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구멍 숭숭 뚫린’ 중대재해처벌법 국회 본회의 통과
결국 ‘구멍 숭숭 뚫린’ 중대재해처벌법 국회 본회의 통과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1.01.08 18:24
  • 수정 2021.01.08 1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인 미만 사업장 처벌대상에선 제외… 정부 중대산업재해 예방사업 대상에는 해당
노동계, “위험의 외주화 넘어 위험의 차별화” 對 재계, “가혹한 입법”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국노총과 산업재해예방단체가 5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제외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국노총과 산업재해예방단체가 5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제외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본회의’의 문턱을 넘었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산재사망을 막을 수 없는, ‘구멍이 숭숭 뚫린’ 법이 됐다.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재석인원 266명 중 164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기권을 선택한 의원도 58명에 달했다. 국회 본회의에서는 6명의 의원이 반대토론을 신청했다. 현재의 중대재해처벌법으로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의견과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과잉입법이라는 의견이 대립했지만, 62%의 의원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자는 답을 내렸다.

이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가 한 명 이상 발생한 경우 ▲동일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 중 하나에 해당하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적용된다. 단, 소상공인 지원법에 따른 소상공인 사업 또는 사업장, 이에 준하는 비영리시설, 교육시설, 바닥면적이 1,000㎡ 미만인 다중이용시설 등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제3조에 따라 5인 미만 사업장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도급, 용역, 위탁 등 관계에서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중대산업재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 ▲중대산업재해의 양벌규정 ▲안전보건교육의 수강 등의 법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제16조는 적용돼 정부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나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기술 지원 및 지도 지원은 받을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 1년 후부터 시행된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후 3년이 지나야 적용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사업체노동실태현황에 따르면, 203만여 개의 전체 사업장 중 50인 미만 사업장은 199만여 개에 달해 전체 사업장의 98%에 육박한다. 전체 노동자 1,820만여 명 중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1,157만여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64%에 달한다. 이들은 2025년에야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대상이 된다.

그마저도 전체 사업장의 61%에 해당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333만여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8%를 차지한다.

노동계,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으론 중대재해 못 막아”

노동계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가 30%에 달한다”며 5인 미만 사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진행되던 7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양경수)은 “죽음에 차별을 둬선 안 된다”며 “국회 법사위는 지금까지의 합의를 폐기하고 노동자의 생명,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온전한 법 제정을 논의하라”고 촉구했다.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중이던 8일 오전에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김동명)과 산업재해예방단체가 “죽음의 외주화를 넘어 죽음의 차별화를 조장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아닌 실효성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한국노총은 7일 오후와 8일 오전에 각각 백혜련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 위원장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항의방문해 “입법취지를 살린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김동명 위원장의 항의에 백혜련 위원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는 거의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5인 미만 사업장이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불가피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한 원청업체의 처벌이 규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원청업체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홍익표 의장 역시 “법의 실효성과 사회적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5인 미만 사업장 법 적용대상 제외가) 불가피했다”며 “늦어도 설 전에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지현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은 “고용노동부에 확인한 결과,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중대산재사고는 작은 건설현장에서의 추락사”라며 “백혜련 위원장의 말처럼 하청업체의 중대산재사고에 대한 책임을 원청업체에 물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중대재해처벌법으로는 작은 건설현장의 추락사 등을 절대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자 민주노총은 “오늘 제정된 법으로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냐는 질문에 흔쾌히 답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대다수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작은 사업장의 현실을 무시한 법 제정으로 가짜 작은 사업장이 속출할 것이고 중대재해의 피해자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민주노총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원칙의 문제임에도 첨예한 대립으로 자본의 입장도 담아야 했다는 핑계에 분노한다”며 “더 이상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죽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국노총 역시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중대재해처벌법을 통과시켰다”며 “이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차별법’이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살인 방조법’”이라는 날선 반응을 보였다. 한국노총은 “껍데기만 남은 법안을 ‘여야합의의 법안’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며 “온전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재계, “위헌적 법, 참담하다”

재계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손경식)는 “경영계의 핵심 요구사항을 반영하지 않은 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며 “중대재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만, 세계 최대의 가혹한 처벌을 부과하는 위헌적 법이 제정된 데 대해 경영계로서는 그저 참담할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총은 “우리나라의 산업수준과 산업구조로는 감당해낼 수 없는 세계 최고수준의 노동·안전·환경 규제가 가해진다면 우리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은 글로벌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며 “‘선 산재예방정책 강화, 후 처벌강화’라는 기조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 다시금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합헌적이고 합리적인 법이 되도록 개정을 추진해달라”고 요구했다.

40%를 위한 법, 60% 위한 보완책 나올까?

8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노동계의 우려를 대변하는 질의가 쏟아졌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사고 발생률이 30%가 넘는데, 이를 관할하는 중소벤처기업부와 고용노동부에서 우려를 잠재울 수 있는 보완책을 내야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제16조에 따라 정부는 반기별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 이행 등 상황 및 중대재해 예방사업 지원 현황을 국회 소관상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하는데, 일정 기간 동안 이 보고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발생률이 감소세를 보이지 않으면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답변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강성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과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일정 기간 동안 정부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나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기술 지원 및 지도 지원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발생률이 감소하지 않는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시행령 제정이 남아 있고, 노사 단체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갈등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