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존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노동존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12.11 00:18
  • 수정 2020.12.11 02: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수성 키워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말하지 않는 세상 만들기
현실은 표준화 안 돼 '여기저기·들쑥날쑥'… "법 제정으로 체계 갖춰야"

커버스토리  노동인권교육 왜 필요한가

당신은 내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중대기업재해처벌법 등 노동계는 국가를 향해 법과 제도를 요구한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 취약계층의 권리를 위해서다.

그러나 제도가 갖춰진다고 해서, 노동권이 보장된다고 해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업종과 사업장에 따라 노동자는 저마다의 이유로 천대받는다. 2018년 시행된 감정노동자 보호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잖은 감정노동자들이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권리투쟁, 제도 변화를 중심에 두고서 진정한 노동존중을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노동이 존중받으려면, 노동자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일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노동자 10인을 만나 물어보았다. "일터에서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책 ≪노동인권수업을 시작합니다≫학교도서관저널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하는 다섯 명의 선생님 이야기가 나온다. 다섯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시작한 이유는 “미래의 노동자 또는 사용자가 될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보내게 될 노동현장이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노동자는 어떤 권리를 가지는지 알려줄 책임이 의무교육과정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에는 학교 안 노동인권교육의 현주소가 담겨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노동을 ‘힘들고 몸으로 하는 일’, ‘학창 시절 공부를 안 한 사람이 하는 일’ 등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최저임금이 왜 만들어지고 도입됐는지,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주의할 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노동인권 감수성 역시 키우지 못해 ‘육아휴직 해달라고 하면서 돈도 받는 건 양심이 없는 것 같아요’라는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도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실이다. 노동, 노동자, 노동조합…. 여전히 노동이 들어가면 금기시하고 보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인권교육은 아직 낯선 개념이고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노동인권교육=삶교육

그렇다면 노동인권이 뭐기에 '교육'까지 해야 하는 걸까. 흔히 노동인권을 임금, 고용, 노동 환경 및 조건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노동인권은 노동을 존중하는 태도와 감수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송태수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는 "일터 밖 사회적인 인식과 태도 역시 노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노동인권을 근로계약의 직접 체결 당사자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만 보지 않고 사회문화적 영역으로 확장해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노동인권교육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에 따르면 노동인권교육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 근로조건에 관한 권리,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사생활의 자유 등 노동인권과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고, 노동인권을 존중하는 태도와 감수성을 배양하여 노동인권 옹호와 합리적인 의사결정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인권과 관련된 모든 교육"을 말한다. 관련 조례가 제정된 11개 교육자치단체에서 밝힌 노동인권교육 개념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노동인권교육은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법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특정 노동자를 손가락질하며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너도 저렇게 된다'고 말하는 부모의 훈육이 사라지게 하는 것도, 길거리에서 조끼를 입고 머리띠를 두르고 생존권을 외치는 사람들을 마주쳤을 때 피하거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도록 하는 것도 노동인권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 노동자의 인권 현실에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과 노동자의 인권을 지지할 수 있는 태도를 키우는 것도 모두 노동인권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늘어나는 청소년 노동
"노동인권교육 받은 적 있다"는 36.1%뿐

우리나라에서 노동인권교육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일하는 청소년이 늘어나면서부터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0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전년 대비 0.8%p 증가한 43.5%를 기록했는데, 이중 청소년(15~19세) 고용률은 7.6%로 나타났다. 중학생 100명 중 3명, 고등학생 100명 중 14명은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청소년들은 여러 문제에 부딪힌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청소년 중 2018년 최저시급 7,530원 미만을 받은 비율이 34.9%로 확인됐다. 같은 대상에게 업무 내용·급여·노동 시간·휴일 등의 내용이 포함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는지를 물었더니 61.6%가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특히, 중학생의 경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비율이 81.0%로 높게 나타났다. 설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더라도 교부받지 못하는 일도 수두룩하다. 같은 조사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청소년에게 근로계약서를 받았는지 조사한 결과 근로계약서를 받은 경우는 58.0%에 불과했다.

