업 차감' 항목에서 이 노동자가 현재 파업중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지급 총액이 '통장'과 '현금'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통장에 해당하는 금액은 4대 보험료를 차감한 금액이다. 이는 사업주가 정부에 납부하는 4대 보험료를 낮추기 위해 월급의 절반만 소득액으로 신고한 것이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월급명세서에 있는 본봉, 시간 외 수당, 야간 수당 등도 명목상의 항목일 뿐이다. 근로계약서조차 낯선 종로 주얼리업계에서 노동자들은 그동안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대로 받아 왔다. 그랬던 주얼리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면서 파업에 나섰다.

파업 시작, 주얼리분회

금속노조 서울지역지부 동부지역지회 주얼리분회(분회장 김정봉)는 11월 4일 파업을 선포했다. ‘라임’과 ‘골드크라운’이라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주얼리분회 노동자들이 여러 차례 교섭에도 논의에 진전이 없자 결국 파업에 나선 것이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근로기준법 준수’와 ‘단체교섭 체결’이다. 특히 라임의 경우는 기존에 체결한 단체협약이 존재했다. 하지만 라임은 단체협약 유효기간 만료를 이유로 새로운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하고 있다. 또한 직장협의회를 구성해 논의에서 노동조합을 배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속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을 대상으로 퇴사 압력까지 있다. 이에 주얼리분회는 파업 6일 차인 11월 10일 서울 종로구 온지빌딩 5층 라임 사업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10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종로구 온지빌딩 5층 라임 사업장에서 김정봉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분회장이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주얼리 노동자의 노동실태

종로 귀금속 거리에는 700여 개의 조그마한 귀금속제조업체가 있다. 주로 금제품을 취급한다. 전국의 금은방 소매점들은 종로에서 주얼리 제품을 사다가 판다. 의류업계로 따지면 ‘동대문’인 격이다.

주얼리 제품이 나오기까지는 초실, 주물, 현장, 광실, 출고의 공정을 거친다. 초실은 만들려는 귀금속 제품을 왁스로 만드는 과정이다. 석고 거푸집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주물은 만들어진 석고 거푸집에 금을 녹여 붓는 단계다. 주물단계를 거치면 원하는 모양의 귀금속이 나온다. 현장은 줄과 톱으로 더욱 정교하게 귀금속을 다듬는 과정이다. 광실은 다듬어진 귀금속에 광을 내는 과정이다. 출고는 마지막으로 흠집이나 불량을 확인하고 매장으로 제품을 보내는 단계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이러한 주얼리 제작 공정은 매우 위험하다. 날카로운 도구와 고온의 불, 화학약품을 다루기 때문이다. 주얼리분회 조합원 A씨(37)는 '현장' 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A씨는 “줄에도 종류가 많다. 날카로운 줄을 잘못 잡으면 손이 베인다. 실톱이 작업 중에 부서져 손에 박히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줄 장치는 마땅하지 않다. 조합원 B씨(41)는 “현장에서 서로서로 조심하자고 이야기는 하는데, 안전교육을 받지 못해 전체적으로 취약하다. 조심해야 하는 건 누가 인지시켜주지 않는다.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을 시작한 지 1년 4개월이 됐다는 조합원 C씨(30)는 처음 ‘뻥 작업’을 할 때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뻥 작업’이란 청산가리와 과산화수소를 섞을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으로 귀금속의 표면을 벗겨주는 작업이다. 줄톱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거친다. 화학작용에서 ‘뻥’하고 폭발이 일어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저는 그것도 무서웠어요. 딱 섞는데 확 올라오잖아요? 예쁘게 터지면 괜찮은데 아무렇게나 터지면 내가 다칠 수도 있잖아요? 보호막이 있으면 그나마 덜 할 것 같은데. 내 몸이 망가지는 건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 환기구도 하나밖에 없고…….”

