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릴레이 기고②] 우리 사장은 과장입니다
[민주노총 릴레이 기고②] 우리 사장은 과장입니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11.16 00:00
  • 수정 2020.11.15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장준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조직국장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 전면적용, 노조법2조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전태일3법을 국회에 입법청원 했다. 이 중 노조법 2조 개정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간접고용노동자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 등을 담은 내용이다. 특수고용, 간접고용노동자의 현실과 목소리로 노조법 2조 개정이 왜 필요한지 릴레이 기고로 싣는다.

박장준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조직국장
박장준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

어떤 사장은 과장보다 못하다. 임금이나 단체협약 교섭을 할 때 어떤 사장들은 과장에게 달려간다. 사건이 터지면 사원에게 전화를 걸어 해결책을 묻는 사장도 있다. 하청 사장은 원청 과장만 못하다. 단언컨대 원청 과장의 생각과 태도가 하청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하청 사장은 한계가 뚜렷하다. 사업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짧으면 몇 개월, 길면 2~3년뿐이기 때문이다. 목숨줄을 쥔 건 원청이다. 원청의 평가, 정책, 의지에 따라 하청업체의 존속부터 매출액이 달라진다. 하청 사장은 어느 것 하나도 결정할 수 없다. 대부분의 원하청 구조에서 원청은 ‘진짜 사장’이고 하청은 ‘바지사장’이 된다.

이런 하청에게 중장기 전망과 계획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원청이 지급한 돈에서 자기 몫을 만들어내는 것이 하청의 지상목표다. 이러니 근무환경을 개선할 리 없다. 하청은 오직 ‘중간착취를 위한 노무관리’만 할 뿐이다. 외주화로 인해 현장은 더 위험해지고, 산재가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되는 것은 이런 구조 탓이다.

노동환경이 좋지 않은 데다 고용마저 불안하니 노동조합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 그렇지만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유지하고 뭔가를 바꿔내는 건 정규직 사업장에 비해 몇 배는 힘들다. 하청 사장은 자신의 유일한 경영행위인 ‘중간착취’를 방해하는 노동조합을 온갖 수를 써서 없애려 하고, 원청은 여차하면 1라운드 ‘고용보장’ 싸움으로 시간을 되돌려버린다.

원청 입장에서 외주화는 노동자관리, 책임은폐, 비용 절감, 노조탄압에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일부 관리직 노동자들만을 고임금 정규직으로 포섭해서 일종의 ‘신분’을 만들어내고, 실제 사용자로서 책임은 지지 않고 비용을 절감하면서, 노조를 손쉽게 관리하거나 탄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사장은 노조법 2조 ‘사용자’ 개념 뒤, 아니 위에 군림하고 있다.

“하청업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진짜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 희망연대노동조합이 지난 십여 년 동안 방송통신업계와 콜센터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면서 확인하고 관철해온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 노조의 첫 번째 구호였고 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외친 가장 중요한 구호는 “진짜 사장이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다.

최근 통신재벌 SK에 맞서 투쟁을 하면서 이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이 구호를 다시 외친다. 우리는 SK브로드밴드와 케이블방송 티브로드가 합병하는 과정에서 ‘원청 SK가 티브로드 협력업체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복지를 향상하라’는 정부의 합병 승인 조건을 쟁취했다. 그런데 합병 직후부터 하청업체는 하루 왕복 4~5시간 거리로 노동자들을 발령을 내 퇴사를 유도했다. 중간착취를 250만 원이라도 더 하기 위함이다.

물론 SK는 “협력업체 문제”라며 발을 뺐다. 반년간의 피케팅, 한 달의 노숙 농성, 13일간 이어진 단식농성, 6일 집중파업을 했지만, 원청 SK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원청, 하청, 노동조합이 모여 적정 TO를 논의하자는 노동조합의 타협안을 걷어찼다. 심지어 노동조합과 대화하라는 정당의 중재도 거부했다. 이 싸움에서 진짜 사장과 바지사장은 ‘단결’했다.

그런데 SK가 발뺌할수록 확신이 든다. 자신은 사장이 아니라고 변명하던 SK가 부당전출로 AS 업무가 밀린 문제의 하청업체에 “서비스 개선 계획을 내놓으라”고 압박을 하더라. “적정 TO는 원청이 정할 수 없다”던 SK가 적정건수를 들이밀며 하청업체들을 쥐고 흔들더라. 각종 성과(지표) 기준도 SK로 갑자기 바꾸더라. 이번 구조조정의 뒷배, 아니 주범은 SK다. 우리의 진짜 사장 SK 말이다.

SK가 책임져야 한다. SK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 우리는 이 진실을 관철해야 한다. 이 싸움은 부당전출 노동자들과 가족을 살리는 싸움이고, SK 작업복을 입고 SK 고객을 만나 SK 상품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노동자는 SK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싸움이고, 원청의 구조조정과 하청의 중간착취에 동시에 맞서는 싸움이고, 현장에서부터 노조법 2조를 바꿔내는 싸움이다. 오늘(11월 16일) 다섯 명의 노동자가 또다시 곡기를 끊는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