[표] "중·고등학생 10,889명에게 최근 1년 동안 노동인권에 대한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표] "중·고등학생 10,889명에게 최근 1년 동안 노동인권에 대한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수많은 청소년들은 이미 노동을 하고 있거나 특성화고 현장실습으로 노동현장에 나가 있다. 일하다 다쳐도 사업주 눈치를 보느라 치료받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한다. 이렇게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몰린 상태에서 산업재해를 만난 청소년들은 ‘어느 현장실습생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잠시 우리 사회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고 김동준 군의 죽음을 다룬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돌베개의 저자 은유 작가는 청소년 노동을 막연히 '안쓰럽다' 혹은 '보호해야 한다'고 보지 않고 청소년이 당당한 노동의 주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노동인권교육이 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노동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쌓는다. 노동이 원래 나쁘거나 해로운 것이 아니고 세상을 넓혀가는 기쁜 과정일 수 있다. 노동조건이 나쁘다면 청소년이나 성인 모두에게 유해할 텐데 사람들은 노동조건을 문제 삼지 않고 청소년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는다. 문제의 원인을 청소년이 아니라 '노동조건'에서 찾아야 한다. 청소년 노동자들의 인권 수준이 높아지면 우리 사회 전체 노동자들의 인권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인권교육? 하고 있지!"

노동인권교육을 위해 각 정부부처, 지자체, 민간단체에서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교육을 '각자' '개별적으로' 진행하고 있어 교육 내용과 대상이 중복되고, 교육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편차가 발생하는 등 파편적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중앙단위에서는 교육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동인권교육에 앞장서고 있고, 지방단위에서는 지자체, 교육청, 지방고용노동청이 같은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노동계(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와 경영계(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협의회 등 민간단체에서도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경우 한국고용노동교육원과 청소년근로권익센터에서 노동인권교육과 권리 구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여성가족부도 청소년근로보호센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통해 근로권익보호 환경 조성 사업을 하고 있어 두 사업이 중복된다는 비판이 따른다. 주된 교육 대상도 청소년, 대학생이기 때문에 겹친다.

교육부에서는 교육과정 연구 및 교과목을 통한 노동인권교육을 하고 있지만, 중학교, 일반계고에서는 노동인권 비중이 크지 않고, 이마저도 '노동'보다는 '진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통 과목인 사회(중학교), 통합사회(고등학교)를 제외한 진로와 직업(중학교), 정치와 법, 생활과 윤리(고등학교) 등은 학교에 따라 다루지 않거나 선택 과목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성화고에서는 공통 과목인 '성공적인 직업생활'에서 노동법 및 노사관계를 자세히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위한 교과목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

노동인권을 가르치는 교원의 역량 강화도 필수적이다. 교사들이 교육의 주체로 나서기엔 교사 역시 노동인권에 대한 이해가 낮고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표준화된 교육 목표와 수준별 교육 내용의 정립이 필요하다. 또한, 민간 차원에서도 노동인권교육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다면 각 지자체에서는 노동인권교육과 관련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현재 전국 14개 광역시·도와 27개 시, 23개 군을 아우르는 50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청소년 노동인권 증진 조례가 시행되고 있으며, 11개 시도교육청에서 노동인권교육 조례가 제정되어 시행 중이다. 하지만 지역별로 예산 등 조건이 다르고 교육 내용의 지향점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거나 여전히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법 제정으로 체계 갖춰야"

위에 나열한 여러 문제점 및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동인권교육과 관련된 법률 제정이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올해 6월 강병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노동인권교육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앞서 이와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바 있지만(18대 국회 은수미 의원, 19대 국회 강병원·김동철 의원),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전명훈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노동인권전문관은 "국가교육과정 개정 혹은 관련 특별법 제정 등은 학교 노동인권교육을 학교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한편, 자칫 논란의 대상이 되어 현장에서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주제가 될 수 있는 노동인권교육을 일상적인 주제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실행하는 주체인 교원들의 교육 활동을 보호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며 "따라서 현재 17개 시도교육청 중 11개 교육청에 학교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관련 조례가 제정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국회 교육위원회 차원에서 '학교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관련 법률안'을 발의하여 학교 노동인권교육의 근거법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도 주요한 검토 방안”이라고 말했다. 송태수 교수 역시 "중앙단위 법 제정은 다양하게 전개되는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체계화함으로써 지역단위 내 갈등을 완화하고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