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 Part.1
"당신은 내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 Part.1
  • 백승윤 기자,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12.11 00:17
  • 수정 2020.12.12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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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퇴근, 근무시간 보장하지 않는 일터
"노동자는 사회의 공여자, 일한 만큼 존중해야"

커버스토리  현장노동자에게 노동존중을 묻다

당신은 내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중대기업재해처벌법 등 노동계는 국가를 향해 법과 제도를 요구한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 취약계층의 권리를 위해서다.

그러나 제도가 갖춰진다고 해서, 노동권이 보장된다고 해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업종과 사업장에 따라 노동자는 저마다의 이유로 천대받는다. 2018년 시행된 감정노동자 보호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잖은 감정노동자들이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권리투쟁, 제도 변화를 중심에 두고서 진정한 노동존중을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노동이 존중받으려면, 노동자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일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노동자 10인을 만나 물어보았다. "일터에서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참여와혁신>은 일터에서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 4인을 만났다. 초등학교돌봄노동자, 학교야간당직경비노동자, 배전노동자, 조선소하청노동자가 일터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을 전했다. 과연 노동존중은 어디에서, 무엇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일까. 그들의 목소리를 찾아가 봤다.

시간 초과 말라더니…코로나19 이후 연장근무 지시
법적 근거 없어 깊어진 직장 내 갈등
'직종으로 차별 두는 사회적 인식 괴로워'

아이들 웃음소리가 좋은 이명옥 씨(51)는 근무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 다음날 수업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늦은 밤 집안에 널브러진 수수깡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은 모습이 그에게는 퍽 재밌다.

이명옥 씨는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아이들을 돌보는 초등돌봄전담사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다니다가 결혼 후 영어학원 시간제 선생님으로 생활했던 이명옥 씨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교대에 가라'고 했던 말을 마음 한편에 기억하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재미와 자부심을 가지고, 학기마다 세운 활동 계획이 아이들 눈높이와 맞는다고 느껴질 때 스스로 일을 잘하고 있다고 느낀다. 보호자가 아이를 데리러 와서 "우리 아이가 돌봄 가는 거 재밌어 해요. 돌봄선생님 좋대요"라고 한마디 말을 건넬 때면 이 일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만 같다.

초등전담돌봄사 이명옥 씨가 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초등전담돌봄사 이명옥 씨가 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명옥 씨가 학교에서 일하게 된 건 2015년 3월부터였다. 일하기 위해서는 보육교사 자격증이 필요한 탓에 1년 정도 준비 과정을 거쳤다. 초등돌봄전담사는 정규수업이 끝난 이후부터 오후 5시까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돌보기 어려운 보호자들을 대신한다. 학기 중 4시간, 방학 중 6시간이 이명옥 씨의 근무시간이다. 시간제 근무자인 탓에 학기 중 일할 때는 평균 기본급 90만 원, 방학 중에는 130만 원 내외로 받는다.

"오늘은 아이가 못 갑니다." 이명옥 씨의 일은 정해진 시간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후 1시 출근이지만 보호자의 연락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평소 관리자들은 피치 못할 초과근무에 대해 '근무시간 내에만 하라'는 속 편한 말을 할 뿐이었다. 짧은 업무시간은 코로나19가 퍼지면서 더욱 빠듯해졌다. 교실소독, 체온검사 등 방역업무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초등돌봄전담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어떤지 알 수 있는 계기였다. 근무시간 초과를 반대하던 이들은 학교가 멈추면서, "개학이 연기된 건 방학의 연장이니 당연히 일해야 한다”며 방학 시 근무시간인 6시간을 적용했다. 관리자들의 급변하는 태도에, 이명옥 씨는 사회가 돌봄전담사들을 “한 번 쓰고 버려도 되는 일회용품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도 코로나19가 두렵고 불안해, 우린 철인이 아닌데, 우리도 애들이 있는데…....'

