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한 노동자 헌신짝 취급하는 한국MSD
헌신한 노동자 헌신짝 취급하는 한국MSD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11.24 18:49
  • 수정 2020.11.29 2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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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MSD 내년 2월 회사분할 완료, ‘한국오가논’ 출범
​​​​​​​특허 만료된 제네릭 약품 모아둔 ‘한국오가논’ … 미래 비전 있나? 의심 가중
전적 대상 노동자 ‘배신감’ 호소 … “열심히 일한 내가 바보였다”

리포트_회사분할의 그림자, 한국MSD 노동자는 어디로?

ⓒ 한국MSD노동조합
ⓒ 한국MSD노동조합

2021년 2월 1일 한국MSD는 두 개의 회사로 쪼개질 예정이다. 한국MSD와 한국오가논(신설)으로 인적분할 되는 것이다. 올해 2월 글로벌MSD가 발표한 계획에 발맞춰 한국MSD의 분할 작업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한편 현장 노동자들은 배신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분할 과정에서 보여준 일방적인 회사의 태도 때문이다. 한국MSD 노동자들은 회사 분할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한국MSD 법인 쪼개기

글로벌 MSD는 2월 5일 기존 사업영역 중 레거시 브랜드, 여성건강, 바이오시밀러 분야를 분리해 새로운 별도 법인을 독립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글로벌 본사의 계획에 맞춰 한국법인의 회사분할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MSD는 ▲PC(Primary Care, 당뇨, 순환기, 심혈관 등 만성질환치료제 판매) ▲DV(Diversified Brands, 호흡기, 피부과, 비뇨기계 등 약품 판매) ▲온콜로지(Oncology, 종양학, 암 연구, 치료, 진단, 예방을 다루는 의학의 분과) ▲백신(Vaccines) ▲스페셜티(Specialty, 항생제-C형 간염 등 세분되지 않은 약품 판매)의 5개 사업부로 구성돼 있다. 그중 DV사업부 전체와 PC사업부 일부를 분리한다는 계획이다. 인원으로 따지면 총 700여 명 중 250여 명 정도가 해당된다.

한국MSD는 이 같은 회사분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2020년 3~5월 리더십 팀 확정 ▲2020년 3분기부터 임직원 배치 ▲2020년 4분기까지 분사 준비 작업 완료(실질적 업무 분리) ▲2021년 상반기 분사라는 타임 테이블을 잡았다.

이에 따라 올해 3월 신설법인 이름이 한국오가논으로 정해졌고, 10월에는 김소은 현 한국MSD 전무가 사장직으로 내정됐다. 11월 16일에는 총 222명의 전적 대상자가 최종적으로 확정돼 현장 노동자들에게 통보됐다. 차질 없이 회사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오가논의 비전?
노동자들은 믿지 못한다

김소은 한국오가논 대표 내정자는 “한국오가논은 추후 여성건강 특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한다”며, “한국지사의 경우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과 리더십을 추구하는 동시에 직원들이 수평적이고 유연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성장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기업 문화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MSD도 “더 나은 발전을 위해” 회사분할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는 회사가 제시하는 장밋빛 미래를 전혀 신뢰하지 못한다. 한국오가논으로의 전적이 ‘해고 아닌 해고’, ‘권고사직 아닌 권고사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한국오가논의 불투명한 미래 전망에 있다.

한국MSD노동조합 조합원 이강인(가명) 씨는 DV부서 영업직 노동자다. 강인 씨는 “오가논이라는 회사가 회사의 말 그대로 정말 비전이 있으면 덜 불안할 텐데 솔직히 말해 성장 원동력이 없다”면서, “제약사의 핵심 R&D(연구개발)부서는 이전하지 않으며 페이턴트(특허)가 만료된 경쟁력이 없는 제품만 오가논으로 보낸다”고 토로했다.

‘선택과 집중’에 따라 한국오가논이 맡기로 한 호흡기 약품이라고 할지라도 특허기간이 아직 남아 있는 경우에는 현 한국MSD가 가져간다는 것이다. 특허기간이 남아 있는 제품은 제약회사의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기능한다.

또한, 미심쩍은 인사이동도 현장 노동자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분할 대상인 DV·PC사업부의 부서장이나 관리직들은 공교롭게도 분사 발표 1~2개월 전 글로벌MSD 소속이나 한국MSD 내의 다른 부서로 대부분 조직을 옮겼다.

