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존중, 받지 말고 합시다
노동존중, 받지 말고 합시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12.11 00:19
  • 수정 2020.12.11 0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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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나의 일'을 존중하는 사람들
내 일의 자부심으로 현실 이겨내 … "일터에서 만큼은 진심이었어요"

커버스토리  노동존중은 어디서 오는가

당신은 내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중대기업재해처벌법 등 노동계는 국가를 향해 법과 제도를 요구한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 취약계층의 권리를 위해서다.

그러나 제도가 갖춰진다고 해서, 노동권이 보장된다고 해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업종과 사업장에 따라 노동자는 저마다의 이유로 천대받는다. 2018년 시행된 감정노동자 보호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잖은 감정노동자들이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권리투쟁, 제도 변화를 중심에 두고서 진정한 노동존중을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노동이 존중받으려면, 노동자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일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노동자 10인을 만나 물어보았다. "일터에서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돈 앞에서 쉽게 거짓이 된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버는지'에 따라 한 사람의 귀천을 결정했다. 대다수의 노동자는 왠지 모르게 주눅 들었다. 우리 사회는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노동은 존중받을 수 있다. 누가 뭐래도 '나'만큼은 '내 일'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의 얼굴에서 엿볼 수 있는 '자부심'이다.

'스스로 내 일을 존중하라'는 말은 '열정에 미쳐라' 같은 자기계발서의 언어가 아니다. 분명 노동과 노동자를 낮추어 보는 사회를 바로잡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내일의 출발점은 '내 일'에 대한 태도에서부터일 것이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박승주 물리치료사와 정상훈 사육사를 만났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노동존중을 들어봤다.

"아픈 곳 눌러주는 게 물리치료의 꽃은 아니죠"

박승주 씨(40)는 임상 경력 16년의 베테랑 물리치료사다. 그는 '로컬'이라고 불리는 동네 병원에서부터 복지관, 대학병원까지 두루두루 경험이 많다. 현재는 경기도 양평에 소재한 국립교통재활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흔히 물리치료사라고 하면 '마사지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물리치료사가 되려면 4년제 관련 학과를 졸업한 후 국가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세간의 인식보다 훨씬 전문적인 직업이다. "환자의 일상과 삶을 되돌려주는 직업"이라고 박승주 씨는 말한다.

박승주 씨는 국립교통재활병원에서 자동차 사고 환자를 전문으로 치료한다. 하루 평균 13~14명 정도의 환자를 돌본다. 의사가 환자의 기대 회복수준을 진단하면, 물리치료사는 그에 맞는 재활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사고 이후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던 환자도 재활을 통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할 수 있다.

물리치료사는 체력과 정신, 전문성이 함께 필요한 직업이다. 빡빡한 하루 일정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를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물리치료사의 완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또한 사고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환자의 심리상태를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 재활에 관한 전문지식이 밑바탕에 깔려야 하는 건 기본이다.

물리치료사 박승주 씨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물리치료사 박승주 씨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완전 동물 외골수로만 삶을 살아왔어요"

정상훈 씨(35)는 경력 10년의 사육사다. 2010년부터 사기업 동물원에서 1년 4개월 동안 일했다. 이후 서울대공원에서 기간제노동자·공공근로로 총 1년 2개월을 일하다가 공무직으로 임용됐다. 4년 6개월 간 서울대공원에서 더 근무하다가 2017년 9월부터는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그는 유기견·유기묘를 시민들에게 입양될 때까지 돌봐주는 일을 하고 있다.