B씨는 “지금도 옛날에 비하면 나아진 것”이라면서 “노조가 생기면서 환기시설을 갖추고 장갑을 끼고 작업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고 말했다. A씨도 “진짜 안전하게 뻥 작업을 하려면 기계가 필요한데 백만 원대로 안다. 하지만 회사에서 비용, 공간 문제를 들면서 설치를 해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6일 오후 라임 사업장에 연대하기 위해 찾아온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조합원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사소한 차이가 모여 불평등이 됐다

노동자를 위험으로 지키는 것은 비단 안전장비뿐만이 아니다. 소위 ‘4대 보험’이라고 불리는 사회보험은 사회적 위험(질병, 상해, 실업, 노령)을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여기서 기업은 고용 시 노동자를 4대 보험에 가입하게 해야 하고 일정 수준의 사회보험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국가가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대신 반대급부로 따르는 사회적 책임이다.

하지만 주얼리업계에서는 4대 보험은 언감생심인 상황이다. 조합원 D씨(38)는 경력 10년이 넘었지만 4대 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 D씨는 “4대 보험이 가장 필요하다. 통장 만들기도 쉽지 않고 신용카드는 거의 못 만든다. 은행 갈 때마다 재직증명서를 떼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4대 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사실은 실제 생활에서 혹시 모를 사회적 위험에 대비한다는 의미 그 이상이다.

C씨는 “월급을 현금으로 받더라도 계좌에 입금할 때는 ‘월급’이라고 쓰긴 한다. 그런데 은행에서는 내 통장에서 내 통장으로 옮겨 갔으니 월급이 아니라고 하니 혜택을 아무것도 못 받는다”면서, “청년 통장이라든지 주택청약 통장도 청년형으로 가입하고 싶었는데 4대 보험이 없어서 불가능했다”고 하소연했다.

적은 돈도 모이면 자본이 된다. 마찬가지로 사소해 보였던 차이가 모여서 불평등이 된다. 김정봉 주얼리분회 분회장은 최근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조합원의 주소지를 보면서 불평등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조합원들이 유난히 집이 멉니다. 천안, 이천, 양주 등 유난히 멀어요. 처음에 저는 집이 먼 사람들이 우연히 모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최근에 가입한 분의 주소를 보니 여주더라고요. 보는 순간 이거는 노동자들이 피해받은 거랑 연관돼 있다고 생각되더라고요. 조합원들이 처음부터 멀리 살았던 게 아니에요. 처음에는 서울에서 살다가 조금씩 멀어진 건데, 주얼리 노동자들이 고용보험 미가입률이 83%잖아요? 임금을 현금으로 받고 계좌이체도 사용하지 않고. 소득증빙, 재직증명이 안 되다 보니 2년에 한 번씩 전세 보증금 올려줄 때 대출이 안 된 거죠. 그러니까 가지고 있는 돈으로 조금씩 멀어진 거고…….”

노동법은 저 멀리 … 연차도 없어

주얼리업계에는 연차도 없다. 연차 미사용 시 주도록 돼 있는 연차수당도 받지 못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 법으로 보장된 사안이지만, “쓴 사람을 한 명도 본적이 없고, 연차에 대해 언급도 없고, 수당도 없고, 쓰면 잘릴 것 같은 분위기”에서 근로계약서나 노동법은 사문화됐다.

“슬퍼요. 다들 재롱잔치 가고 싶어도 눈치 보여서 못 가고.”(B씨)

결혼휴가의 경우에도 보통 주말을 껴서 3일이 전부인 실정이다. 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면 추가로 1~2일 더 받는 게 고작이다. 실제로 김정봉 분회장이 결혼할 때는 퇴사한 상태였다.

“이 일을 한 지는 22년 됐어요. 보통 저는 3년마다 한 번씩 직장을 옮긴 것 같은데, 퇴사 이후 재입사까지 기간 동안 뭘 했나. 생각해보니 운전면허를 땄고요. 건강검진을 받았고요. 그러니까 다른 직장인이 연차 쓰고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으니까 이직 시기에 그런 일을 한 겁니다. 하다 못 해 결혼할 때도 퇴사한 상태였어요.”

주얼리업계에서 이직은 코로나19가 불어 닥치기 이전까지만 해도 아주 빈번했다. 이직의 주된 사유는 ‘근속에 따라 임금이 인상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C씨는 “근속에 따라 월급이 오르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사장에게 가서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데 싫다고 하면 그만”이라고 밝혔다.