강인 씨는 “회사를 믿을 수가 없다. 한국오가논 사장은 비전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세부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작 DV부서 마케팅 본부장과 해당 부서장인 전무는 분할되는 회사 대신 글로벌MSD의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 한국MSD노동조합

찰떡같이 믿었던 회사의 배신

입사한 지 13년이 흘렀다는 강인 씨는 “사실 몇 개월 동안 밤마다 뒤척거렸다”면서, “왜 회사에 내 모든 청춘을 다 바쳤을까. 돌이켜보면 스스로 원망스럽다”는 심정을 밝혔다.

한국MSD는 2019년 한국화이자를 제치고 국내 다국적 제약회사 중 매출 1위를 달성했다. 반면 한국MSD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지속적으로 후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인 씨가 “여러 제약사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고사하고” 회사에 남은 이유는 고용에 대한 약속 때문이었다.

강인 씨는 “5년 전에 회사의 매출이 늘고 성장하는 데 비해 왜 연봉은 변함이 없는지 인사부에 물어본 적 있다”면서, “다른 회사들은 연례행사처럼 ERP(Early Retirement Program, 희망퇴직)나 인원 감축을 하지만, 우리 회사는 고용을 보장한다. 단순히 복지나 임금 수준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전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회사의 약속을 굳게 믿은 강인 씨는 현재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에 휩싸였다.

“가족들은 뭐... 하... 바보라고 하죠. 왜 그렇게 회사만 믿고, 가족보다 회사 일을 먼저 최우선적으로 하며 그렇게 충성을 다했는지, 회사에서의 직원은 소모품이 불과해요. 저도 사실 그런 부분들이 스스로 원망스러워요. 다른 동료들을 보면 회사에서 일하다가 다른 회사로 이직 준비를 하는데. 저는 그런 게 싫었거든요. 일을 하면서 회사에 충성을 해야지... 그런데 원 팀(One Team)을 외치던 회사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한국MSD가 첫 직장이었다는 임승윤(가명) 씨도 이번 전적 대상자 명단에 포함됐다. 12년간 한국MSD에서 일하면서 ‘좋은 회사 들어갔네’라는 칭찬이 듣기 좋았다는 승윤 씨는 내년 2월이면 ‘회사의 의지에 따라’ 한국오가논 직원으로 소속이 변경될 예정이다.

승윤 씨는 “애정이 큰 회사였지만 개인적 동의절차 하나 없이 마치 소모품처럼 한국오가논으로 가게 돼서 정말 실망스럽고 배신감이 크다”며 “회사를 위한 10여 년 간 노력과 헌신의 결과가 이렇다고 생각하니 밤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다”고 토로했다. 승윤 씨는 이러한 마음고생으로 인해 최근 심리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승윤 씨는 전적 대상자 선정도 회사의 자의적인 기준으로 결정됐다고 비판했다. 당초 회사가 제시하기로 한 전적 기준에 관한 설명을 생략하고, 예정된 분사 시점에 다다르자 일방적으로 전적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 분사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에서 ‘스핀오프’니 ‘기업분할’이니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단어를 듣고 검색창을 열심히 뒤적거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MSD에 남을 수 있는 건지 불안을 많이 느꼈죠. 회사는 처음에 담당하는 제품에 따라서 전적 기준이 나눠진다고 하면서 나중에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지난 주 월요일(16일)에 설명 아닌 통보를 받았죠.”

노동조합의 대응
전적거부? 고용안정 합의 도출?

한국MSD에는 2개의 노동조합이 있다. 기업별 노조인 한국MSD노동조합(위원장 심상남)은 3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돼 있다. 산업별 노조인 한국노총 민주제약노조 한국MSD지부(지부장 한선미)에는 7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돼 있다.

2018년 11월 한국MSD에 처음 노동조합(한국MSD지부)이 만들어지면서 4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했다. 그러나 2019년 9월 300여 명의 노동자가 한국MSD지부를 탈퇴해 기업별 노조인 한국MSD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이후 두 노조는 사안에 따라 공조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

두 노조는 모두 회사분할에 맞서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결을 달리한다. 한국MSD지부는 회사 분할을 받아들이되 추후 한국오가논에서의 고용안정을 확실히 보장받길 원한다.

