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분할’ 절차에 노동자 참여·선택권 법제화해야
‘회사분할’ 절차에 노동자 참여·선택권 법제화해야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11.18 16:09
  • 수정 2020.11.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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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제약사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생존권 확보 방안’ 토론회
회사분할 시 노동자와 노동조합 보호에 관한 규정 필요
11월 18일 오전 10시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 제2대회의실에서 ‘다국적 제약사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생존권 확보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다국적 제약사 노동자들도 ‘회사분할제도’로 생존권을 위협받는다. 전문 의약품을 판매하는 다국적 제약사의 경우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 아래 회사분할과 매각, 합병 등의 수단을 사용하기 쉽다. 하지만 노동법상 보호책은 전무하고, 노동자들은 회사분할에 따른 고용불안에 내몰렸다. 11월 18일 오전 10시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 제2대회의실에서는 ‘다국적 제약사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생존권 확보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는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추승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한국MSD노동조합에서 주최했다.

11월 18일 오전 10시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 제2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다국적 제약사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생존권 확보 방안’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심상남 한국MSD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심상남 한국MSD노동조합 위원장은 발제에서 현 다국적 제약사들의 기업변동 현황과 문제점을 짚었다. 심 위원장은 “기업분할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인격이 없는 소모품 취급을 받는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국적 제약사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현황을 공론화 하고 싶다”며 “희망퇴직프로그램(ERP)은 원래 본인이 원해야 하는 것이지만 회사는 악용하고 있다. 회망퇴직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응하지 않으면 개별면담을 통해 직원들을 반강제 퇴직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한국MSD 노사는 일방적 기업변동(영업양도, 분할, 합병 등) 결정과 고용승계 문제 등으로 조정을 시도했지만 결렬된 바 있다.

그는 ‘화이자가 하면 MSD가 하고, MSD가 하면 모두 따라한다’는 업계 농담처럼, 화이자와 MSD의 상황이 다국적 제약사 전반으로 퍼져나갈 것을 우려했다. 신약뿐 아니라 회사분할에 따른 구조조정과 희망퇴직의 바람도 업계 전반으로 불어올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한국머크 GM사업부는 해당 부서가 담당하던 ‘콩코르(고혈압 치료제)’와 ‘글루코파지(당뇨병 치료제)’의 판권이 국내 제약사에 넘어간 후 부서 전 직원에게 희망퇴직을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희망퇴직 대상자였던 한 지방지점 직원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심 위원장은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무력감까지 드는 게 현실”이라며 “회사는 지금이라도 진실한 태도를 가지고 직원들과 협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11월 18일 오전 10시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 제2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다국적 제약사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생존권 확보 방안’ 토론회에서 권오성 성신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이어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권오성 성신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회사분할을 포함한 기업변동 국면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보호할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회사분할제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회사의 일부 혹은 전부가 거래되는 인수합병이 만연해지면서 1998년 상법으로 등장했다.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약 20년 동안 상법으로만 존재했던 회사분할제도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보호를 위한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권 교수는 “회사분할이 분할회사의 근로자나 이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현행 상법은 물론 노동관계법령에서 회사분할 시 근로자 및 노동조합의 보호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도 하고 있지 않다”며 “사전적으로는 회사분할 절차에 대한 근로자의 참여권 보장이 중요하며, 사후적으로는 근로자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신설회사로 고용승계를 원하지 않는 노동자의 거부권 ▲신설회사로의 고용승계를 원하지만 대상에서 제외된 노동자의 이의신청권 ▲신설회사로 승계되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관한 조항 등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진선미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도 회사분할에서 노동자 선택권 보장은 ‘보호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진 부회장은 “회사분할에 따른 근로관계의 승계는 영업의 일부양도와 마찬가지로 근로관계의 승계를 원하지 않는 근로자에게는 일률적으로 거부권이 인정돼야 하고, 근로관계 승계를 거부하는 근로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양도하는 기업에 존속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근로자의 선택권을 보장해 근로관계 존속 보호 및 내용이 보호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 18일 오전 10시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 제2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다국적 제약사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생존권 확보 방안’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강승욱 한국화이자제약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그러나 회사분할제도 이후 세워진 2013년 판례(대법원2011두4282)는 노동자의 참여권과 절차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해당 판례에서 대법원은 “분할하는 회사가 분할계획서에 대한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기 전에 미리 노동조합과 근로자에게 회사 분할의 배경, 목적 및 시기, 승계되는 근로관계의 범위와 내용, 신설회사의 개요 및 업무 내용 등을 설명하고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절차를 거쳤다면 그 승계되는 사업에 관한 근로관계는 해당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라도 신설 회사에 승계되는 것이 원칙”이라고 판결했다.

지정토론에서 한만목 에이원노무법인 대표 공인노무사는 “대법원은 분할계획서에 대해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기 전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절차만 거치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승계여부와 승계범위를 결정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 절차의 정당성이 보장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분할 당시 향후 근로조건에 대한 노사간의 대화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분할 전 노사가 합의한 사항이 분할 후에도 그대로 승계되는지와 관련해 현재의 입법과 판례는 아무런 대답을 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강승욱 한국화이자제약노동조합 위원장도 “노동존중이 사회의 중요 아젠다로 떠오르고 있는 현재의 시대적 상황을 보았을 때, 이제 사법부의 판단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까지의 기업 중심의 사고가 아닌 인간 존중의 사고를 통한 법 해석이 필요하다”며 “결국 근로관계 승계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라고 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