A씨도 “근속에 따른 연봉인상이 없다. 한 회사에 오래 있어봤자 사장이 올려주지 않으면 끝이다. 그래서 이직을 많이 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코로나19 + 포괄임금제,
주얼리업계 극단적인 노동 유연화

김정봉 분회장은 11월 5일 류호정 의원이 개최한 ‘포괄임금제 금지법’ 공동발의 요청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김정봉 분회장은 현재 코로나19가 불어 닥친 주얼리업계에서 포괄임금제가 극단적인 노동의 유연화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주얼리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물량 감소에 따라 단축 근무를 받아들였다. 사업장 상황에 따라 근무 일수를 주5일에서 주3~4일로 단축한 것이다. 그러나 해당 근무 일수에 밤 10~11시까지 야간연장근무를 시키는 실정이다. 단축된 근무 일수로는 물량을 모두 처리하기 어려워 발생한 일이다. 물론 연장근무에 따른 수당은 ‘포괄임금제’라는 명목 아래 지급하지 않는다.

주얼리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단축근무로 임금이 삭감된 데에다가 야근까지 강요당하는 형국이다. 김정봉 분회장은 “포괄임금제는 연장근로시간에 따른 수당을 미리 책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근무 일수를 줄여 임금도 줄어든 상태에서 일 처리를 위해서 야근을 시킨다”면서, “실질적으로 임금은 줄었는데 야근을 하게 되는 형태”라고 비판했다.

업종교섭 반대하는 주얼리업계

김정봉 분회장은 이번 파업을 디딤돌로 소산별형태인 주얼리업계 업종교섭을 추진하려고 한다. 현재 주얼리분회는 기업별 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각 사업장마다 동일한 수준의 단체협약안을 제시하고 있다. 김정봉 분회장은 “한 사업장이 아니라 산업이 바뀌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그만두고 이직해서 다른 직장에 가더라도 어차피 종로 안의 공장이다. 전체가 바뀌어야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업주들의 반대는 만만치 않다. 특히 김정봉 분회장이 일하고 있는 귀금속 제조업체인 라임의 사업주 함상종 씨는 서울귀금속제조협동조합의 환경노사위원을 맡고 있다. 김정봉 분회장은 라임이 이미 존재했었던 단체협약을 파기하고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일절 거부하는 이유가 서울귀금속제조협동조합 차원의 결정이라고 보고 있다.

“사업주들의 집단 대응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냐면, 골드크라운이라는 회사와 라임이 같이 교섭을 합니다. 그런데 서울귀금속제조협동조합의 노사위원이 다른 사업장의 단협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개인사업자니까 서로 다른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사실상 사용자단체에서 교섭에 공동대응을 하면서 업종교섭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더불어 김정봉 분회장은 노동조합이 회사에 요구하는 것들이 절대 과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노동조합에서는 임금동결 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요구안의 내용 자체도 그렇습니다. 법에 있는 것들입니다. 일한 만큼 야근수당 주고, 연차 휴가 보장하고, 노동조합 활동 인정해달라. 사장이 금전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요구가 딱 하나 있다면 중식비를 천 원 인상해서 6천 원으로 해달라는 게 있을 수 있습니다. 다 그런 것밖에 없습니다.”

6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종로구 온지빌딩 앞에서 열린 주얼리 투쟁문화제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작은 사업장 노동자는 노동조합 못 한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 남짓이다. 여전히 적은 숫자라고 불리지만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에게는 부럽기만한 숫자다. 3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0.1%에 불과하다. 김정봉 분회장은 작은 사업장에서도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게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할 수 없다는 게 정확한 현실이다.

“저희가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데 사업주들은 막습니다. 처음에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을 때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겠다고 천명했고, 정부에서 작은 사업장에 신경을 모두 쓸 수 없으니 노동조합 가입을 권한다고 오바마 대통령처럼 말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작은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해고가 자유로운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불성설입니다. 자유롭게 노동조합 하라고 나라에서 권장하는데 작은 사업장 해고는 놔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떡해야 합니까?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못 한다는 이야기밖에 안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