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릴레이 기고③] 한국 사회 20만 명의 간병노동자, 그들은 ‘유령’이었다
[민주노총 릴레이 기고③] 한국 사회 20만 명의 간병노동자, 그들은 ‘유령’이었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11.23 16:22
  • 수정 2020.11.2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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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정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직부장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 전면적용, 노조법2조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전태일3법을 국회에 입법청원 했다. 이 중 노조법 2조 개정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간접고용노동자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 등을 담은 내용이다. 특수고용, 간접고용노동자의 현실과 목소리로 노조법 2조 개정이 왜 필요한지 릴레이 기고로 싣는다.

홍유정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직부장
홍유정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직부장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간병노동자들은 기본 권리인 안전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큰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19 국내 첫 사망자가 나왔던 청도대남병원에서는 환자와 환자를 돌보던 간병노동자가 함께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인이 77세의 고령이었고, 당뇨를 앓고 있어 몸이 좋지 않았음에도 경산에서 청도까지 힘든 몸을 이끌고 시급 4,200원의 간병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현재 한국의 간병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 지 오래며 노동자의 권리, 인간적인 대우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간병노동자는 거의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이며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급으로 일하고 있다. 간병노동자는 환자의 가족들을 대신하여 병원, 요양소, 산업체, 기타 기관이나 가정 등에서 노인 돌봄을 수행한다.

간병노동자가 환자를 돌보는 일은 다양하다. 환자 목욕, 옷 갈아입히기, 의사 또는 간호사의 지시에 따른 환자 음식 먹이기, 배설 상태 기록, 대소변 보조, 변기세척 및 튜브 배설물 처리, 환자 거동 시 휠체어 밀기 또는 동행, 환자 외모 단장, 환자 말벗, 환자 주변 환경 관리, 침상 이동 도움, 심호흡 및 기침 도움, 운동 보조, 음식 섭취량 및 배설물(대소변, 토사물) 양과 횟수 측정, 청소 등 많은 업무를 수행한다.

간병 업무는 환자 보호자가 간병협회에 전화를 걸어 환자 상태를 말하면 협회에서 환자 상태에 적합한 간병노동자를 배치한다. 업무시간은 대부분 하루 24시간을 연속 근무하며 때에 따라 12시간을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간병 기간은 환자 상태에 따라 2~5일 단기간도 있지만, 중증 환자의 경우 한 달, 1년, 몇 년간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급여인 간병비는 일당으로 받는데, 병원 또는 지역에 따라 다르고 중증도에 따라서도 다르다. 한 국립대병원의 경우 24시간에 9~10만 원 선을 받는다. 시급으로 환산해보면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간병노동자의 사용자는 현재 ‘환자 보호자’다. 전체 간병노동자의 70% 이상, 사실상 대부분의 간병노동자는 간병 소개소(간병협회)를 통한 일대일 간병 등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으며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간병노동자는 노동3권은 물론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의 보장을 받지 못한다. 법정노동시간, 휴일, 휴가, 퇴직금, 법정 수당(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최저임금 등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이는 간병노동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간병노동자는 오래전부터 요구해온 산재보험·고용보험 적용 문제에서 계속해서 배제당하고 소외되어왔다. 간병노동자들은 환자에게서 옴이나 병원균이 옮기도 한다. 이렇게 환자와 24시간 밀착접촉을 하고 있는 간병노동자들은 코로나19를 비롯한 여러 질병 위험에 크게 노출되어있다.

올해 초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간병노동자들은 병원에서 마스크 지급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고용노동부의 취약계층에 대한 마스크 지급 추진 과정에서도 뒤로 밀려났다. 만약 간병노동자가 감염된다면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에게까지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집단감염의 위험이 높아진다. 고용노동부도 간병노동자에 대한 마스크 지급이 시급하다는 것을 인정하였지만, 그럼에도 간병노동자들이 후순위로 밀려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산재 적용을 받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간병노동자는 고령 환자와 중환자, 와상환자를 돌보기 때문에 간병을 하는 중 근골격계질환 부상 위험이 심각하게 높다. 자세를 바꿔 줄 때 몸의 힘을 실어야 해서 허리를 삐끗하는 경우가 많고, 테니스엘보, 어깨 근육이 많이 나간다. 그러나 근골격계질환에 걸리더라도 산재 처리가 되지 않아 모두 자비로 치료를 받으며 근무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 쉬게 되면 수입이 없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다.

게다가 휴식 시간, 식사 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며 마땅한 휴식공간과 식사공간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기에 환자와 환자 보호자에 대한 감정노동을 하며 무리한 요구를 받거나 폭언과 성희롱 등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개개인이 알아서 대처해야 한다.

간병노동자들은 필수노동자다. 병원에서 가족을 대신해서 아픈 환자를 돌보는 돌봄노동자로서, 고령화된 사회에 가족을 대신하여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각지대로 밀려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고 있지 못하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아파도 쉴 수 없으며, 법도 보호해주지 않는 현실. 이것이 현재 한국의 노인과 노인 돌봄의 현실이다. 결국 이들이 제공하는 환자서비스의 질 또한 자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전국의 간병노동자가 20만 명을 넘는데 이들은 언제까지 사회의 ‘유령’으로 남아있어야 할까? 간병노동자들이 고령의 몸을 이끌고 근로기준법 적용,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적용을 외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전면 적용하고 즉각 노조법 2조를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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