사육사라고 해서 모든 동물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돌보는 동물에 따라 사육사의 업무가 확연히 달라지는데, 여기서 사육사 개인의 스타일이 반영된다.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사육사가 동물을 싫어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증오의 싫음은 아니에요. 사람이라고 하면 스타일이 있잖아요? 내가 원하는 사육방식에 맞는 동물이 있죠. 파충류나 곤충, 어류 같은 야생동물을 선호하는 사육사가 있어요. 거꾸로 활동적이고 맨날 놀아줘야 하는 동물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죠. 동물을 교육하는 걸 좋아하는 사육사도 있어요. 동물도 채혈을 하잖아요? 사람은 손 내밀고 뽑으면 되는데, 동물은 그게 안 돼요. 쉽게 이야기해서 손을 주고 피를 뽑고 참는 것까지 훈련시킬 수가 있어요. 싫어하는 동물과 좋아하는 동물을 나누기보다는 내가 자신 있는 동물과 자신 없는 동물로 나누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물리치료사와 사육사의 길

두 사람은 '전문가'로서 본인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단순히 ‘특이한 직업’이어서는 아니다. 두 직업 모두 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선망 받거나 돈 잘 벌기로 유명한 직업은 아니다. 박승주 씨는 원래 체육교사가 꿈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당시는 장래 전망성과 취업가능성을 염두에 뒀어요. 제가 아니라 부모님과 지인들이요. 타의에 의해서 인생이. 하하하. 원래는 체육교육학과, 교육 쪽을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다 떨어져서 다른 곳을 알아보다가 지인이 물리치료학과를 알아봐줬죠."

박승주 씨는 서울 유명 대학병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물리치료업계에서 내로라하는 곳이었기에 “인생 끝났다. 성공했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멍에가 그를 감쌌다. 결국 그는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비정규직의 고단함을 많이 느꼈죠. 그때가 2006년이니까 노동법도 적용 안 되고 완전히 처우가 나빴죠. 근무는 8시 30분부터인데 7시까지 나오라고 하고. 청소, 물 떠오기부터 온갖 잡다한 일을 다 했고요. 비정규직이라서 그런지 챙겨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그때 그래도 챙겨주시던 몇몇 선배님들은 아직도 종종 뵙곤 해요."

정상훈 씨는 준비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애완동물학과 1기'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재학 중 학과가 없어졌다. 사육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을 적절히 받을 수 없었다.

"냉정하게 말씀드려서 저는 대학교에서 배운 게 없어요. 지금은 시즌이 되면 실습을 보내주는데, 제가 다닐 때는 실습 생각을 아예 못했죠. 당시 직접 학과장한테 찾아가서 애완동물학과에 따로 실습과정이 없으니 함평나비축제 파충류 전시관에서 일하는 걸 실습으로 인정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어요. 스스로 다 찾아 갔죠. 일 좀 하게 해달라고요."

정상훈 씨는 첫 경력을 사기업 동물원에서 시작했다. "지금 경력이 10년 됐는데도 아직도 그만한 스킬과 노하우를 가진 분들을 못 봤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가 있었던 곳이었다. 그만큼 배울 것도 많았지만 노동조건이 "끔찍할 정도로" 좋지 못했다. 정상훈 씨는 동물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년 4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열정'으로도 버틸 수 없었다.

이후 정상훈 씨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대공원을 목표로 삼았다. 안정적이면서도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비정규직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정상훈 씨는 '운 좋게도' 1년 2개월 만에 기간제·공공근로 생활을 마감할 수 있었다. 2012년부터 서울시에서 무기계약직을 공무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독히 운이 좋지 않은 경우'였던 정상훈 씨의 배우자는 비정규직 10년 만에 서울대공원 공무직으로 임용될 수 있었다.

"일터에서는 항상 진심이었어요"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시기를 두 사람이 버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에 대한 진지함'이 있었다. 박승주 씨는 물리치료사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온라인 카페 '물리치료에 관한 작은 메모장(이하 물작메)'의 운영자다. 회원 수만 22만 명이다.

대학시절, 노트필기 공유를 위해서 만든 물작메는 카페 개설 3년 후인 2007년부터 회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혼자서 공부한 내용을 물작메에 올리곤 했는데, 물리치료사를 준비하는 누리꾼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이다. 카페가 커가는 만큼 물리치료사로서 박승주 씨의 실력도 함께 성장했다.

