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희'가 되고 싶은 뉴워커에게 다가가기
'고영희'가 되고 싶은 뉴워커에게 다가가기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12.11 00:20
  • 수정 2020.12.11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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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사투리를 없애자"… 인식 변화를 꾀하다

커버스토리 번외 [인터뷰] 성지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선전홍보부장

"엇, 고양이다!" 10월 23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BBOX에서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입구에는 세 마리 고양이가 앙증맞은 손을 들고 '파워업!'을 외치는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젊은 세대들은 이끌리듯 발걸음을 옮겼다. 흔히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해 MZ세대라고 부른다. 고양이를 기르는 것에 이어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은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며 따분함을 거부하고 기민하게 주위를 살피는 고양이와 닮았다(MZ세대들은 고양이를 친근감 있게 ‘고영희’라고 부른다).

3일 동안 진행돼 성황리에 마친 이번 팝업스토어는 민주노총에서 기획한 '뉴워커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팝업스토어가 아닌 '파워업스토어'. 이름도 파격적이다. 고양이에 이끌려 파워업스토어를 방문한 이들은 전태일을 알아가기도 했고, 자신의 일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한없이 '힙'함을 보여주고자 이번 프로젝트 기획에 참여했던 성지훈 민주노총 선전홍보부장을 만나봤다.

10월 23~25일 동안 서울 마포구 연남동 BBOX에서 열린 '파워업스토어'ⓒ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10월 23~25일 동안 서울 마포구 연남동 BBOX에서 열린 '파워업스토어'ⓒ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언젠가 술자리에서 민주노총도 청년과 비정규직 혹은 여성만을 다루는 서브 브랜드를 만드는 건 어떨까 하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러다가 올해 초에 파편적 아이디어를 선배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개발하면서 사업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민주노총에 들어온 지 만 2년이 채 안 됐어요. 면접을 볼 때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냐고 묻기에 '운동권 사투리'를 없애는 게 목표라고 했어요. 민주노총이 내셔널센터고, 노동과 함께 한국 사회의 모든 진보운동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면 더 대중 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결국 모든 운동은 대중운동이잖아요.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총체적인 기치를 들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밖에서 본 민주노총의 현실은 피상적이었죠. 들어가서 몇 달 있으면서 더욱 근본적인 메시지를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어요.

- 기획에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진짜 한없이 '힙'하고 싶었거든요. 연남동에 있는 힙한 팝업스토어에서 재밌게 놀았는데 끝나고 봤더니 이게 민주노총이 한 거라고? 조직을 인식하는 대중들의 변화를 위해 낙차를 크게 만들고 싶었어요. 충격이 큰 만큼 민주노총의 변화가 잘 보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 내부 설득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절충 과정에서 선배들이 많이 조언했어요. 스스로 하고 싶은 게 있더라도 천천히 균열을 내면서 하나씩 하는 거다, 한 번에 다 원하는 대로 하다보면 결국 하나도 못하게 된다, 길게 보고 일단 사업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얘기하셨어요. 처음에 저는 민주노총이나 전태일이라는 키워드 없이 오직 '힙'한 거만 하고 싶었는데 그랬으면 아마 될 수 없었겠죠.

- '뉴워커 프로젝트'의 의미는?

청년이나 비정규직, 여성 등 대상에 대한 페르소나 작업을 한참 했어요. 초기엔 특정 대상과 그들을 상징할만한 단 하나의 키워드가 없었어요. 모호한 와중에 대상으로 '뉴워커'라는 임의의 개념을 만든 게 시작이에요. 임의의 개념을 만들고 지금까지 우리가 노동자라고 불러왔던 것과는 결이 다른 노동,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일에 대한 새로운 인식 등을 포괄하려고 했죠. 그래서 뉴에라, 뉴워커, 뉴니온이거든요. 새로운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연대인 뉴니온. 뉴워커 프로젝트는 뉴워커가 뭔지를 찾아가는 프로젝트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 왜 '파워업스토어'였나요?

파워업스토어라는 명칭은 농담처럼 나왔어요. 이번에 나온 기획 대부분이 정형화된 회의를 할 때보다는 '아, 모르겠다! 밥 먹으러 가자!' 했을 때 농담처럼 나왔죠. 팝업에서 'ㅂ'을 탈락시켜볼까? 파업? 팝업과 파업 사이에 뭐가 있지? 파워업? 이런 식으로.

- '파워업'스토어 하면서 '파워다운' 되진 않았는지?

우리가 노동시간 단축을 얘기하고 있지만 정작 저희는 못 그러고 있는 게 현실이긴 하죠. 근데 파워가 다운되진 않았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파워업’하는 계기였어요. 22일부터 파워업스토어를 준비해서 철거하고 정리했던 27일까지 연남동에 붙어 있었는데요, 거의 매일 밤을 샜던 거 같아요. 자발적인 거니까 즐거웠어요.