마음이 더욱 상할 때는 직업 자체에 대해 부정당했을 때였다. 최근 돌봄교실의 지자체 이관 여부를 두고 교사와 돌봄전담사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간혹 서로 간에 격한 표현이 오가기도 한다. 이명옥 씨는 돌봄교실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학교에 무단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이명옥 씨는 '조금 있으면 네 책상을 뺄 거야'라는 상황에서 일하는 기분이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곤 한다고 말한다. 그가 바라는 건 직업 자체로 개개인의 능력과 인격을 무시하고, ‘나 아니고 다른 건 모두 상관없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함께’라고 생각하는 사회다.

"아이들이 '선생님'하고 부를 때 그건 저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잖아요? 누군가 저를 돌봄전담사로 부르든 보육전담사로 부르든 아이들이 저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게 제 존재 이유예요. 이 직종의 환경이 힘들어서 나간다는 분들도 있지만, 제게는 이 일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받는 학교야간당직노동자
일하는 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지정
"해도 너무한" 체류시간과 근무시간의 간극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떠난 교정으로 들어선 야간당직경비노동자 오기환 씨(80)가 운동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하나둘 주우며 당직실로 향한다. 당직실은 '휴게실'과 '근무실'이란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방 한쪽에 놓인 침대를 보면 휴게실이지만, 책상 위 모니터와 CCTV, 경보장치를 보면 영락없는 근무실이다.

공직 생활을 마치고 5년째 학교야간당직경비로 일하는 오기환 씨는 "공직에 있을 때랑 지금이랑 너무 다르다. 직업이 바뀌니 국가에게 천대받는다"고 하소연했다. 학교에 체류하는 시간에 비해 교육 당국으로부터 인정받는 근무시간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교육 당국은 당직실을 휴게실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불규칙 취침’을 하는 근무실이에요. 경보장치가 울리는 등 한밤중에 교내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대처하려면 대기해야 하는데 어찌 휴게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통상 야간당직경비노동자가 학교에 체류하는 시간은 16시간이다. 오후 4시 30분부터 다음 날 아침 8시 30분까지 학교에 머무르지만, 교육청에서 인정받는 근무시간은 4.5시간에 불과하다. 주말 등 공휴일엔 24시간 체류해도 6시간만 근무시간으로 인정받는다. 당국은 밤 10시부터 아침 6시를 휴게시간으로 지정했다. 해당 시간 동안 당직실에서 잠을 자거나 쉬라는 얘기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밤새 학교에서는 여러 일이 벌어진다. 운동장에 들어와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고, 유리창을 깨고 달아나는 사람도 있다. 청소년들이 교실에 무단 침입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망측한 일"을 벌일 때도 있다. 경보장치가 오작동해 휴식시간 중 학교를 순찰하기도 한다. 불의의 사건·사고를 처리하기 위해서 오기환 씨는 “눈을 반쯤 뜨고” 밤을 보낸다. 그러나 ‘휴게시간’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근무로 인정받지 못한다.

평일 11시간, 주말 18시간. 체류시간과 근무시간의 간극은 근로기준법 제63조 제3항에 의해 발생한다. "감시 또는 단속적(斷續的)으로 근로에 종사하는 사람인 경우, 사용자가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사람"은 근로시간, 휴게 및 휴일 등 근로기준법 일부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사용자는 주휴수당과 연장·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수당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

휴게시간이라지만, 야간당직경비노동자는 학교를 벗어날 수 없다. 밖에서 저녁이라도 먹다 걸리면 고용을 위협 받는다. "교육청 말대로 휴게시간이라면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으로 만들어야죠. 그렇게 못하겠으면 휴게시간이 아닌 대기시간으로 정해야지. 학교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건 당직기사가 휴게시간에도 관리·감독을 하길 바라는 욕심 때문 아닙니까." 오기환 씨는 근무 현실에 맞도록 '휴게시간'을 '대기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시간은 현행법상 근무시간으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근로기준법 기준을 온전히 적용하면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최소한 직장인이 일반적으로 근무하는 8시간 정도는 인정해달라는 입장이다.

"일 자체는 보람을 느낍니다. 학교 관리도 일종의 교육이에요. 아이들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데 뭔가 보탬이 된다 이거예요. 물론 중노동은 아니에요. 육체적으로 힘들게 움직이거나 곡괭이 들고 싸움질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이에요. 제가 올해 80이지만 일하는 사람이에요. 이 사회의 공여자예요. 노동으로 생산이 이뤄지고 나라 경제도 활성화되잖아요. 근데 국가마저 어떤 일만 존중하고 어떤 일은 경시하는, 그건 아니잖아요."