"카페는 2004년에 만들었어요. 임상은 2006년에 시작했고요. 책으로만 보던 병을 가진 환자들이 실제로 오더라고요. 저는 대비를 해야 하잖아요? 당장 그 환자를 치료하거나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했어요. 카페에 정보를 올리니까 부정확하다고 공격을 받기도 하더라고요. 제대로 된 정보를 올리기 위해서 신경을 썼어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지만,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항상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정상훈 씨는 마냥 노는 게 좋았던 학생이었다. 스스로 "꼴통 중에 꼴통"이라고 표현할 만큼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동호회 활동 덕분에 ‘세상에 이런 일이’ 등 매체에 몇 번 소개되기도 했던 그는 "세상을 쉽게 봤다. 그냥 희귀동물 샵 차려서 사장 할 거라는 생각으로 대학도 안 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정상훈 씨의 '흥미'가 비로소 '일'이 된 건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그는 그때 '일하는 방법'을 깨우쳤다.

“1학년 1학기 역시 개판이었어요. 학점이 2.05였죠. 빌고 빌어서 학고(학사경고)는 면했는데 그러다가 여름방학이 됐어요. 그때 저는 양서파충류연구실이라고 합법적으로 양서류와 파충류를 채집해서 연구하는 곳에 있었어요. 거기서 개구리를 해부하는데, 당시 저는 해부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어요. 그냥 선배들이 하는 거보고 따라하는데 어느 순간 그걸 스스로 하는 거예요. 숙련도가 올라가니까 선배들도 테이블을 따로 하나 주고요. 거기서 느낀 게 ‘내가 하나도 못했는데 어떻게 이걸 잘하고 있지?’ 이런 깨달음이 왔죠.”

신기하게도 여름방학 이후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정상훈 씨는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공원 근무 당시에는 공무직 최초로 서울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는 “나는 언제나 일터에서만큼은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사육사 정상훈 씨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사육사 정상훈 씨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일을 잘 한다는 것, 자부심의 원천

두 사람은 일로써 자신을 인정받을 때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일로써 다른 이들을 도와줬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결국 환자들의 호전인 거죠. 사회에 복귀한 환자들에게서 감사한 마음을 전달받았을 때. 우리가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환자들이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 이제 퇴원해요.’ 그렇게 일상으로, 가족으로 돌아갈 때 뿌듯해요. 그 밑바탕에는 선후배들 간에 서로 더 좋은 치료사가 되기 위한 선한 경쟁과 격려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요."(박승주 물리치료사)

"처음에 아이들이 보호소에 있다가 센터로 오면 정말 많이 긴장하고 두려워해요. 저는 걔네 앞에서 바닥에 붙어 다닐 정도로 기어 다니는데, 그러면 그 친구들이 경계를 조금씩 풀고 저한테 앵겨요. 으르렁대던 애들이 지금은 좋다고 앵기는데 진짜 고마워요. 개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한테요. 아무도 못 믿고 두려움에 가득한 아이들이 스스로 나를 허락해줬다는 것. 그때 보람을 많이 느끼죠."(정상훈 사육사)

내 일에 자부심이 큰 두 사람도 꺾이는 순간이 있다. 바로 자신의 일이 폄훼당하고 무시당할 때다. 일이 아닌 다른 요인 때문에 자신의 전문성이 무시당하거나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깎아 내리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다.

"현장근무를 10년 하면 자연스럽게 지식과 노하우가 생겨요. 가끔 활동하다보면 외부에서 현장답사를 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그 누구도 현장 공무직한테는 질문을 던지지 않아요. 상식적으로 현장에 있는 사람만큼 현장 일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최소한 발판 청소하는데 싱크대가 이만하니 발판도 맞춰서 만들어라. 이런 거라도 말해주고 싶은데. 물어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단 한 명도요."(정상훈 사육사)

