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사람 살리자는 법'에 '기업 죽이기 법'이라며 입법 반대
재계, '사람 살리자는 법'에 '기업 죽이기 법'이라며 입법 반대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12.16 22:40
  • 수정 2020.12.21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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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경제단체·업종별 협회 "중대기업처벌법 헌법‧형법상 위배"
이용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조항 하나하나가 다 사람이 죽어서 만들어진 것"

재계가 16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추진 중단 공동성명을 내자, '사람을 살리는 법'이라며 입법을 촉구한 노동계에서 반발하고 나섰다. 21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법안을 대표발의한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민주주의의 가치인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기업과 싸우자는 게 아니다"라고 법안의 취지를 강조했다.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제단체 및 업종별협회 대표들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재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공동사진취재,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제단체 및 업종별협회 대표들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재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공동사진취재,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손경식)가 654개 국내 기업(응답 기준)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 중 90.9%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95.2%는 법안에 담긴 사업주·경영책임자·법인 처벌수준이 '과도(매우 과도 78.7%, 다소 과도 16.5%)'하다고 응답했다. 

30개 경제단체·업종별 협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가혹한 중벌을 부과"한다며, 헌법상의 '과잉금지 원칙', 형법상의 '책임주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재계는 대체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제정이 '국가의 책임 전가'라는 입장이다. "관리범위를 벗어난 불가능한 것에 책임을 묻는 것과 같으며, 그 자리와 위치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공동연대 처벌을 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처벌 강화 시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재계는 "산업안전정책의 기조를 현행 '사후처벌 위주'에서 '사전예방 정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670여 개의 정부의 산업안전보건규칙을 업종과 산업현장 특성에 적합하도록 전면 재정비 ▲책임자 간, 원·하청 간 책임소재 정립 ▲산업안전보건청 설립과 산업안전전문요원 운영방안으로 산업안전행정의 전문성 제고 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재계는 올해부터 적용 중인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 초기인 점을 감안해서, 향후 몇 년간은 평가를 거친 후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의 제정 필요성 여부를 중장기적으로 논의해 나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덧붙였다.

재계가 언급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1월부터 시행중이다. 9월 기준 올해 우리나라 산재사망자 수는 1,571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0.7%p 감소하는데 그쳤다. 그 중 사고사망자 수는 660명이고 질병사망자는 911명이다. 산재사망률은 지난 20여 년간 감소추세지만,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며 산재사고사망자 수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대부분의 대형재해 사건이 노동자 개인의 위법행위 결과가 아니라, 위험한 작업환경, 기업 내 위험관리시스템의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고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초 발의된 건 2017년 4월로,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16일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경제단체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반대 기자회견이 열리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공동사진취재,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16일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경제단체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반대 기자회견이 열리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공동사진취재,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재계의 성명 발표 직후, 노동계를 비롯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노동자의 목숨은 사그라져도 좋단 말인가"라며 "하루 7명씩 죽어 나가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의 곳간을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하고 우선일 수 없다"고 재계의 주장을 반박했다.

박기영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우리나라 산업안전 정책은 현재도 사전예방 중심이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이제 와서 사전예방으로 전환하자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서 "국민 공감대는 이미 형성이 돼 있는 사안"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산재사망비율이 높고 매일 사람이 죽어가는데 찬찬히 논의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2년 전 용균이 죽고 산안법 만들 때, 그 때도 경총과 전경련이 반대해서 법을 누더기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조항 하나하나가 다 사람이 죽어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함부로 덜어내지 말고, 국민들이 발의한 법안을 꼭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21대 국회에선 원내 3당에서 모두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은 내일(17일)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압도적 의석으로 각종 법안을 통과시킨 여당이 나섰기 때문에 법 제정은 무난하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민주당은 이번 12월 임시국회에선 '상임위 통과까지'를 목표라고 밝힌 바 있어 연내 처리는 불투명하다.

박기영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채택하겠지만, 법안 내용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정해질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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