어둠을 밝히는 불빛에 가려진 위험
사고 책임 업체에 미루면 노동자만 피해
"무사히 퇴근할 수 있다는 안도감 느끼고파"

송석채 씨(52)는 27년 경력의 배전노동자다. 전신주를 세우고, 전선을 연결하고, 노후화된 변압기나 전선을 유지·보수하는 게 그의 일이다. 새로 지은 건물에 전선을 연결하는 신설 작업도 한다. 가정집, 상가, 공공기관 등 전기가 들어오는 곳은 대한민국 전역을 누비는 배전노동자의 손을 거친다. 대전에 거주하는 송석채 씨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섬을 찾아가기도 한다. 배전노동자는 한국전력공사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2년 주기로 한전과 계약한 협력업체에 고용된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거나 작업할 수는 없어요. 2만 2,900V 특고압 전선은 위험 그 자체니까요."

배전노동자는 감전·화상 사고를 당할 우려가 커서 온 신경을 쏟아야 한다. 절연바가지 안에서 보호 장구를 착용해도 찌릿함을 느낀다.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 일하는 '활선공법'을 쓰기 때문이다. 송석채 씨는 일할 때마다 "온몸의 털이란 털은 쫙 서서 옷이 벙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활선작업을 하다 사고로 죽거나 다친 동료가 한둘이 아니에요. 직접 끌어내린 적도 있어요. 고압에 팔다리가 터져나가 두 손을 잘라 내거나, 걷질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삶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겁니다. 그럴 때면 '내가 왜 전기를 시작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죠. 트라우마가 심해요."

활선공법은 한국전력공사가 2001년 도입했다. 비용도 적게 들고, 전기 이용자의 불편을 줄인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다루는 건, 안전보다 효율을 중시한 공법이다. 위험을 떠안게 된 배전노동자들은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했고, 한국전력은 2016년에 직접활선공법을 원칙적으로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대안으로 간접활선공법을 제시했고, 2019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현장에 도입했다. 손으로 직접 작업하는 대신 기다란 스마트스틱을 이용해 보다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송석채 씨는 길이 1.7m, 무게 6kg에 달하는 스마트스틱이 노동자를 위한 공법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스틱을 이용하면 위를 쳐다보며 작업하니 목이나 어깨에 무리가 가요. 안 그래도 고무로 만든 작업복과 장갑이 빳빳해서 움직이기 힘든데, 무거운 스틱은 근골격계에 부담이죠. 더군다나 스마트스틱공법은 직접활선공법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워요.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손으로 직접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배전노동자가 작업하는 모습. (좌)한전에서 도입한 스마트스틱공법으로 작업을 하지만, (우)장갑을 낀 두 손으로 작업해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배전노동자가 작업하는 모습. (좌)한전에서 도입한 스마트스틱공법으로 작업을 하지만, (우)장갑을 낀 두 손으로 작업해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배전노동자들은 스마트스틱공법 도입 이전부터 실용성이 낮다며 우려를 표해왔다. 정호영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회 대전충청세종전기지부 부지부장은 "현장 노동자에게 맞는 작업 방식이 필요하다"며 "정전공법 확대가 가장 필요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새로운 공법과 안전장비 개발에 배선노동자가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전, 화상, 근골격계 질환뿐만 아니라 전자파 노출로 인한 질병도 문제다. 2018년 2월, 2019년 3월 고압 전류에서 발생한 전자파로 인해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가 산재판정을 받은 바 있다. 송석채 씨도 현재 혈액암 투병 중이다. 2008년 항암치료를 받고 완치된 줄 알았던 병마가 재발해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한전은 전자파 노출로 인한 질병에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10월 국정감사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한전이) 백혈병 산재 인정의 근거가 된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전자파 노출 수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위험이 큰 직업이지만, 산재로 치료받은 배선노동자는 2019년 기준 4.6%에 불과하다. 건설노조 전기분과는 한전이 사고 업체에 벌점을 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계약을 하기 위해서 협력업체가 산재를 최대한 숨기려 한다는 것이다. 협력업체 평가 시 산재는 감점 요소다.