"잠깐 공부하고 물리치료업계에 깊게 들어와 보지도 않은 사람이 그냥 쉽게 폄훼하는 모습이요. 누군가는 진짜 열정 가지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쉽게 여기는 사람이 있잖아요? 누구는 어떻게든 다른 방법이 없어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너무 시원찮고 쉽게 생각할 때요. 그러면 참 씁쓸하죠."(박승주 물리치료사)

조직은 일하는 사람의 자부심을 지켜주는가

내 일을 모르는 사람은 쉽게 말할 수 있다. 가장 버티기 힘든 건 몸 담고 있는 조직에서 내 일을 존중하지 않을 때다. 박승주 씨는 "정말 충실하고 본연의 업무도 잘하고 주변에서도 인정받는 선생님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다"면서, "능구렁이 같은 사람들이 사바사바 잘해서 인정받으면 참 허탈하다. 책임자는 저걸 모르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상훈 씨는 '조직의 무시'를 몸소 경험한 바 있다. 2017년 서울대공원 동물입양센터가 서울시 시민건강국 산하로 이소하는 과정에서 정상훈 씨는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서울대공원을 떠나게 됐다. 서울동물복지센터에서 일하는 그가 "동물을 본다는 점에서 100% 만족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제 개인적으로 꿈꿔왔던 비전이나 미래를 생각하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하는 이유였다.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직도 그곳이 미워요.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그런 거죠. 분명히 서울시에서는 동물원에 남아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줬는데. 서울대공원은……. 버림받은 느낌이죠. 스스로 직업적 자부심이 컸던 사람이었어요. 그때 그 사건으로 제가 쌓아왔던 모든 스펙과 커리어가 날아갔어요. 정말 모든 사람이. 제가 그렇게 되니까. 조언을 구하던 다른 동물원, 아쿠아리움 사육사와 연락도 끊기고요. 서울대공원은 한 사육사를 망쳐놨어요. 지금도 미워해요.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그 사건 이후 정상훈 씨는 공황장애로 2년 동안 약물을 복용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에게 서울대공원에서의 일은 ‘생계 수단’을 넘어 자기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였다. 그는 병세가 호전된 후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무직지부 서울대공원지회에서 정책부장을 겸하고 있다. 서울대공원에서 공무직으로 일하는 배우자가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내 일은 타인을 향한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어떻게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도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을 지킬 수 있었을까? 물론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가 첫 번째였다. 두 사람 모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주변 사람'을 말했다. 자신에게 일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지만 동시에 '타인을 위한 것'이었다. 좁게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부터 넓게는 모든 사람을 위했다. 정상훈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남들한테 인정받는 게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좋아하는 동료들이 편해지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저는 직을 안 따졌거든요. 공무직이든 공무원이든 ‘우리는 사육사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나로 인해서 다른 사육사가 행복해 하고 일을 수월하게 하면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박승주 씨는 "물리치료사도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시작했다. 임상 경력 10년이 지날 즈음 "업계 전반의 처우와 그릇된 인식을 개선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그는 2017년부터 보건의료노조 국립교통재활병원지부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작메를 17년간 운영했어요. 처음 만들고 운영하다 보니까 취지는 그게 아니었는데 물리치료사가 당하는 부당한 처우가 들리는 거예요. 하다 보니까요. 물리치료사의 처우 문제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거죠. 그게 저한테 숙제로 다가왔어요. 카페를 운영하면서 마주한 현실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는 책임감이 점점 커져버린 거죠. 보이니까 무시할 순 없잖아요?"

노동존중, 받지 말고 하자

일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두 사람에게 노동존중은 어디서 오는지 물었다. 박승주 씨는 "스스로의 노력과 경험에서 오는 것 같다. 결국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상훈 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노동존중이 뭔지 찾아봐도 안 나오더라고요. 어쨌건 제가 생각하는 건 직책, 직급 따질 것 없이 한 조직의 구성원이 모여서 운영되는 게 회사잖아요? 그 조직이 운영될 때 제일 중요한 건 월급이나 복리 후생이 아니고 사람들끼리의 존중이라고 봐요. 리스펙이죠. 여기서 존중받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존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노동존중은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