- 화제의 중심이었던 '고양이'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디자인팀도 기획팀도 고양이의 특징과 매력이 뉴워커와 잘 맞는다고 봤어요. 고양이는 적당히 게으른데,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하는 애도 아니고, 자기가 꽂힌 건 열심히 집중하죠. 누군가에게 예쁨 받으려 하지 않고 주체적인 태도도 보이고. 마치 우리를 존중하라는 모습이 고양이의 특성이잖아요. 또 디자인적으로 예쁘고 귀여운 게 최고라 고양이를 페르소나로 삼았어요. 뉴워커에 걸맞은 대표 직업으로 세 종류의 고양이 캐릭터를 만들어보자 해서 IT프리랜서, 타투이스트, 플랫폼노동자 고양이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뉴워커' 캐릭터인 IT프리랜서 고양이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뉴워커' 캐릭터인 IT프리랜서 고양이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새일꾼》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죠?

사람들이 팝업스토어에 들어오면 뭐라도 들고 있어야 하잖아요. 도록이나 해설서? 아냐, 기왕할 거 잡지로 하자고 해서 만들었어요. 뉴워커들의 이야기를 하자, 그래서 인터뷰가 중심이 됐고요. '뉴워커는 뭐야!'라고 얘기하는 것보다 이 사람도 뉴워커고, 저 사람도 뉴워커고, 또 그들이 생각하는 일이 이렇다는 걸 팝업스토어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특히 재밌던 건 황푸하 목사님 인터뷰였죠. 하나님도 노동자야? 목사도 노동자야?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는 게 재밌잖아요. 배우도 노동자야?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더 적게 불러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열정으로 견뎌야지, 이런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 잡지를 통해 직접 얘기해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 '뉴워커 프로젝트: 파워업스토어'를 마친 이후 주변 반응은?

하루에 50명씩만 와주면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첫 날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서 카운팅을 포기했어요. 오간 거 다 해서 최소 3,000명 이상은 왔겠다 싶어요. 대중 반응도 나쁘지 않았던 거 같고, 민주노총 내 동료들, 운동권 사람들도 좋게 평가했어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선전이라는 얘기들을 해주셨거든요.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스무 살 남짓한 대학생 커플이었어요. 그냥 정말 "고양이다!"하고 뛰어 들어왔거든요. 책 읽으시면 전태일 평전 책갈피를 선물로 드린다니까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책을 열심히 읽는데, 한 명이 그런 얘길 했어요. 너 전태일 알아? 하니까 다른 친구가 모른다면서 소곤소곤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곤 이거 다 읽어봤는데 멋있는 얘기인 것 같다고, 전태일 누군지도 몰랐는데 꼭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고, 되게 멋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그러시는데 그때 벅찼어요. 아, 우리가 이러려고, 정말 이 순간 때문에 그 몇 달을 고생해서 팝업스토어를 하는 거구나. 이 한 순간을 위해서.

- 일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이유도, 하찮게 생각할 이유도 없는 일상인 것 같아요. 성경에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받은 형벌로 노동이 나오잖아요? 근데 인터뷰했던 황푸하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노동을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걸로 이해한다면, 숨 쉬는 것, 밥 먹는 것처럼 당연히 해야 하는 게 노동이고 일이겠구나 하죠. 노동에는 만물을 탄생시키는 신성함도 있을 것이고, 매일 해야 하니까 지겨움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것들이 혼재돼 있는 일상처럼.

- 현재의 일에 임하고 있는 이유는?

사람의 일이라는 게 어떻게 100% 임금만을 목적으로 하고, 혹은 자아실현을 100% 목표로 하겠어요.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거고 어느 절충지점을 찾는 거죠. 그래서 어떤 시기에 따라 중요도가 기울 수도 있는 거고요. 여러 다층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명확한 이유가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네요.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많이 하는 표현인데, 규정할 수 있는 건 없는 거 같아요. 그래도 이 질문에 대해 답을 내라고 하면, 제가 잘할 수 있는 일과 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의 최대공약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상황과 능력과 지향이 바뀌는 것에서 늘 최대공약수를 찾는 과정인 거죠.

- 스스로 생각하는 노동존중, 노동존중사회란?

너무 어려운 얘기 같아요. 교과서 같은 답을 하자면 스스로의 일을 존중하고 일한 만큼의 적절한 보수가 보장되고, 그것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 전반적인 태도가 노동존중이 아닐까요. 누구나 여름에 시원한 데서 일하고 겨울에 따뜻한 곳에서 일하고 싶고, 일 적게 하고 임금 많이 받고 싶죠. 더 편한 일자리, 고수익 일자리를 원하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어요. 그럼에도 나에게 더 가치 있고 좋은 일을 하고 싶어야죠. 노동이 가진 가치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게 노동존중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태도가 합의를 이룬 사회가 노동존중사회겠죠. 이를테면 인천공항공사에서 정규직으로 들어가서 공항의 경영 및 운영 등 전문성을 갖추고 일을 하는 노동자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청소노동자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임금 격차는 줄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공항 청소노동자가 하는 노동의 가치와 공항을 경영하는 노동자가 하는 노동의 가치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더욱 아니에요.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하기 때문에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된다고 했을 때 이렇게 반대가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직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럼에도 모든 노동의 가치는 같다고 인정하는 생각들이 상식이 되는 사회가 노동존중사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