한선미 한국MSD지부 지부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한국오가논의 향후 성장에 대한 확약을 받아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고용보장 협약서를 체결하려 노력하는 중”이라면서, “회사는 추가 보상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근로조건이 지금이랑 똑같이 승계된다고 할 뿐 구체적인 고용안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 중”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MSD노동조합은 한국오가논으로의 전적 자체를 거부하며 회사분할에 필요한 일체의 업무협조를 보이콧하고 있다. 현재 한국MSD노동조합은 교섭대표노조로서 지난 11월 2일 노동위원회로부터 ‘조정중지’ 결정을 받음에 따라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현행법상 쟁의권 행사 요건은 근로조건에 관련된 경우인데, 회사분할과 관련된 사안이 근로조건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경우라고 판단한 것이다.

신종환 한국MSD노동조합 고문은 “기존 판례에는 ‘분할하는 회사가 분할계획서에 대한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기 전에 미리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성실히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라는 문구가 있다”면서, “이는 절차적 정당성을 얻으려는 것으로 사측의 필요에 따라 이뤄지는 회사분할의 책임을 노동조합에 떠넘기는 것이다. 당연히 보이콧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MSD노동조합은 구체적인 부당전적구제신청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한국MSD지부도 회사와 고용안정보장을 포함한 보상안에 대한 협상을 준비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논의가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전적거부의 카드를 꺼낼 수 있다.

“사실 이런 건 양대 노총에서 해야 할 일인데…”

하지만 전적을 거부하더라도 2021년 2월 1일자로 한국MSD의 분할은 완료된다. 현재 한국의 판례는 회사분할 상황에서 발생하는 노동권 침해를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한다. 회사의 매매는 상법의 관할이며, 노동자의 이동은 노동법의 관할이다. 그러나 회사를 쪼개서 팔 때는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이동이 발생한다. 이 경우 한국의 법원은 노동법이 아닌 상법으로 판단하고 있다. 회사분할 시 노동자를 보호할 입법이 부재하기에 초래된 결과다.

한국MSD노동조합은 분할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법적 대응을 이어나간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장 조합원들이 하루아침에 신생 회사로 옮겨가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표하고 있다는 배경에서다.

ⓒ 한국MSD노동조합

한국MSD노동조합은 지난 11월 18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환경노동위원회)과 함께 서울시의회에서 ‘다국적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생존권 확보 방안’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회사분할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현행 상법은 물론 노동관계법령에는 노동자 및 노동조합 보호에 관해서 아무런 규정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회사분할 절차에 노동자의 참여권 보장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노동자의 (기존 및 신설 법인) 선택권을 보장할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MSD노동조합은 “(분할 후) 신설 회사로 전적하는 것에 대해서 노동자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 입법이 미비한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노동존중을 지향하는 현재 사회적 분위기에서 판례는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다. 아울러 입법의 공백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상남 한국MSD노동조합 위원장은 “우리 노조가 신생노조다보니 모든 준비를 발품 팔아서 간담회를 어렵게 진행했다”며 “사실 입법과 관련한 부분은 기업노조가 아니라 양대 노총에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대응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빨리 법적인 안전장치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분사 과정에서 노조마저 없었으면...

회사분할로 인한 노동권 침해는 비단 한국MSD만의 문제가 아니다. 심상남 위원장은 “최근 회사분할된 화이자나 한국MSD뿐만 아니라 한국로슈(Roche), 한국릴리, 한국사노피, 한국머크 등이 현재 매각을 통한 ERP나 자산매매계약 등 기업변동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회사의 일방적 결정에 반박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승윤 씨는 이후 피치 못하게 한국오가논으로 전적하더라도 노동조합에 반드시 가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조합 활동을 더 해야겠다고 느끼죠. 사실 1994년에 한국MSD가 설립되고 나서 노동조합은 비교적 늦게 만들어졌어요. 어수선한 분사과정에서 그나마 노조가 있었기에 이런 목소리라도 낼 수 있었다고 봐요. 노조마저 없었으면 회사가 얼마나 더 직원들을 함부로 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승윤 씨는 회사가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여기지 말아달라는 일침을 날렸다. 글로벌MSD의 방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회사분할을 추진하고 있더라도 10여 년 간 회사를 위해 헌신한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단지 글로벌 본사의 기준이나 입장만을 전하는 게 아니라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노동자와 소통하고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진심으로 공감하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