"'더 많이, 더 빨리' 일하라는 협력업체도 문제지만 그보다 한전은 뭘 했는지,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뭘 했는지 묻고 싶어요. 수년간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했던 기관들이 업체에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요.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가 입어요. 지금 구조에선 업체가 살아남아야 노동자도 살잖아요."

배전노동은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취급되지만, 송석채 씨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27년간 버티며 갈고닦은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가로등이 망가져서 긴급 복구 작업에 나선 적이 있어요. 전기가 들어오니 깜깜했던 도로가 순간 '짠-'하고 환해지더라고요. '나 아니면 누가 이 새벽에 나와서 복구하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전은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 갈수록 일손이 부족해요. 정말 적은 사람들이 밤이나 낮이나 전기를 다루는데, 매일 저녁 무사히 퇴근할 수 있다는 안도감은 느끼게 해줘야죠. 배전노동자의 위험을 마치 전기처럼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하청노동자 산재 사망 압도적인 현대중공업
처우도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는 하청노동자

"누구든 일만 해도 안정적으로 살아야 노동존중사회"

김채삼 씨(54세)는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에서 도장 '전처리 작업'을 하는 '파워공'으로 일하고 있다. 페인트가 잘 먹는 철판을 만들기 위해서 그라인더로 표면을 고르게 하고 녹을 제거한다. 작업은 선박 내·외부, 높은 곳과 낮은 곳을 가리지 않는다. 조선소 안에서도 손꼽히는 험한 일이다.

김채삼 씨는 하청업체 노동자다. 85년도에 대우중공업(현 대우조선해양) 정규직으로 입사하면서 조선업에 발을 디뎠다. 호황기였고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입사 5년여 만에 퇴사했다. 심한 학력차별 때문이었다. 수산고등학교 조선과를 졸업하고 입사한 김채삼 씨는 ‘고졸’이 승진하기 어려운 실상에 회의감을 느꼈다. "전문대라도 나오면 높은 자리 올라갈 수 있는데, 고졸 출신은 승진하기 어려운 환경이 지배적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퇴사 후 2년, 김채삼 씨는 다시 조선업계로 돌아왔다. 삼성중공업 발판 설치 업체에서 일했고, 그 후 현재 직장에 오게 됐다. 현재는 학력차별을 느끼지 않지만, 김채삼 씨는 조금 다른 차별을 느끼고 있다.

"똑같은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는 더 힘든 일을 합니다. 근데 임금은 원청 정규직의 60% 남짓입니다.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끼는 거죠. 제가 노조 활동가지만 '일은 우리가 더 많이 하는데, 왜 돈은 더 적게 받느냐'고 얘기하면 사실 할 말이 없어집니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전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전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하청노동자가 겪는 문제가 단순히 임금에만 있지는 않다. 철판을 다루는 탓에 조선소는 사고가 빈번하다. "아차 하면 추락하고, 한눈팔면 철판에 어깨를 부딪치고, 까딱하면 철사에 찔리는 곳"이다. 위험은 특히 하청업체 노동자가 겪고 있다. 지난 10년간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자 중 약 77%가 하청업체 노동자다.

김채삼 씨는 "원청이 하청업체에 '빨리빨리'를 강요하는 탓"이라고 주장했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일을 시키려다 보니, 하청업체 관리자들이 일을 재촉하고, 공정에 쫓기며 서두르는 하청노동자가 사고를 당한다는 얘기다. 김채삼 씨는 "물론 그 배경에는 원청에서 하청업체에 비상삭감 등을 하는 탓이 크다"며 "하청에 하청을 받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장구도 아찔할 정도"라고 말했다.

김채삼 씨는 현 정부가 노동존중을 내세웠지만, 변한 건 없다고 얘기한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일하고 저축만 해서는 잘 살 수 없습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영끌, 빚투 많이 하는데, 개인적 욕구라기보다는 풍토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봅니다. 월급만 받아서는 살기 힘든 시대 아닙니까. 그러니 노동의 가치가 줄어드는 겁니다. 누구든 현장에서 열심히 일만 해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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